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고은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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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 신유진이 연인 김서인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김서인은 이시가와 다쿠보쿠의 詩 <집>을 인용한 뒤 '언젠가부터 너는 내게 예쁜 발코니가 딸린 볕이 잘 드는 집. 나는 마당을 뛰놀며 집을 지키는 검둥개가 되고 싶다'는 말로 편지를 끝맺는다.

신유진은 이 편지를 읽지 못했다. 그녀는 서른세살의 나이(예수가 사망한)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한때 신유진과 친교를 나누었고, 지금은 여성지 기자로 일하는 화자에 의해 읽힌다. 화자 '나'는 신유진의 요절에 관해 기사를 써야한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과 리드문을 뽑고 그 속에 그녀와 김서인의 사랑이야기를 버무려 낼 수는 없다. '나'는 김서인을 만나 신유진과의 관계를 캐묻는다. 질문을 하면, 왠지 신유진이 왜 죽었는지, 그녀의 마지막 사랑은 어떤 형태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김서인은 신유진을 부정한다. 닭이 울기 전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정하듯이.

예전에 인하대학교 앞에 서점이 두 개 있었다. 길서점과 새벽서점. 길서점은 주인이 어느 날 소문과 함께 사라졌고, 새벽서점은 만화방을 별도로 내는 등 수익사업을 펼쳤으나 끝내 영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쨌거나 둘 중 어떤 서점에서였을 것이다. 중앙에 깔린 신간을 보는데 고은주의 <여자의 계절>이 깔려 있었다. 작가의 얼굴을 전면에 배치한 책은 마치 '소설가인데 예쁘지?' 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엉뚱하게도 소설책을 사서 읽으면 출판사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 생각하여 고은주의 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여름>을 두고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2011년에 읽었는데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아나운서와 청취자 스토커의 이야기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현기증>은 나쁘다 좋다를 떠나 이미지만 가득하다. 자클린 뒤프레와 바렌보임, 마일스 데이비스, 이시가와 다쿠보쿠 등 음악가와 시인들을 주워 섬기며 관심분야 자랑과 이미지 놀음을 펼친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쿨함을 유지하며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 김서인, 그리고 그런 김서인에게 열정적인 태도로구애하는 소설가 신유진의 구도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작가는 '요새 어린 작가들이란...' 하는 태도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건조함과 냉소는 이제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유행이 되어 있었다. 쿨하다는 말조차 이제는 더 이상 쿨하지 않았다. 작가들은 스스로의 삶에서도 건조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삶이 건조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쓴 소설을 뒤적이는 내 손이 점점 더 메말라가고 있었다. 유진의 건조함은 그런 종류의 까칠한 메마름과는 달랐다. 그것은 단정한 문체와 정돈된 구성이 빚어내는 빠듯함의 결과일 뿐, 그처럼 미리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

항상 새로운 선지자가 나타나면 그 종교는 이단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헤겔의 변증법이 거꾸로 선 이유가 뭐겠는가. '나까지가 끝'은 본인이 외치는게 아닌데, 성급한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금단의 문장을 발설하고 만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0588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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