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의 여행
송기원 지음 / 문이당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마흔줄에 접어든 '나'는 10년 넘게 다니던 잡지사에 사표를 내는 것과 동시에 아내에게 이혼서류를 넘겨준 뒤 인도로 향한다.

뉴델리 공항에서 아귀처럼 달려드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딘가 밑바닥의 끝까지 와버린, 그리하여 더이상 아래로 떨어질 데가 없는 자들만이 지닌 어떤 평화를 느낀다. 그리고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혼곤한 삶 속에서 다시 일어설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뉴델리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간 곳은 리시케시였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블랙 사두' 차림을 한 대학 동창 한태인을 만난다. 그는 출가한 뒤 더 큰 깨달음을 위해 인도에 와 마음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한태인은 인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온 사람들 대부분이 본질이 아닌 이미지에 홀려 엉뚱한 것을 좇거나, 자신처럼 너무 많은 '알음' 때문에 진정한 깨달음으로 나아아가지 못하고 있다 했다.

'나' 역시 인도에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찾으러 왔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 찾아지는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런 '나'에게 한태인은 마음이 무엇을 원하든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모두 내버려두라고 충고한다. 누구를 죽이는 일이든, 배반하는 일이든, 간음하는 행위든, 설혹 자신을 죽이는 일이든. 그 동안 하고 싶으면서도 못했던 것들을 어떠한 속박도 없이 끝까지 해보는 것,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무조건 허용하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한태인과 헤어진 '나'는 강고트리로 가서 갈증에 대해 명상한다. 그는 인도로 오기 전 한 여자를 만나 일주일간 지낸적이 있다. 그 여자와의 관계를 세속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퇴폐적이고 부도덕한 한순간의 불륜에 불과할 것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갈증을 호소했고, 헤어진 지 한 달 뒤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그 여자의 죽음 직후 '나'는 사표를 내고, 이혼서류를 넘겨준 것이다.

기이하게도 여자의 사망한 뒤, 여자가 '나'의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갈증 그 자체였고, '나'는 그 갈증에 시달렸으며, 결코 여자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빈 껍질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인도행을 결심했다.

히말라야 중에서도 가장 깊은 오지 중의 한 곳인 강고트리에서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방생(放生)을 시도하던 '나'는 자신의 안에 있는 살기를 느낀다. 그 살기는 어쩌면 갈증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몰랐다. 상념 속에 나타나는 생명체는 모조리 죽이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사망한 아버지, 어린 젖먹이를 두고 재가한 어머니, 친척집에 맡겨져 고아처럼 자란 유년시절. 그런 과정을 곱씹으며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 실금처럼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갠지즈 강에서 화장하는 시체들을 바라본 뒤로 '나'는 살기들이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슬슬 자취를 감추었음을 깨닫는다.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떠한 조건도 없이 모조리 밖으로 풀어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단 한 번도 햇빛이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상념들을 모조리 밖에다 풀어놓다 보니 누군가 '나'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침내 '나'는 여자로 인해 느낀 것들과 외로움, 안타까움, 두려움, 갈증, 심지어 살기까지 모두가 울음이 되어 터져나온 뒤 사흘을 열병처럼 앓은 뒤 그 여자를 떠나 보내는 통과의례를 마치게 된다.

어느 날, '나'는 결가부좌를 한 채 마음속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상념들을 지켜보다 말고, 문득 소리내어 외친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 제3의 눈을 의식한 직후 몬순이 시작되고, '나'는 태어난 지 미처 한 해가 지나지 않은 채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아이의 울음을 따라 '레'로 향한다.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한 송기원은 1974년 단편소설 '경외성서'와 시 '회복기의 노래'가 각각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동시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기린아다. 하지만 그는 군부독재에 저항한 탓에 74년, 80년, 85년, 90년 총 네 차례 옥고를 치룬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와 같은 사실주의적 작품 경향은 <청산>에서 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딸이 백혈병에 걸려 일찍 사망한 일과 관련 있지 않나 추측된다. 그는 이후 불교수행과 명상에 경도된 작품들을 발표하다 재작년인 2024년 사망했다.

<안으로의 여행>에 나오는 '나'는 작가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투영시킨 인물이다. 아버지는 아편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일찍 재가하여 송기원은 고아나 다름 없이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시로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 위악을 일삼으며 '위로받지 못한 삶'을 견뎌내려 했다. 딸을 먼저 앞세운 뒤 명상으로 빠져든 그의 행보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작품에서 '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독함, 위악, 살의로 버텼으나 끝내 마흔줄에 접어든 나이에 심각한 갈증을 느껴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인도로 떠난다. 추운 히말라야 고원 지대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자신의 감정들을 꺼내 '토끼 간을 말리듯' 응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긍정하는 '안으로의 여행'은 끝에 '나'는 깨달음을 얻었을까. 고통의 연꽃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기쁨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는 자기 위로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16314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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