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밀리언셀러 클럽 110
마커스 세이키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대니 카터와 에번 멕건은 시카고 브리지포트에서 나고 자랐다. 아일랜드 이주민이 모여사는 그 동네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경찰이나 소방관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대니 카터와 에번 멕건은 후자를 택했고, 죽이 잘 맞았다. 전당포에서 에번이 총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대니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번은 매번 절도를 강도사건으로 발전시키려했다. 그날도 전당포 주인을 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에번은 권총을 발사했다. 대니는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쳤지만 에번은 그러지 못했다. 체포된 에번은 살인미수로 1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한다. 에번은 대니의 이름을 대면 감형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7년이 흘러 대니는 손을 씻고 합법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건설업자 리처드 밑에서 건실하게 일했고, 자기 소유의 집과 차를 소유했다. 여자친구 캐런과도 장래를 약속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풀려갔다.

하지만 대니의 평온과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었다. 에번이 가석방으로 조기 출소해 대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에번은 끝내 대니의 이름을 대지 않은 것을 상기시켰고, 죄를 모두 짊어진 자신에 대한 대니의 행동이 매우 박절했음을 토로했다. 대니는 에번의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고, 면회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에번은 몇 차례 대니의 주변에 나타나 '새로운 건수'에 참여할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대니는 전과 2범이었고 과거 에번과의 범죄를 추궁당하면 지금의 평온한 삶이 산산조각 날 것이 뻔했다. 대니는 에번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대니는 이런 사정을 자신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패트릭에게 털어놓는다. 패트릭은 여전히 거친 삶을 살고 있었고, 자신의 형이나 다름없는 대니를 위협한 헤번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번을 조금 겁주려던 패트릭의 칼날보다, 감옥에서 비정함을 몸에 익힌 에번의 총이 훨씬 빨랐다.

에번은 대니가 패트릭을 보냈다고 생각해 분통을 터뜨렸다. 패트릭을 죽였다는 사실을 대니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대니의 여자친구 캐런을 위협했다.

대니는 같은 아일랜드계로 약간의 안면이 있는 션 놀란 형사에게 자신이 처한 처지를 하소연해봤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션 놀란은 대니가 7년 전 사건의 공범이었다는 심증이 있었기 때문에 대니를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대니는 에번에게 굴복한다.

에번의 계획은 대니가 일하는 건설사 사장 리처드의 어린 아들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대니는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고, 자신의 방식에 따라, 마지막 범죄를 저지른다는 조건으로 계획에 동의한다.

납치는 그럭저럭 성공하지만 이들이 간파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리처드는 아이티 버블 붕괴로 가진 돈 대부분을 주식으로 날려 에번이 요구한 100만 달러를 마련하지 못할 처지라는 것이었다. 설혹 그가 100만 달러를 마련하더라도 그의 건설사는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고, 그에 따라 거기서 밥을 먹는 많은 사람들이 곤란하게 될 터였다.

그 즈음 패트릭의 시체가 발견된다. 션 놀란 형사는 패트릭의 음성사서함에서 대니의 메시지를 들은 뒤 유력한 참고인으로 대니를 지목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잘 풀리지 않는 납치와, 대니와 에번을 뒤쫓는 션 놀란, 그리고 계획과 무관하게 폭주하기 시작하는 에번으로 인해 사건은 엉망진창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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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6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본 문구인 것 같은데 '과거는 치유되지 않는다'(엘리자베스 1세)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이 정말인지 모른다. 과거에 풀지 못한 일이 이제와서 치유될 리 없다. 단지 희미해지거나, 기억나는 빈도가 뜸해지거나 할 뿐.

악역은 명백히 에번이지만, 에번에게 힘을 주는 것은 대니의 존재다.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루지 않고 현재 가진 것들도 뺏기지 않으려 하므로 대니는 명분도, 힘도 없는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무언가를 쥐려면 쥔 손을 먼저 펴야 하는 법이다.

대니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그 과정은 '공포' 그 자체다. 과거의 망령이 살아나 현재의 나를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 그 상황을 '공포'가 아닌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망각하는 것으로 숙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삶의 어느 뒷골목에서, 우리는 예고없이 과거와 직면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삶이 한 부분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파괴 이후 새로운 건설을 시작할 지', 아니면 '파괴의 잔재만 남겨둘지' 두 가지 뿐이다.

마커스 세이키는 미시건 주 플린트 출신으로 기업홍보 및 마케팅 부문에서 10년간 일하며 글쓰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2007년 발표된 본작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The Blade Itself>는 그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심리묘사, 스타일리시한 문체 등이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 2의 데니스 루헤인'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스트랜드 매거진 비평가상'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칼날은 저 스스로 폭력을 부르나니' (호메로스, 오디세이)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56900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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