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뒤바꾼 못 말리는 천재 이야기
김상운 지음 / 이가서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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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지구촌 리포트> 앵커 김상운이 역사적 인물들의 뒷 얘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고증된 내용을 썼다고 하나, 읽어보면 출처 표기가 거의 없고 상식적으로도 진위가 의심되는 대목이 많다.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몇 가지 인상적인 문구의 틀 안에 가두는가 하면, '세계 3대 OOO'따위 근거 없는 순위 놀이도 반복적으로 하는 등 여러가지 흠결이 많다.

집 전화번호도 못 외우는 남자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상대성원리를 발견해 뉴턴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거두로 불림

영국 캠브리지대의 배런-코힌 교수와 옥스퍼드대의 연구팀은 그가 가벼운 형태의 자폐증인 애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간단한 전화번호 조차 못 외웠고, 집도 잘 못 찾았다고 하며 수많은 여성과 바람을 피웠다.

한편 1920년대부터 시작된 시온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였는데, 1952년 이스라엘 2대 대통력직을 제의받은 특이한 이력도 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 아이작 뉴턴(1642~1727)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땅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 발견. <광학(1704)>,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1687)> 등 저술

영국 캠브리지대의 배런-코힌 교수와 옥스퍼드대의 연구팀은 그가 전형적인 애스퍼거 증후군 환자라고 분석했는데 첫째, 다른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특정한 지적 분야에 집착적으로 강한 흥미를 보인 점, 둘째, 사교성이 없는 점, 셋째,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과학자이면서 신학자이기도 했는데 성경 해독, 특히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결과 세계의 종말은 대규모 유행병과 화재, 선과 악간의 대결전(Armageddon), 사악한 자들에 대한 파괴와 영원한 저주를 거쳐 2060년 마침내 닥치게 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예수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Christ)이 실현되고, 성인들이 천년간 지구를 다스린다고 주장했다.

동물을 더 사랑한 대인공포증 환자 제레미 벤담(1748~1832)

공리주의 철학을 창시한 영국의 철학자. 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 <정부론 소고(1776)>,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1789)> 등을 저술

벤담은 어린 시절 다리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집 안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못하고 기어서 올라가곤 했다. 이런 이유로 극도로 부끄럼을 탔고 결국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사람 대신 동물을 친구로 삼았다.

그가 주창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도 어쩌면 그의 지나치게 섬세한 성격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귀먹고도 오히려 행복해 한 발명가 토마스 알바 에디슨(1847~1931)

백열전등, 축음기, 영화 촬영기 등을 만들어낸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은 비듬투성이에 꾀죄죄한 사나이로 성홍열을 앓고 나서 청력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잡담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정신을 집중하기도 좋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다. 그는 아내와 대부분의 대화를 모르스 부호로 했고, 책도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브라유 점자책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한순간도 쉬지 못했던 행동중독증 환자 알렉산더 대왕(재위 BC 336~323)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 칭기즈칸, 나폴레옹과 더불어 세계 3대 영웅으로 꼽힘

알렉산더는 홧김에 휘하 맹장 클레이투스 장군을 찔러 죽이는가 하면 의심 가는 사람은 모조리 살해하는 기행을 일삼았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런 알렉산더 대왕이 행동중독자(action-holic)이자 조울증 환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하루라도 전쟁을 하지 않으면 우울감에 빠졌다.

세 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던 조울병 환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69~1821)

유럽대륙을 정복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전형적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조울증 환자는 기분이 상승할 땐 피로, 고통, 배고픔을 모른다. 불가능도 없고, 모든 게 장밋빛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두뇌에서 쾨감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잠도 적게 잔다. 한편, 광적으로 몰두하던 일이 빗나가거나 잘못되면 일순간에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들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나폴레옹의 키가 작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키는 167.6cm로 1800년 당시 프랑스 성인남성들의 평균 신장 164.1cm보다 3cm 이상 더 큰 수치였다. 그의 키가 작았다는 주장은 1피트의 길이가 프랑스에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취도 없이 팔을 잘라 낸 독종 호레이쇼 넬슨(1758~1805)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 나폴레옹의 영국침략을 막고, 10여 년간 영국의 해상지배를 확립한 해군 사상 최고의 명장

넬슨은 포도탄에 팔을 맞아 절단했고 포탄 폭발로 오른쪽 눈 시력도 상실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성미로 유명했는데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며 "I have only one eye. I have a right to be blind sometimes. I really do not see the signal" 이라고 눙친 일화가 있는데 영어 숙어 "Turn a blind eye"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돈키호테도 울고 갈 멕시코의 허풍쟁이 산타 아나(1794~1876)

멕시코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대통령 5회 역임. 미국과의 전쟁에 패해 멕시코 영토 1/3을 넘겨줌

산타 아나는 싸울 때마다 지는 자칭 '서반구의 나폴레옹' 이었는데, 미군이 산타 아나를 생포해 놓고도 그가 도망치도록 유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가 멕시코군을 이끌수록 전쟁은 미국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산타 아나가 이끄는 멕시코가 패전하면서 1848년 미국과 멕시코는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그 결과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등 영토의 1/3이 미국에게 넘어갔다. 게다가 1853년에는 천만 달러에 현재의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남부지역까지 미국에 팔아 넘긴다.

가는 곳마다 살인을 자행했던 살인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이탈리아의 탐험가로 아메리카를 발견

콜럼버스는 인디언 학살을 맨 처음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사실 북미 대륙을 보지도 못했고 산살바도르와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등 서인도 제도의 섬을 발견했을 뿐이다.

술 담배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알코올중독자 윈스턴 처칠(1874~1965)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총리로 전쟁 승리의 주역.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처칠은 외교적 결례를 불사하고 술과 담배를 즐겼다. 과학자들은 처칠이 조울증을 앓았다고 분석했는데, 처칠이 잠도 거의 자지 않은 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 점이나 '전쟁의 스릴만큼 짜릿한 건 이 세상에 없다'고 발언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그는 술과 담배에 중독된 결과 1953년 뇌졸중, 1965년 대뇌혈전증에 걸린다.

무대를 좋아했던 댄스 가수 지망생 네로(AD 37~68)

로마 제국의 5대 황제(재위 AD 54~68). 17세에 즉위 직후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조언에 따라 세금감면, 정치범 석방 등 어진 정책을 폈으나 점차 폭정을 일삼음

네로의 생모 아그리피나는 권력에 눈 먼 여인으로 삼촌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접근해 네 번째 부인이 되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독살전문가 로쿠스타를 통해 클라우디우스를 독할하고 네로를 황제로 추대한다. 하지만 황제가 된 네로는 이복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이후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도 해치운다.

폭정을 일삼던 네로는 로마에 대형화재가 발생하자 불타는 로마를 구경하며 노래를 했고,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돌렸다.

AD 66년 말 로마를 떠나 그리스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던 네로는 반란이 일어나자 자살한다.

공포의 기마대, 치고 빠지기의 명수 칭기즈칸(1206~1227)

몽고 이름은 테무진. 몽고를 통일한 뒤 유라시아에 걸친 인류역사상 최대 제국 건설. 출생연도는 1155년, 1162년, 1167년 등으로 정확치 않다.

칭기즈칸은 60%는 경기마대, 40%는 중기마대로 군대를 편성하고 기동력을 앞세워 대제국을 건설한다. 서유럽만이 몽고의 침략을 면하는데 칭기즈칸의 아들로 몽고제국의 2대 황제 오가타이의 사망 덕분이었다.

몽고대법전에 따르면 여성납치와 강제결혼, 고문, 재산이나 가축 도둑질을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인종에 관계 없이 의사, 과학자, 기술자, 외국어 능통자 등 특기를 가진 사람을 회유하고 우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거구의 폭탄주 마니아 표트르 1세(1672~1725)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영토를 크게 확장해 러시아를 유럽열강반열에 올려놓았고,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김

표트르대제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키가 큰 황제로 2.04m였다.(당시 평균키 155cm) 그는 서유럽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좋은 점을 무조건 흉내라도 내야 한다고 믿었으며 터키, 스웨덴과 싸워 영토를 대폭 확장했다. 하지만 아들이 굼뜨다는 이유로 고문 끝애 죽게 만들고, 충치환자들의 충치를 자신이 직접 뽑고 다녔다. 또한 남의 정부를 빼앗아 황후로 삼는 등(예카테리나 1세) 기행을 일삼았다.

강물에 걸어 들어가 죽은 우울병 환자 버지니아 울프(1982~1941)

영국의 소설가. 주요작품은 <항해>, <세월>, <올랜도>, <등대로>, <밤과 낮> 등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조울증에 시달렸다. 상승무드 땐 사흘간 밤낮 수다를 떨거나 소설을 썼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당시 조울증에 관한 치료법은 전무한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주머니를 돌멩이로 채운 뒤 강물로 걸어들어가는 방식으로 자살한다.

변기에 총질을 해댄 다혈질의 소유자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미국의 소설가. 1954년 노벨 문학상 수상. <노인과 바다(1952)>,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등의 명작을 남김

헤밍웨이의 어머니는 그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 옷을 입고 다니도록 했다. 18개월 먼저 태어난 누나와 함께 여자 쌍둥이로 간주해 버렸던 것이다.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늘 남성다움을 과시하려 들었던 것은 이런 어린 시절에 대한 반발이자 반작용이 아니었을까.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비행기 추락사고를 두 차례 겪고, 산불로 화상을 입는 등 불행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우울증이 도졌고 폭음으로 심사를 달랬다. 1960년을 전후한 말년에 극심한 편집증세를 보이던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머리에 산탄총을 발사해 자살한다.

입에 욕을 달고 산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주요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1786)>, <돈 조반니(1787)>, <마적(1791)> 등

모차르트의 편지나 가사에는 똥, 오줌 등 배설물과 방귀에 대한 글로 가득 차 있다. 1992년 내분비학 권위자 벤자민 심킨 박사는 그가 뚜레트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배설물 등 더러운 것들을 글로 써 놓고 싶어하는 강한 충동(coprographia)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모차르트가 강박신경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환자였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왕족도 무시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독일 본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죽음. 주요작품은 <영웅교향곡(1804)>, <피아노협주곡 제5번(황제)(1809)> 등

베토벤은 괴팍한 성격과 오만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질투심도 대단했다. 베토벤의 이런 괴팍한 성미는 어린 시절의 각박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 베토벤에게 스파르타식 피아노 레슨을 시켰다. 또 음악 외의 교육은 전혀 시키지 않았다. 이런 영향으로 베토벤은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귀머거리가 된 뒤 조울증과 폭음에 시달리던 그는 56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지독한 일중독증 환자이자 완벽주이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 3대 작가로 꼽힘. 주요작품으로 <다비드 상(1504)>, <최후의 심판(1541)> 등

미켈란젤로는 인류역사상 가장 못생긴 예술가 중 하나였다. 그는 몹시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이었으며 명성을 얻은 뒤에도 사교 생활을 기피했다. 그러면서도 남들로 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화를 폭발시켰고 미묘한 감정은 잘 표현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그가 가벼운 자폐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인체 해부를 위해 무덤을 뒤진 사내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화가, 조각가.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

레오나르도의 부모는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사이였고, 의붓어머니도 넷이나 있었다. 그가 그림을 배우게 된 것도 사실 이런 가정환경과 적자가 아닌 서자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귀족 자녀들은 예술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벽증 환자였고,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또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고독했던 미치광이 고흐(1853~1890)

네델란드의 화가로 <감자 먹는 사람들(1885)>, <해바라기(1888)>, <가셰 박사의 초상(1890)> 등을 그림

평생 동안 고흐는 무려 20,0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 중 팔린 그림은 단 한 점 뿐이었다. 그는 평생 정신병에 시달렸는데 귀 아랫부분을 잘라 창녀에게 선물하는가 하면 권총을 빌려 배에 쏘는 자해를 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7세에 사망.

못 말리는 바람둥이 파블로 피카소(1881~1973)

20세기 최고의 화가. 입체파 미술의 창시자.

피카소가 그린 초상화나 사진들은 대개 그와 함께 살던 여인들이 대상이었는데 7명 가운데 2명은 자살했고, 2명은 정신이상자가 됐으며, 1명은 젊어서 요절했다. 그는 광적인 남성우월주의자로 어릴 때는 독서장애증(dyslexia)을 겪었다. 또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많다.

세계 최고의 패션 리더 클레오파트라(69~30 BC)

이집트를 통치한 그리스 왕가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당나귀 젖으로 목욕을 하고 몸에 난 털은 모두 뽑았다. 그는 지략이 뛰어났고 남자를 잘 홀렸는데 시저,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유혹당했다. 후대 역사가는 클레오파트라가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탁월한 지략과 설득, 그리고 이집트의 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아름답다는 소리는 안 들어도 좋아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45년간의 재위. 스페인의 무적함대 격파. 동인도 회사 설립. 중상주의 정책으로 영국을 유럽 최강국으로 키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헨리 8세는 폭군이었다. 그녀가 두 살 때 어머니가 목이 베었고, 8세 때는 계모가 처형 당했다. 그녀는 4명의 계모 눈치를 보며 공포와 악몽 속에 성장했다.

여자라서 희생양이 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

약 20년간의 사치한 생활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됨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황후 마리아 테레사가 가장 총애했던 딸이었다. 그녀는 19세에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결혼했다. 루이 16세는 왕비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으므로 그녀는 사교에 전념했다. 그녀에게 파티와 유희가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억울한 면이 있었으니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가기 전 프랑스는 이미 파산 상태였고,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역시 그녀의 소행이 아니었다. 또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지"라는 말도 그녀가 한 말이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가 <참회록>에서 쓴 말이다.

무능한 남편 죽이고 황제가 된 여걸 예카테리나 대제(1729~1796)

표트르 대제와 더불어 러시아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키고 유럽 강국으로 만든 여황제

예카테리나 대제의 남편 표트르는 약간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는 프로이센과 7년 전쟁(1756~1762)에서 빼앗을 땅을 조건 없이 돌려주려 하거나, 러시아 정교를 핍박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가 예카테리나에 의해 제거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한 철의 여왕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영국 왕실 사상 가장 긴 64년간(1837~1901) 통치. 의회제도와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고 산업혁명을 완수, 세계 최강의 나라를 건설함.

사실 빅토리아의 여왕은 남편 엘버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명철한 두뇌의 소유자로 복잡한 행정문서도 거뜬히 처리했다. 하지만 그는 기가 약해 빅토리아 여왕에게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고, 42세의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한다. 남편이 죽자 빅토리아 여왕은 여생을 검은 옷을 입은 채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를 상징하는 엄격한 사회적 규범, 성적인 절제, 강한 가족관, 신앙생활 등은 이렇게 해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틀니 발전에 공헌한 충치 대장 조지 워싱턴(1732~1799)

미국의 독립전쟁 때 대륙군 총사령관을 지낸 건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1789~1797)

그가 취임할 때 성한 이는 단 한 개 였고 공식 석상에는 입에 솜을 넣고 참석했다. 조지 워싱턴을 소개하는 위인전에는 그가 손도끼로 벚나무를 쓰러뜨린 후 솔직히 고백한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는 전기작가 파슨 웜즈(Parson Mason Weems)가 꾸며낸 사건이다.

지고는 못 사는 싸움 대장 앤드루 잭슨(1767~1845)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1851년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영국군을 무찔러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는 결투로 상대방을 죽인 것으로 유명하며 민주당의 상징 당나귀를 만들기도 했다.

성질이 장난 아니었던 성질 대장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미국의 16대 대통령.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분단을 막고 노예를 해방시킴

링컨은 키가 190cm로 역대 미국대통령 중 최장신이었다. 그는 평생을 정념 없이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는 우울증을 앓았는데 가족 대부분이 요절한 환경 탓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예제도와 관련해서는 링컨 역시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전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예해방의 결실이 맺어졌다.

총 맞고도 연설 강행한 쇼맨십 대장 시어도어 루즈벨트(1858~1919)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파나마운하 건설 개시. 러일전쟁 중재로 노벨 평화상 수상.

루즈벨트는 어렸을 적 천식을 심하게 앓았다. 그의 훌륭한 체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을 세번 한 것으로 유명한데 3선 출마 시 정신이상자의 총격을 받았으나 1시간 반 동안 연설을 한 뒤 병원에 실려간 일화가 잇다.

150kg의 거구, 체중과 함께 불린 국력 윌리엄 태프트(1857~1930)

미국의 27대 대통령(1909~1913). 달러외교의 창시자. 필리핀 총독(1901~1903)

우리가 아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그 태프트이다. 작가의 역사의식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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