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
이청해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8월
평점 :
'나'는 서른두 살로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웹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고, 웹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도 박했다. 게다가 '나'는 불끈하는 성정 탓에 수시로 직장을 옮겨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런 이유로 '판도라'라는 별칭의 남자 친구와도 그저 '쿨한' 관계를 이어갈 뿐이다.
'나'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집에서 독립, 월세 100만원 짜리 오피스텔로 이사 했다. 그런데 일감을 맡고 돈벌이 전선으로 다시 의욕적으로 뛰어 들려는 그 시점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평생을 엄마가 벌어들인 돈은 물론 내야할 공과금 까지 끌어다 술을 사 마시는 데 골몰하던 아버지. 가족과 연이 끊어지다 시피 한 뒤, 부자인 할머니의 여관을 운영하며 소읍에서 살아가던 그 아버지가 둔기에 맞아 살해 당했다. 가족들은 현장에 도착한 뒤 형사들에게 용의자 취급을 받아가며 알리바이를 대야 했고, 작은아버지 내외는 유산에 눈이 멀어 할머니에게 찰싹 달라 붙어 아부하기 바쁘다. 여관에서 일하던 둘남이라는 스물 안 된 계집애는 아버지와 치정 관계로 보였다.
처음엔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답보 상태가 돼버린다. 엄마는 아버지의 혼이 씌웠는지 헛소리를 했고, 결국 절에 재를 지내러 간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생물학적 죽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관계의 한 축과 결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버트런드 러쎌은 우리가 느끼는 불행감의 99프로는 가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다. 신경숙은, 물론 그녀는 표절작가이므로 어디선가 베낀 말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부모나 형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운명은 있다고 썼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지만, 그 관계에서 고통, 질곡, 부담감과 압박감, 답답함 등을 느낀다. 떼어내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 '내' 외모와 성정도 어찌 보면 내가 미워했던 부모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생물학적 연좌제' 등으고 갑갑해지기도 한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관계가 주는 부조리함과 불가해함의 으뜸은 가족관계로 부터 비롯된다.
이청해는 할머니의 자랑스럽고 귀여운 큰아들로만 평생을 살다, 잡범의 손에 사망해버린 아버지를 둔 딸에 관해 이야기 풀어 나간다. 그 딸은 가족관계의 끈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자기보다 열 몇살 어린 여자애와 좋아 지냈다는 것, 남동생이 동성애자라는 것, 엄마가 수양딸처럼 생각하는 또 다른 관계가 있다는 것, 자신이 아버지를 닮아 틀에 얽메이지 않고 남자와 순간을 즐기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된다.
인간 관계란 결국 '존재'한다면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것(自重自愛)'이라고 한 노승의 말을 떠올리며 한 단계 성장한다.
스물 초입에 이청해의 <빗소리>를 사서 읽었다. 순전히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때는 왜 제목만으로도 그 소설을 읽고 싶었을까... 다시 읽는 이청해의 소설은 그때만큼의 설렘이나 울림이 없다. 내 마음이 딱딱해져서겠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197225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