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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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고 했다. 15년 남짓이 흐른 뒤 <닥치고 정치>를 읽고 있으니, 충분히 황혼이라 할 만하다.

김어준 자신은 '무학(無學)', '절독(絶讀)'이라 하지만, 사실 그의 의견은 수준 높은 공부에 기반하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들은 전혀 근본 없는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매우 예리하고 날카롭기 까지 하다.

읽으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구절들.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우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36p) 그래서 우의 엔진은 공포(38p) 우는 지가 다 먹고 남은 것들, 그 찌꺼기, 자투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거기서부터 경제라고 얘기(41p) 그런 우를 유일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자존심... 우파가 자존심이 없으면... 겁먹은 동물.(42p)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 주제에, 인간 우파인 척하는 거(43p)

좌는 그 공포를 잘게 나눠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포의 몫을 줄여서 해결하려 하는 거라고. 문제는 밀림 그 자체에 있는 거니까. 우가 본능적 반응이라면, 좌는 노리적 대처야... 이 대목에서 평등이 아주 중요한 가치로 등장... 평등이 깨지면 기본적인 결속 자체가 안 되는 거니까.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44p)

사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태도과 가치관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인데, 김어준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우생론'으로 읽힐 위험마저 있는 위와 같은 주장을 한다. 직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다.

또 하나의 작전이 바로 여론조사 선전전이지. 실제 투표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의 격차가 어마어마했잖아... 보수의 작전이야 큰 격차를 기정사실로 확대재생산해 진보적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도 않게 만들려고 한 거지만, 그 수작에 여론조사 기관들이 최소한 수동적 공범이 되었다.(175p)

'황혼녘'에 읽는 이 문구는 얼마나 통찰력 있는 분석인가.

진보 정당의 방식은...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그걸 당한 상대는,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로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더 슬픈건, 보수군이...진보 군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꿔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그 내용은 읽어주지도 않아.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렇게 연애 시작.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222-223p)

진보정당의 선명성 경쟁에 관한 콩트가 촌철살인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18354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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