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쓰나미가 발생한 지구. 한번에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이 언제 발사될 지 모르는 상태였고,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는 '누군가를 죽이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해 지구 곳곳에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지구는 자정작용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이런 시기에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이브 크라메르가 화학 연료 대신 빛 에너지를 사용하는 태양 범선 프로젝트를 생각해 낸다. 억만장자 가브리엘 맥 나마라가 돈을 대고, 세계 단독 요트 일주 경기 2회 연속 우승자 엘리자베트 말로리가 키를 잡는다.

프로젝트 이름은 <마지막 희망 Dernier Espoir>으로 명명되었는데, 약 2광년(약 20조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14만 4천명의 사람을 태우고 천년 동안 여행해 이주하는 계획이었다.

비폭력적인 사람들을 선발해 지구를 탈출하는 계획은 각국의 반대를 불러 온다. 급기야 군대가 급파되어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려던 순간, 프로젝트 발기인인 이브와 멕나마라 등은 부족한 대로 출발을 결정한다.

우주선을 회전시켜 인공 중력을 만들고 지구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만든 '파피용(나비, 나방)'호는 처음엔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갔으나 유성의 충돌로 인한 돛의 손상,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걸린 자들의 반란, 치정살인과 같은 범죄의 발생과 처리를 둘러싼 이견, 광신적인 지도자의 발생 등 지구에서와 거의 유사한 폐단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200년 이상 지연된 시점에 살아남은 사람은 여성 1명과 남성 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었지만 모두 비행선에 탈 수는 없었다. 공간과 산소가 한정되었기에 엘리자베트-15(동명이인인 경우 숫자를 붙임)와 아드리엥-18이 착륙하기로 결정한다.

새로운 행성에 내린 둘은 그곳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공룡들은 둘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차츰 멸종의 길로 접어든다.

둘은 가지고 온 식물과 동물 표본을 옮겨심거나 부화시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류의 번식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년간 임신이 되지 않았고 사소한 다툼 끝에 엘리자베트가 집을 나가 동굴로 가버린다. 3개월 뒤 아드리엥-18이 엘리자베트-15를 찾아가 화해를 청하려 했으나 그녀는 뱀에 물려 죽은 상태였다.

외로움에 넋을 놓고 있던 아드리엥-18이 수정란이 있었음을 생각해낸다. 하지만 신선한 골수가 부족해 세포분열이 되지 않자 자신의 갈비뼈 일부를 절개해 마침내 에야라는 여성을 탄생시킨다.

에야는 청력에 문제가 있어 이름들을 헤깔렸는데 반란을 일으킨 사틴을 '사탄'으로, 아드리엥-18을 '아담'으로, 자신의 이름 에아를 '이브'로 발음하곤 했다.

어찌보면 파피용 호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정자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새로운 행성이 난자의 역할을 한 것이고. 둘의 이야기가 어쩌면 새로운 창세기 이야기인지도...

------

갖가지 과학적 설정에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작가의 순진한 세계관과 정세 인식 탓에 소설의 기본 전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잘 안된다.

천재 과학자,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모여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과정도 억지스럽지만, '탈출만이 희망'이라는 논리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설정, 즉 한 행성에서 출발한 우주선(정자)가 행성(난자)와 만나 우주적 의미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역사가 시작한다는 설정을 거꾸로 짜맞춰가다 보니 그렇게 된 듯 하다. 소설이 결말부의 아담과 이브, 뱀, 갈비뼈로 여성을 만드는 대목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나긴 중언부언 같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류츠신의 <삼체> 3부 역시 <파피용>과 같은 우주여행과 우주사회학의 공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데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707836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