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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마뱀 빌이 앨리스에게 뜬금 없이 암호를 정하자고 제안한다. 암호를 왜 정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빌은 당연하다는 듯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나는 이미 적이 아니'라는 앨리스의 항변에도, 도마뱀 빌이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계속하자 앨리스는 포기하고 암호를 정해자고 한다. 도마뱀 빌이 "스나크는" 이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부점이었다"고 말한다. (루이스 캐럴의 시 스나크 사냥의 맨 마지막 행인 For the Snark was a Boojum, you see)
도마뱀 빌은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앨리스의 주머니 속에서 잠을 자던 겨울잠쥐를 잠깐 의심해 봤지만 역시 둘은 이 암호에 대해 오늘 처음 말하는 것이었다.
혼란에 빠진 둘에게 왕과 시종, 말들이 허둥대며 지나갔다.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치광이 모자장수와 3월 토끼가 험프티 덤프티는 살해 당했고, 이것은 살인사건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잠에서 깨어난 구리스가와 아리는 자신이 최근들어 똑같은 세계에 관한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에 관한 상념에 빠져 있던 아리는 문득 학교에 늦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햄스터에게 먹이를 준 뒤 대학 연구실로 향한다.
연구실은 묘하게 어수선했다. 누군가 나카노시마 연구실의 오지 씨가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동글동글한 체형 때문에 달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사람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실험실 사용 때문에 이모리와 얘기하다 이모리가 "스나크는" 이라고 말하고, 아리가 "부점이었다" 라고 말하면서 세계가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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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는 1962년 교토 출생으로 오사카대학 공학부를 졸업했다. 1995년 <완구수리자>로 제 2회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으며, 2012년 <천국과 지옥>으로 세이운상(星雲賞)을 수상했고, 2013년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본작 <앨리스 죽이기>를 발표했다. 시리즈는 클라라, 도로시, 팅커벨로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작가가 2020년 11월 23일 암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앨리스 죽이기>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그리고 <스나크 사냥>을 기본 텍스트로 비틀기, 간섭하기, 교차편집하기 등을 통해 호러 미스터리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이다. 루이스 캐럴 텍스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중심으로 훨씬 흥미로운 독서가 될 수 있다.
소설에서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 살해범으로 몰린다. 이유는 흰토끼가 정원에서 앨리스를 봤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상한 나라'와 '지구'가 꿈으로 연결되어 있어 꿈에서 죽으면 지구에서도 죽는다는 점이다. 꿈 속에서 누명을 벗지 못하면, 여왕의 '목을 쳐라' 명령에 희생될 것이 분명하다. 앨리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7일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사건은 계속된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그리핀이 굴을 먹다 목이 막혀 죽고, 지구에서는 시노자키 교수가 상한 굴을 먹고 식중독으로 죽는다. 다음으로 흰토끼가 부점에 의해(스나크의 일종으로 부점을 보면 사라진다) 사라지고, 지구에서는 아리의 1년 선배 다나카 리오가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빌이 밴더스내치(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괴물)에게 하반신이 뜯어먹혀 사망하고, 지구에서는 이모리가 만취한 상태에서 들개에게 안면을 뜯어먹혀 사망한다.
아리는 빌이 사망 직전 남긴 다잉 메시지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가 없다"에서 추론하여 히로야마 부교수가 사실은 공작부인이 아니라 메리 앤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 흰토끼가 앨리스를 범인으로 착각한 것은 시력이 좋지 않아 메리 앤과 앨리스를 착각한 것.
앨리스는 메리 앤에 의해 꿈 속에서 살해 당하지만 사실 앨리스 역시 지구의 아리가 아니었다. 꿈속의 앨리스와 대응되는 것은 지구의 햄스터였고, 꿈속의 겨울잠쥐가 사실은 지구의 아리였던 것.
소소한 반전에 이어 더 큰 반전이 이어지는데, 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이 본체이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죄다 붉은왕이 꾸는 꿈 속의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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