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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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토니 라스트와 브랜다 부부는 헤턴 대저택을 물려받아 무료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편 토니 라스트는 저택 수리 외에 딱히 관심 분야가 없는 권태로운 인물이었고, 브랜다는 한때 아름다운 미모로 주목받았으나 결혼 후 사교계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빠른 사업가인 비버 부인의 아들 존 비버가 헤턴 저택을 방문한다. 토니 라스트가 의례적으로 건낸 초대의 인사를 존 비버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였다. 존 비버는 사교계에서 인기가 없었고 그럴싸한 일자리도 없는, 별볼일 없는 젊은이었다.

토니는 자기집을 방문한 존 비버를 아내 브랜다에게 쓸어 맡기고 본인은 자리를 비우는 등 홀대한다. 남편 대신 손님을 응대하게 된 브랜다는 젊은 남성 존 비버가 본인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존 비버는 브랜다의 외모에 끌렸지만 단지 돈이 많이 들 것 같다는 이유로 관계를 발전시킬 의지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존 비버의 태도는 브랜다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결과적으로 브랜다 주도 하에 둘은 불륜에 빠져든다.

이 즈음 비버 부인이 임대수익과 실내장식을 팔아치울 욕심에 브랜다에게 런던의 자그마한 아파트 임대를 권하는데 브랜다가 응낙하여 라스트 부부는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브랜다는 남편에게는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둘러댔고, 라스트는 이를 순진하게 믿었기에 가정은 외형만 유지되는 처지가 된다.

얼마 후 헤턴 저택 인근에서 사냥대회가 열리고 여기에 구경 갔던 라스트 부부의 아들 존이 낙마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들이 사망했는데도 부부의 태도는 매우 기이했다.

남편은 아들 사망 당시 다친 다른 여성을 걱정하는가 하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천박한 여성과 동물 소리를 흉내내는 우스꽝스러운 카드 놀이를 한다. 브랜다 역시 매우 침착한 태도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존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랜다는 남편 라스트에게 '존 비버를 사랑하고, 당신과 이혼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라스트는 아들에 이어 아내도 잃은 오쟁이진 남편 처지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위해 '불륜 증거 만들기'에 돌입한다.

당시 영국 법률이 인정하는 이혼 사유는 간통뿐이었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교계에서는 이혼을 하기 위해 탐정을 사고 배우자 아닌 다른 여성, 혹은 남성과 호텔에 들어 간통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연극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라스트는 아내가 간통을 했다고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간통을 벌인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판단하여 창녀 밀리를 섭외한 뒤 탐정들과 함께 호텔로 간다.

한편, '불륜 증거 만들기 여행' 직후 브랜다의 오빠 레지가 찾아와 이혼 조건을 연 2,000파운드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뒤 헤턴 저택을 팔 것을 종용한다. 라스트는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자존심의 원천인 헤턴 저택을 건드리려는 것에 대해 참았던 분을 터뜨린다. 그리고 이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후 브라질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브라질 여행 중 라스트는 메신저 박사라는 탐험가를 만나 '잃어버린 도시 찾기'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중도에 라스트가 열병에 걸려 앓아 누운 사이 메신저 박사가 폭포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만다. 오지에 고립된 라스트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다.

얼마 뒤 라스트는 가까스로 토드라는 자의 손에 의해 구출되지만 그는 라스트를 자신의 곁에 두고 책을 읽히려는 목적을 갖고 있을 뿐 그를 집으로 되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라스트를 찾아온 구조대 마저 토드가 따돌리자 라스트는 현실세계로부터 영영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만다.

헤턴 대저택은 라스트의 친인척에게 상속되고 존 비버와 헤어진 브랜다는 라스트의 친구이자 사교계의 방탕아 조크 크랜트멘지스와 결혼한다.

헤턴 저택에는 라스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헤턴의 앤터니 라스트, 탐험가, 1902년 헤턴에서 출생. 1934년 브라질에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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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에벌린 워의 아버지는 문학 평론가 아서 워이고 형은 소설가 엘릭 워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첫 번째 결혼을 반영해 쓴 <한 줌의 먼지>는 T.S.엘리엇의 <황무지> 중 첫 번째 시 "The Burial of the Dead"를 책 서문에 인용한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바로 그 유명한 시의 일부이다.

And I will show you sometihg different from either

Your sahdow at morning striding behind you

Or your shadow at evening rising to meet you;

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아침에 네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나는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 공포를 너에게 보여 주리라.



삶의 무상함, 죽음을 연상케 하는 handful of dust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이 소설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방향성을 잃은 당시 영국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 라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헤턴 저택이 1864년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어 흥미(의미)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 만치 집착한다. 아들의 죽음에도, 아내의 이혼 통보에도 분개하지 않던 그가 헤턴 저택을 매각해 위자료를 달라는 말에는 분기탱천하여 처음으로 인간적인 분노를 보여준다. 그리고 선택한 결과가 오지에서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결국 지킬 가치가 없는 과거에 얽메어 불행한 미래를 맞는 라스트의 모습이야 말로 작가 에벌린 워가 씁쓸하게 전망하는 영국의 현실이 아니었을까.

한편, 아내 브렌다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브렌다는 존 비버가 자신에게 무심하다는 이유로 그와 불륜에 빠져든다. 욕망은 본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기 쉬우므로 이 대목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브렌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조크 그랜트멘지스였다. 소설 초입에 존 비버 부인은 사교계에서 '브렌다가 조크 그랜트멘지스와 결혼할 것이라 예상했었다'는 발언을 한다. 이로 보아 브렌다가 최종 선택한 조크 그랜트멘지스 '가질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손을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녀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자명하다. 브렌다의 불륜은 또 다시 시작될 것이고, 이것이 당시 영국 사교계의 기본 프로세스였을 것이다. 자끄 라캉의 '궁정풍 연애가 이상화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작품 말미에는 <또 다른 결말>이 있다. 라스트가 브라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브렌다는 존 비버와의 짧은 불륜에 대해 용서를 빈다. 하지만 라스트가 런던 아파트를 브렌다에게는 비밀로 하고 유지하기로 함으로서 다음 불륜을 암시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4086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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