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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ㅣ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소설은 어머니와 어머니가 쓰시던 칼에 관해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인천 송현시장에서 구입한 한 자루의 '특수 스뎅' 칼로 칼국수 집을 내고, 못난 남편을 건사하고, '나'를 거둬 먹이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삶을 살아낸다. 그 세 월동안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는 때로 화투를 쳤으며, '나'는 어머니가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은 풍성한 육체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칼 한자루에 의지해 집안을 다잡아 나간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국수를 삶다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장례 절차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들에 '그류'라며 울먹였을 뿐이다.
장례식 중간에 '나'는 집에 아버지 옷을 가지러 갔다가 어머니가 사용하던 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칼로 사과를 깎아 먹는다' 아, 맛있다!' 사과 조각은 우주 멀리 날아가는 운석처럼 뱅글뱅글 돌며 내 안의 어둠을 여행하게 될 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 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칼자국>을 읽다보면 김주영, 이문열, 이청준, 이문구 등 거장들이 고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과거로 회귀하는, 고전적인 스타일이 떠오르다. 다른 점이라면 거장들이 거대한 서사 속에서 장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나간다면, 김애란은 사람들을 응시하고 그 속에 숨겨진 삶의 비밀을 살그머니 끄집어내서 음미한다는 점이다. 별것 아닌 사건들이지만 김애란은 비밀을 캐내서 말 속에 녹여낸다. 그러면 위와 같은 문장들이 된다. 자꾸 읽어보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김애란 소설 속에는 많다.
소설은 제9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딴 얘기로 소설을 읽다 멈춰선 곳이 있다. "나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정박아처럼 굴었다" 라는 문장과, "좋은 칼 하나라든가 프라이팬 같은 것이 여자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문장에서였다. 반복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밑줄 친 부분에서 멈춰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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