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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3월 2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장시 지하철 1호선 시후 문화광장역에 한 남자가 여행가방을 끌고 나타났다. 남자는 열차를 타기 위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검색대에 가방을 올리라는 보안요원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다. 보안요원과 옥신각신하던 남자가 갑자기 가방을 끌고 도망치려 한다. 수상쩍게 여긴 보안요원들이 그를 에워싸자 남자는 자신에게 살상무기가 있다, 열면 폭발한다 따위의 말을 두서 없이 주워 섬긴다. 사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안요원은 샤청구 공안분국에 출동을 요청했다. 하지만 폭탄 제거반이 현장에 도착해 측정기로 검사한 결과 폭탄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가방 안에는 나체 상태의 시체 한 구가 들어 있었다.
용의자는 형사소송 전문변호사인 장차오로 그날 저녁 살인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피해자의 이름은 장양. 장차오가 대학 교수를 하던 시절 제자였다.
장양은 졸업 후 검찰관이 되었으나 뇌물수수에 연루되고 도박에 손을 댔으며, 부적절한 여자관계로 아내와도 몇 년 전 이혼했다. 그 후 기율검사위원회에 고발되어 조사를 받은 뒤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 찾아온 장양을 장차오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시내의 집을 공짜로 제공했고, 30만 위안도 빌려 주었다. 그런데 장양은 한 달 뒤 돈을 더 빌려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장양은 빌려준 돈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한 상태었다. 실망한 장차오는 장양을 꾸짖었고 이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졌다. 사건 발생 바로 이틀 전에도 크게 다투는 소리 때문에 인근 파출소에 신고가 되기도 했다.
3월 1일 7시, 장차오가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고 장양은 그날 8시에서 12시 사이 밧줄로 목이 줄려 사망했다. 밧줄에서 장차오 지문이 검출 되었고, 장양의 손톱에서 장차오의 피부 조직이 검출되었다.
택시를 타고 시체를 유기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도 장차오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그는 시체 유기 전 불안감에 술을 마셨는데 생각보다 취해버렸고, 운전을 하다 사고라도 내면 범행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체를 가방에 넣은 후 택시를 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탄 택시가 문화광장역 부근에서 추돌사고를 당한 탓에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장차오는 어쩔 수 없이 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희대의 엽기적인 이 사건은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했고, 다수의 증거가 발견된 덕택에 쉽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2013년 5월 28일, 장시 중급 인민법원에서 1심 재판이 열리자 장차오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는 장양이 살해된 3월 1일 정오에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갔다가 3월 2일 오전에 장시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왕복 비행기 표, CCTV, 탑승 기록, 호텔 수박 기록, 면담 고객의 진술 등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명료했던 사건이 한순간에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사뭇 자극적인 도입부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2001년 본 성 칭시 핑캉현 관할 먀오가오향이라는 낙후된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우구이핑은 장화대학교 법학과 3학년으로 초등학교 교육지원 프로그램에 자원하여 교사가 된다. 2년 기간을 채우면 시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허우구이핑은 가르치는 아이 중 하나가 임신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게다가 다른 아이 하나가 마을 깡패의 차를 타고 어딘가 갔다 온 뒤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난다.
허우구이핑은 부모가 도시로 돈 벌러 나갔거나 조부모 손에서 크는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성상납되고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해 고발하지만 그의 고발은 누군가에 의해 번번히 묵살되었다. 허우구이핑에 대한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지만 그는 그만두지 않았고 결국 살해되고 만다.
경찰은 대학 측에 허우구이핑이 부녀자를 겁탈한 뒤 자살했다고 통보했다. 이 때 장차오는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맡고 있었다. 장차오는 검시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권력형 범죄라는 것을 직감하고 미리 포기하고 만다.
후에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된 것이 허우구이핑의 대학 동창 장양이었다. 막 검찰관이 된 장양은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지만 법의관 천밍장, 경찰 주웨이 등의 후원과 도움으로 차츰 사건에 몰입하게 되고 마침내 권력형 범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권력과 공안, 폭력조직 까지 결탁한 세력에 의해 모든 증거는 말소 되고 장양 마저 함정에 빠져 검찰관에서 파면 당한 뒤 징역형까지 살게된다.
진실을 알릴 모든 방법이 거세되고 사건에 관계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징역을 살고 패배한 그 순간, 장차오는 과거 자신이 제자의 사망 사건을 허투루 다룬 것을 후회하고 하나의 사건을 기획하게 된다. 누가 봐도 명확한 범죄사건을 일으킨 다음 정 반대 결과를 법정에서 제시해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킨 다음 허우구이핑 살해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한다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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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진천은 저장대학교 수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 명성을 얻었다. 공대 출신 추리소설가가 흔히 그렇듯 쯔진천도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 하지만 작풍이 상당히 달라 억지스런 느낌이 있다. 오히려 홍콩의 찬호께이가 이러한 별칭에 어울릴 것 같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모티프를 도용한 감은 있지만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우직하게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과 인물들의 입체적 묘사가 훌륭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시비를 어느정도 상쇄한다.
10년간의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관계된 인물 대부분은 죽거나 중형을 받고, 범인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자살한다.
작품은 "2014년 7월 29일 거물급 호랑이가 낙마했다" 라고 끝을 맺는데, 이 날은 중국 당국이 부정부패 혐의로 저우융캉 전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한 날이라고 한다.
시진핑 집권 직후 개혁 이미지 확산 차원에서 책의 출간이 허용된 것인지, 중국 정부의 자신감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이만한 사회파 추리소설이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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