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라 (보급판 문고본) -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담문학 고딕총서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파상은 1850년 8월 5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지방 귀족 출신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는 일찍이 모파상의 문학적 재능을 간파하여 루이 부이예에게 시를 배우도록 했다.

열네 살 되던 해 모파상은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종교와 불화하여 5년 만에 중퇴한다. 이후 스물 한 살 되던 해 모파상은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에 참전하는데 이 때 경험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제대 후 해군성에 취직한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은 뒤 자연주의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875년 다소 기괴한 인상의 첫 작품 <박제된 손>을 발표한 그는 이후 1880년 <비곗덩어리>, 1883년 <여자의 일생>, 1884년 <벨 아미> 등 총 여섯 편의 장편과 삼백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그러나 상당히 예민한 성정의 그는 이십대 후반부터 극심한 편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우울증과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였으며, 삼십대에는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마흔두 살이 되던 해 자살을 시도한 모파상은 정신병원에서 마흔셋의 나이에 사망한다.

<박제된 손> 1875년

'나'는 어느 날 친구들의 모임에 갔다가 박제된 손을 보게 된다. 그 손은 거무튀튀하고 매우 길고 바짝 마른 흉측한 모습이었다. 친구는 그 손이 어느 유명한 범죄자의 손이라 했다. 범죄자는 아내를 우물에 거꾸로 던지고, 결혼식 주례를 선 사제를 교회 종탑에 메달아 죽였을 뿐 아니라, 다수로 부터 금품을 강탈하고 수도사를 불에 그을렸으며 수녀원을 하렘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 손을 현관 초인종에 메달아 두고 자랑스러워 했으나 집주인의 항의로 알코브(벽면을 움푹 파 침대를 들여놓은 곳) 속에 있는 초인종으로 옮겨 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하인이 '나'를 찾아와 주인이 살해되었다고 울며 외쳤다. 하인을 따라 집에 가보니 친구의 목덜미에는 손가락 자국 다섯 개가 나 있었다. 친구는 이후 시름시름 앓다 끝내 사망하고 만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무덤을 파던 인부가 관을 하나 발견한다. 관 뚜껑을 여니 거기엔 엄청나게 긴 해골 하나가 움푹 파인 눈으로 '나'와 인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부들 중 하나가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이 사람 한쪽 손목이 잘려 나가 있어요."

<오를라> 1886년, 제 1판

정신과 의사 마랑드 박사가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동료 셋과 학자 넷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와서, 한 시간 정도 환자 하나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환자는 무척 야위어 시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병적인 생각이 마치 살을 먹어치워버린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마흔두 살에 미혼인 그는 센 강 기슭에 있는 대저택에서 그럭저럭 사치를 부리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 년 전인 지난 가을부터 기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흥분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의사는 취화 칼륨 복용과 샤워를 처방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다 그는 매우 기이한 경험을 하게된다. 어느 날 저녁 크리스탈 물병의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물병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물이 가득차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몰래 마신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마시고도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다음 날 그는 물, 포도주, 우유, 케이크를 두고 잤는데 이번에는 물과 우유가 없어졌다. 그는 우유를 싫어했기에 역시 기이한 현상이었다.

결국 그는 하얀 모슬린 천으로 물과 우유를 덮고 자신의 입 주위엔 흑연을 묻혀둔 채 잠이 든다. 다음 날 물건들은 흑연이 묻지 않고 깨끗한 상태였으나 물과 우유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로써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그 집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후 그는 장미꽃이 공중에 혼자 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주방의 식기들이 저절로 깨지는 사건을 경험하기도 한다. 점점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그는 미지의 존재를 붙잡기 위해 짐짓 책을 읽는 척 하다가 그 존재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 순간, 거울 속에 '내'가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고 만다.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거울과 나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내' 모습이 가려졌던 것이다. 마치 일식이 끝나듯이 내 모습이 점점 거울 속에 나타나던 순간 그는 극도의 공포에 빠지고 만다.

얼마 뒤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람들이 잠 자는 동안 그들의 숨결을 먹고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흡혈귀들에게 쫓겨 땅과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얼마 전에 집 앞 센 강에서 보았던 브라질 돗대 범선 세 척이 떠오른다. 그 미지의 존재들이 그 배에 타고 있었음이 틀림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드무아젤 코코트> 1883년

파리 교외의 어느 부유한 부르주아 가족의 별장에 르팡수아라는 이름의 마부가 고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프랑수아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매우 마른 개를 발견했는데 그 개는 프랑수아가 쫓아버리려 해도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개가 안쓰러웠던 프랑수아는 개를 집으로 데려가 주인의 허락을 받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개에게 '코코트(경박한 여자, 매춘부)'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정성껏 보살폈다. 살집이 좀 오른 코코트는 그때부터 동네 모든 수캐를 홀리고 다녔고 일년에 네 번이나 임신을 하는 놀라운 다산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코코트의 행실을 주인은 매우 못마땅해 했다. 수캐들의 밤낮없는 구애와 침입에 진절머리가 난 주인은 코코트를 내다 버리라고 프랑수아에게 명령했고, 프랑수아는 몇번의 망설임 끝에 코코트를 강물에 빠뜨려 죽인다. 그 후 한 달 동안 프랑수아는 매우 심하게 앓는다.

상태가 호전된 후 프랑수아는 루앙 근처 비에사르에서 동료 마부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강가를 떠내려 오는 커다란 짐승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시체의 목걸이에 달린 구리판에는 '마부 프랑수아즈가 키우는 마드무아젤 코코트'라고 써 있었다. 암캐는 집에서 육립 리외나 떨어진 곳에서 자기 주인을 다시 만난 것이다. 프랑수아는 무시무시한 비명을 토해냈고, 벌거벗은 몸 그대로 들판을 향해 도망쳤다. 그는 미쳐버린 것이다.

<산장> 1886년

오트 알프 지방의 슈바렌바흐 산장은 겨울이 오면 여섯 달 동안 길이 끊긴다. 늙은 안내인 가스파르 아리와 젊은 안내인 울리히 쿤치가 산악견 샘과 함께 겨울을 나기로 한다.

어느 날 아리 영감이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울리히 쿤치는 배낭에 이틀분의 식량을 넣고 강철 아이젠과 긴 로프, 손도끼를 장비하고 그를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산장으로 되돌아온 울리히 쿤치는 죄책감과 외로움, 공포에 점차 잠식당해 환청을 듣기 시작한다. 비축해둔 술을 모두 마시며 공포를 극복하려 했지만 환청과 외침은 계속 들렸고 어느 날 문 앞에 누군가 있다는 착각에 문을 열게 된다. 그 사이 샘이 나갔지만 울리히 쿤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공포심에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만다. 샘이 다시 들어오기 위해 끙끙대는 소리도 환청이라고 생각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그는 끝내 미쳐버리고 만다.

눈길이 열리고 주인 가족이 산장에 돌아온다. 그들은 샘의 시체와 미쳐버린 울리히를 발견한다. 그해 여름 산장 주인 루이즈 오제도 우울증으로 죽을 뻔했다. 사람들은 산의 추위가 병의 원인이라고들 말했다.

<자살> 1883년

신문기사에 X씨의 자살 소식이 실린다. 57세의 X씨는 상당히 부유하고 행복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어했다. 그리고 X씨의 유서가 공개된다.

유서에는 삶의 찬란함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데서 오는 무료함과 권태, 소화작용이 예전같지 않음 등 어찌보면 심상한 일들이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X씨는 삶에 애착을 갖고 있다면 옛 편지들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머니, 옛 사랑의 추억 등 과거의 감미로움에 빠져들게 되면 현재의 권태와 무료함, 무감각 등이 자살에 이르게 될 정도로 증폭될 수도 있다고 X씨는 말하고 싶었을까?

<무덤> 1884년

1883년 7월 17일 새벽 두 시 반, 묘지 관리인이 한 남자가 전날 매장된 어느 젊은 여자의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관리인은 남자를 때려눕힌 뒤 두 손을 결박하여 경찰서로 데려갔다.

검찰은 베르트랑 중사의 극악무도했던 범죄(1849년 시간 재판 사건)를 떠올렸으나 용의자인 변호사 쿠르바타유는 무덤의 주인이 애인이었다는 것,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상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는 것, 그렇지만 붓꽃 향기 풍기던 그녀가 부패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는 것 등을 담담하게 밝힌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 1875년 집필 추정(1921년 발표)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는 매우 박식하고 학문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대학 총장이나 학장과 달리 절충주의를 혐오했고 절대진리를 추구했다.

어느 날 비외 피종 골목길 안에 위치한 발랑송의 고서점에서 매우 희귀한 원고를 발견한다. 두툼한 양피지 원고의 제목은 '나의 열여덟 개의 전생. 기원후 184년 이래 나의 여러 생들의 이야기' 였고, 끊임없이 윤회하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박사는 자신이 찾던 절대 진리의 단초가 이 원고에 있다고 보고 윤회론의 신봉자가 된다. 윤회론을 믿게 되니 자연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되기 시작한다. 그의 집은 갖가지 동물과 식물로 넘쳐나게 되었다. 키우던 원숭이가 사실은 원고의 저자가 환생한 동물이라고 믿던 그가 급기야 자신이 사실은 원고의 저자이며 현재 환생한 것이라고 믿는 등 분열증을 거듭하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데, 박사는 거기서 원고의 저자라 주장하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고집스럽게, 놀랄 만큼 끈기 있게 사람들을 자신의 신봉자로 만들려 애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병원 수감자들 전체가 악착스러운 경쟁관계의 두 파벌로 나뉘었다.

<어린아이> 1883년

남들보다 강한 성욕 때문에 세 번이나 결혼했지만 남편이 계속 죽어 끝내 과부가 된 여인이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강한 욕정 때문에 때로 실신하기까지 했고, 어느 날 실신한 그녀를 정원사가 겁탈한다. 그녀는 임신한 뒤 태아를 없애게 위해 갖은 애를 쓰나 실패하고 끝내 자신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 죽이고 만다. 과연 그녀는 죄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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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에는 <오를라>를 일기형태로 개작한 <오를라 제2판>도 수록되어 있다. 화자 내면의 분열과 극심한 공포를 드러내는 측면에서는 2판이 더 성공적인 듯 하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포, 불안, 무기력, 무감동 등의 이면에는 기독교와 사회통념에 대한 반감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39347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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