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루크레시오는 동료 수프가 점찍어 준 집에 좀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와 맞닥뜨린다. 꼬마는 머리칼 한 올 없는 대머리였는데, 자신의 이름이 칼비노라고 했다. 루크레시오는 말썽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칼비노에게 자신은 얌전히 집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하지만, 칼비노는 집 안의 장치들을 조작해 루크레시오가 도망치지 못하게 한다.

이어진 대화는 다소 이상했는데, 꼬마는 루크레시오의 과거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특히 루크레시오의 전과에 대해 위협하듯 언급한 뒤 이상한 제안을 했다. 자신의 아빠가 급히 어딜 가서 한동안 못 돌아올 것 같으니 아빠 노릇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루크레시오는 물론 제안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로키라는 이름의 개(사실은 늑대)까지 동원해 협박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대역을 하기로 하고 머리를 박박 민다. 그리고 이때부터 루크레시오는 상식과 매번 조금씩 엇나간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자신을 실버 선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루크레시오가 묻는다.

"그러니까 마음속으로는 당신이 실버 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군요......"

"자네는 왜 내가 실버 선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실버 선장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작품 속 인물이잖아요."

"바로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나폴레옹의 삶이나 인생을 천분의 일이라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 미친 거라네."

작가는 또 다시 자신을 후크 선장이라고 믿는 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책들처럼 <보물섬>도 말이야, 하나의 설계도면일세. 일개 집을 넘어서 상상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는 도면 말일세. 매혹적인 인물들이 사는 하나의 세상이지. 그 도면은 간단해. 몇 장의 종이 위에 글자가 줄지어 있을 뿐이지.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자가 자기 상상력으로 창조해내는 세계는 그 책-도면을 넘어서 무궁무진하다네."

"하지만 책은 우리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잖아요"

"거리를 두게끔 돕는 거죠......책을 읽을 때...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나중에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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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카를로 프라베티는 뉴욕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인 수학자이면서 50권이 넘는 소설을 쓴 작가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생인데 여덟 살부터 스페인에서 자란 탓에 책은 스페인어로 쓴다고 한다.

얼핏 보면 농담 같은 대화들로 구성된 이 소설은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준다. 현실의 인물이 아닌 작품 속 인물이야 말로 우리가 감정 이입하고, 응원하고, 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대상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달라진 모습으로 다음번 사상 속 여행을 것. 그것이 독서의 소박한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루크레시오가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에 빠져 칼비노의 집에 좀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뒤 자신의 상식과 어긋나는 상황에서 엉뚱한 질문들을 받는 과정을 <아담스 패밀리>풍 스토리로 엮어 낸 이 작품은 2007년에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17065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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