소설은 대학 생활의 두 번째 여름방학을 맞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양 온천 역사 옆 온천 슈퍼마켓을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남서쪽 지방으로 이르는 자그마한 마을들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길에서 만난 담배가게들을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도화 서점'에 들어가 천오백원 짜리 지도를 산 '나'는 담배가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나',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막간 상념'이 시작된다. 학창시절 '헤밍웨이와 결혼할거야'라고 말하던 여자애가 떠오르는가 하면, 손해보기 싫어하는 금연가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아리랑 담배를 사던 기억이 틈입한다.
카스트로-쿠바-시거-타악기에 관해 완상한 뒤, 담배를 처음 배웠던 1987년을 회상하고, 치과의사와 엉덩이가 큰 간호사를 떠올리며, 서기 2010년대의 햄버거의 죽음에 관해 하릴없는 공상을 한다.
염소에게는 얼마만큼의 초지가 필요한지 계산한 사람과,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발견하게 되는 사잇길, 그리고 '매혹'의 속성, 버려진 냉장고... 상념은 계속된다.
불량배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이정표를 무시하고 코너를 틀었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뭐든지 없애준다는 주식회사 블랙홀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빨간 우체통과 씨름한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말한 뒤 자전거를 분해해 창고 속에 넣는다. 그래야만 자전거가 편히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이 순간, 햇빛이 나고 비가 뿌리는 그런 시각이라면 당신은 샛별 비디오점 근처 어딘가에 서 있어야 한다......당신 눈앞에 샛별 비디오점이 보인다면 잠시 멈춰 담배를 피워물어야 한다......거기 어느 곳에선가 고개를 들어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을 만큼 흩날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 얼굴은 야간 일그러져 있는데, 새로 들어서는 오 층짜리 건물의 비계가 어지른 하늘 때문이 아니라 태양을 마주볼 수 없는 곤혹스러움 때문이다. 그러나 상기해야 할 것은 그가 바로 당신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가 누구든 담배를 빼무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자리가 바로 당신 생의 막간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읽을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생의 막간과 개인의 서사에 대한 소설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념의 퇴조는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기호들의 발아를 증폭시킨다. 담배 가게 표지판도 그 범주에 들 것.
소련은 무너졌고, 거대 담론은 실패한 90년대. 이 땅의 모순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 같지 않은데, 나와 우리를 인도해주던 빛이 꺼져버렸다.
공동체와 이념이 붕괴된 자리에서 개인의 서사가 시작된다. 개인의 서사는 '막간'과 '기호'라는 토양 위에 자라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의 정체성은 정해져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막노동꾼에게 '막간'이 가당키나 한가. 한 달 이상 자전거 여행을 하며 자신의 '기호(嗜好)'에 맞는 '기호(記號)'를 찾아다닐 수 있는 신분으로 대학생이 선택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담배가게 표지판을 지도 위에 기록하며, 떠오르는 상념들을 기록해 나가는, 당시로서는 다소 실험적이기 까지 한 구성.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혹은 레이먼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아버지와 아들의 쿨한 대화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헤밍웨이 읽을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을까. 어느모로 보나 이념의 퇴조와 헤밍웨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전하는 등 누구보다 시대와 부대꼈던 작가가 헤밍웨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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