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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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시작된다.

나의 이야기는 K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으며 K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K는 15년 전 자살을 위장했다. 그는 30여 년간 쉬지 않고 뛰어난 작품을 써왔다는 60대 소설가였다. 어촌마을 후미진 공터 컨베이어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자신이 죽은 것으로 꾸민 K는 '나'를 대역으로 고스트라이터를 자청한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훔친다면 그것은 제법 공정한 거래이지 않겠습니까?" 라는 제안에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전희정이라는 필명으로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15년간 그가 써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고 인세를 타내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어느 때인가는 스스로 작품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어본다. 물론 될 일이 아니었으므로 포기한다.

15년이 경과한 어느 날, 그가 죽는다. '나'는 그가 죽었을 경우 따라야 할 프로세스에 따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그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K에게는 강재인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 역시 소설가였고, 아버지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의미에서 손승미라는 이름으로, 성까지 개명했다. 아버지 사후 10주년에 아버지를 추모하는 글 쓰기를 거부했고, 아버지에 대해 들먹이는 문단관계자들을 불편해했다.

그녀는 책과 둘러싸인 공간에서 자랐고 그 영향으로 독서에 탐닉했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미친 긍정적 영향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생활은 허위로 가득찬 사람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경원했다.

그러던 참에 K가 죽자, '내'가 K의 딸에게 K가 그녀에 대해 쓴 글들을 출력하여 몰래 두고 온다. 이로써 '나'와 K의 딸이 연결된다.

강재인, 아니 손승미가 아버지 사후 15주년에 발간되는 문집에 글을 쓰기로 한다. '나'는 그녀에게 K와의 일과 관련된 파일을 보낸 뒤 문단을 떠난다. 그리고 전희정이라는 필명을 버리고 한영주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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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생물학적 딸은 강재인으로 태어나서 손승미로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아버지와 대결한다. 예술이라는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여성판 오이디푸스다. 그녀는 실비아 플라스, 조지아 오키프, 지하련, 최정희와 정신적 자매가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이 경계를 지나면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쥐게 된' K는 예방주사를 맞는다. 여성 오이디푸스에게 살해되기 전에 스스로 자살한 뒤, 에밀 아자르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강력한 적에게 여성 에밀 아자르를 내세워 대결하게 한다. 효과가 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점이라면 전희정이라는 변수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대신 사는 것 외의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배역을 연기한 것이다.

소설은 갖가지 장치와 기교가 난무한다. 하지만 탄탄하지 못한 서사와 얼버무리는 디테일 탓에 성기고 맥빠진 느낌을 준다.

사실 K의 딸이 강재인이니, K는 '강'이다. 하지만 작가는 카프카의 <성>, <심판>의 주인공과 같은 K라는 이니셜을 사용한다. 원하던 효과를 얻었는지 의문이다.

K가 자살을 위장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억지다. 시체가 어디서 난 것인지, 시체의 감식 결과는 어땠는지 얼버무린다. 현실에서 시체가 탔다고 해서 유전자 감식 없이 K로 확정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작가가 이러한 부분에 완전 문외한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설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K와 아버지의 불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몇 마디 말로 K와 강재인의 관계설정을 독자와 상호합의한 것으로 퉁친다. 독자는 여전히 강재인이 왜 K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그를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상징과 현실의 미숙한 사용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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