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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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도쿄 네리마구 주택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남편 히오키 다케시와 아내 유리는 칼에 찔려 살해 당했고, 중학생 아들 다이치는 독극물을 먹고 사망했다. 남편과 중학생 아들은 성인 남성에 의해 심하게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다.

아내 유리는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 위에는 312개의 종이학이 흩뿌려져 있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벽장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 깨어난 열두 살 난 사나에 뿐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들어온 흔적도 없고, 출입문은 안으로부터 잠겨 있었다. 화장실의 환풍구는 성인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완벽한 밀실이었다.

경찰은 사나에에게 수면제가 든 쥬스를 건낸 정체 불명의 사나이와, 당시 그 동네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빈집털이범 등을 주목하여 수사를 진행했지만 딱히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유력 용의자로 체포한 와타리베란 사나이 역시 기소조차 하지 못한다. 결국 사건은 미결로 남게 된다.

주인공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일처리는 깔끔하게 해낸다. 사장이 부하직원이나 계약직 사원을 부당하게 대접하면 나름대로의 항의도 한다. 하지만 정렬이라든가, 신념같은 것은 없는, 어딘지 나사 빠진 일상이었다.

TV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뉴스가 온종일 흘러 나온다. 하지만 정치인은 피해회복이나 원인규명보다 복구를 둘러싼 이권에만 눈이 벌개져 있다. 그런 현실을 보며 '나'는 성실하고 차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느낌으로 무료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여자와 우연히 만나 하룻밤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나'에게 탐정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접근한다.

탐정은 '내'가 하룻밤 보낸 그녀와 동거했던 남자가 실종되었다, 그 남자는 경리부정을 저지른 뒤 행방이 묘연하다, 어쩌면 여성이 살해해서 자택의 큰 화분에 묻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조사에 협조해 줄 수 있는가, 따위의 말들을 했다.

'나'는 심드렁한 태도로 듣다 그날 여자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탐정이 찾아왔더라는 말, 화분 속에 시체가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솔직히 건넨다. 여자는 선선히 화분을 파해쳐 보여준다. 시체는 없었다.

다시 만난 탐정이 '나'의 답변을 들은 뒤 맥 빠진다는 듯 얼마간의 사례금을 건내준다. 받지 않으려 했지만 탐정은 어디든 가서 탕진해버리라고 했다. 탐정은 묻지 않은 말들을 해댔다. 그리고 알게된 여자의 정체. 여자는 22년 전, 도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사나에라고 했다.

'나'는 탐정의 얘기를 들은 뒤부터 사나에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2년 전 살인사건을 조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력 용의자를 변호했던 변호사, 사건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재구성해 책을 내려 했던 프리라이터 등을 찾아간다. 그리고 알게된 추가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남편 히오키 다케시는 지나치에 아름다운 아내 유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한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내 유리에게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이나 일탈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아들 다이치는 여동생인 사나에에게 성적 환상을 품었고, 실제로 사나에의 잠옷에서 다이치의 정액이 검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사나에가 자신의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행방불명 되었던 사내도 사나에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사실도. 그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뜻밖에도 사나에의 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녀가 쏟아놓는 말들은 과거 사건의 실마리이면서 어둠에 의해 잠식당한 사람의 음울한 자기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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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후미노리는 1977년생으로,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학업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후쿠시마대학 행정사회학부에 입학한다. 대학시절은 꽤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쾌한 사람들 틈에서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이 여의치 않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썼다. 초기에는 대중들이 좋아할 법한 글들만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개성없고 맥빠진 글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자신만의 언어로 진지한 글들을 다시 썼고, 결국 2002년 <총>으로 신초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차광>으로 노마문예신인상, 2005년에는 <흑 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상, 2010년 <쓰리>로 오에겐자부로상, 2016년 <나의 소멸>로 분카무라되마고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사나에의 고백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끊임없이 어머니를 의심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애에 실패한 뒤 자신을 내던지듯 결혼한 어머니, 사춘기에 들어서 여동생을 성적으로 원하는 오빠 등에 답답함을 느낀 사나에는 기묘한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사라져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다이치 역시 여동생을 차지하는데 유일한 방해물이 부모라는 생각에 그들을 해칠 생각을 하며 어두운 상상을 키워 나갔다.

그러다 그 즈음 유행한 빈집털이범을 떠올린 사나에는 매일 밤 문을 몰래 열어 놓는다. 빈집털이범이 자신의 바람을 대신 실현시켜 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정말로 빈집털이범이 침입했고, 빈집털이범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묶어놓은 뒤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다. 상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오빠인 다이치가 칼을 들고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찔러 죽인다. 다이치는 어머니의 옷을 벗겼다. 마치 성인이 된 뒤의 사나에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그리고 그 위에 학을 뿌렸다.

빈집털이범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빈집털이범은 어머니 유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단지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돌아왔다가 처참한 광경을 발견한 빈집털이범, 그리고 그에게 칼을 들고 달려든 다이치. 둘은 격투를 벌였지만 곧 다이치가 빈집털이범에게 제압된다. 그는 칼을 빼앗아 들고 도망친다. 격투 과정에서 빼앗다가 자신의 지문이 찍혔을 것이므로.

오빠 다이치는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다. 사나에는 이 모든 사건에 자신이 등장하지 않도록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던 것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사나에는 이후 오빠와 닮은 사람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라진 동거남, 그리고 '나'는 '오빠와 닮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나에의 진술이 어느 정도의 진실은 알려준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튀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다이치는 이미 사나에에게 욕정하고 있는데 왜 성인이 된 사나에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어머니의 옷을 벗긴단 말인가? 다이치가 독극물을 먹고 깜짝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이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나에는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만들 여러가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했는데 어쩌면 사건의 일부, 혹은 전부를 계획한 것은 사나에 아니었을까 등등... 하지만 '나'는 그렇더라도 사나에의 기묘한, 어두운 어떤 면에 끌리는 자신을 느낀다. '나' 역시 R이라고 불리는, 하이드씨와 같은 어둠을 강제로 분리한 전력이 있는 망가진 인간이라고 느끼고 있으니까...

<미궁>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삶이라는 것의 불안정성을 깨달은 일본인의 의식 변화를 바탕으로 어둠에 잠식당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 파편화된 개인의 소외감 등을 건드린다.

착실하게 살아갈 필요가 과연 있는 걸까.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항상 건전하게 살라고? 뭘 위해서?

도덕과 윤리에 대한 기준이 대격변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일본. 재생가능성 조차 의문시되는 불안한 정세를 반영하듯, 작가의 말들은 날이 서 있고, 등장인물들은 균형을 잃은 채 흔들거린다.

요새 들어 부쩍 '개인의 어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아진 것 같다.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현실 극복을 위한 다양한 기획들이 실패로 돌아간 것 지금, '희망' 대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9558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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