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유하는 물>

요시미는 딸 이쿠코를 데리고 도쿄 매립지에 소재한 7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사온 지 3개월이 된 지금, 요시미는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다만 한 가지, 물 맛만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소독 냄새와는 다른 묘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쿠코와 함께 옥상에서 불꽃놀이를 하던 요시미는 물탱크 옆에서 키티 가방을 발견한다. 새 것처럼 보이는 그 가방 안에는 어린아이들이 물놀이 할 때 쓸법한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이쿠코는 그 가방 안의 장난감들을 갖고 싶었지만 요시미는 어쩐지 기분 나쁜 예감 때문에 가방을 경비실에 맡긴다.

얼마 뒤 요시미는 이쿠코가 밤 중에 사라진 것으로 착각해 옥상으로 찾으러 갔다가 그 가방을 다시 발견한다. 섬뜩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쿠코가 욕실에서 가상의 아이에게 밋짱이라며 말을 걸며 놀았던 것이다.

얼마 뒤 요시미는 관리인으로부터 2년 전에 아이가 실종되었는데 그 아이 이름이 미츠코(밋짱) 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미츠코가 실종되던 날, 옥상의 물탱크가 개방되었었다는 사실도.

요시미는 물탱크 안에 사라진 미츠코가 있다는 확신인지 망상인지 불분명한 감정을 품은 채 이쿠코와 아파트를 떠나 호텔로 향한다.

<워터 컬러>

거품 경제가 붕괴되자 한 때 '메피스토' 라는 이름의 디스코테크가 성업했던 빌딩에 입주자 없는 공실이 남아 때때로 연극 상연 공간으로 임대되고 있다.

키요하라 라는 이름의 신진 연출가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어 이제 곧 키쿠노니야 홀이나 혼다 극장으로 진출하는 것도 무리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극단에 소속한 카미야리 유이치는 지금 매우 의기소침한 상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준비했지만 이번 연극에서 배제되어 음향효과실 스텝으로 좌천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극 상연 도중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키요하라는 카미야리에게 즉시 공연장 위층으로 올라가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카미나리가 허겁지겁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여자화장실이 물바다가 되어 아래층까지 물이 누수되는 상황이었다. 키요하라는 손을 배수구에 집어넣어 머리카락 같은 것을 끄집어 내는데, 끝도 없이 딸려나오는 머리카락의 색깔이 가지각색이라 소름이 끼쳤다. 대충 배수구를 정리하고 가까스로 고장난 수도꼭지 까지 단속한 카미나리는 그제서야 여자화장실 한 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하지만 카미나리는 분명 위층에 올라와서 불을 켰는데, 그렇다면 화장실 안의 사람은 줄곧 어두운 곳에 혼자 있었다는 말일까? 마침내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무수한 검은 물체가 카미나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키요하라는 층마다 다른 상황을 설정하여 연극을 올린 것이었고, 카미나리는 이 사실을 모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한 것이었다.

<표류선>

원양 참치 어선 제7와카시오마루가 호화 요트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요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배 안은 평온한 상태였기에 더욱 이상했다. 1872년 영국 범선이 대서양 위에서 미심쩍게 움직이던 마리 셀러스트 호를 조사했을 때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듯한 흔적만 있었을 뿐 아무도 없어 유령선으로 불렸던 사건과 유사했다.

어쨌든 예인하기로 결정되자 카즈오가 요트에 승선하여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카즈오는 호와 요트에서 여러가지 호기심에 이것저것 조사하고 항해일지를 살펴보다 포도주를 마시고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난 카즈오는 제7와카시오마루호와 연결되었던 로프가 풀려 요트 혼자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무엇을 놓친 건지 돌아보던 카즈오는 항해 일지에서 읽고 지나쳐 버렸던 사실, 요트에 탑승했던 가족 중 딸이 무언가를 주웠고 그걸 숨겨두었는데 아버지가 찾지 못했다는 내용을 떠올린다. 아마도 딸이 주운 그 물건은 저주받은 것이었을 테고, 끝내 찾아내지 못해 배에도 저주가 내렸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카즈오는 저주받은 요트에서 벗어나는 것 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여 허겁지겁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 구명보트로 옮겨 탄다. 하지만 딸이 주운 물건을 숨겨둔 곳이 구명보트 안이었다는 사실을 카즈오는 알지 못했다.

<환영>

붕장어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히로유키는 일상이 무료하고 답답했다.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치매였고, 딸애는 실어증에 걸려 아버지와 하루 종일 단팥빵을 먹어대며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기가 약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불만투성이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휴일을 맞은 히로유키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아내가 없었다. 마을을 돌며 아내를 찾아봤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아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히로유키는 분노하며 배를 띄워 조업에 나갔다. 그러다가 활어조를 열어보고 거기 아내 나나코가 있는 걸 발견한다.

히로유키는 그제서야 그제 밤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내와 다투던 히로유키는 자기도 모르게 아내를 목졸라 살해한 후 배에 방치한 것이다. 조업 나가서 바다에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히로유키는 술에 취해 기억을 모두 잊고 이제서야 아내를 발견한 것.

서서히 흐릿한 일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버지 역시 자신과 똑같은 방법으로 어머니를 살해한 것일 터였다. 그래서 그 사건의 영향이랄까,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겠지. 왜 날이 궂은데도 자신은 굳이 조업을 나와야 했는지도 생각이 났다. 아내의 시신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강한 파도가 배를 강타했다. 히로유키는 뒤집힌 배의 에어포켓 사이에 갇히게 되고 죽음 직전에 구조된다. 잠수부가 건네주는 호흡기를 물고 호흡을 하면서 히로유키는 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상보안청의 경찰이 발견한 두 구의 유체는 기묘했다. 남자가 두 팔로 여자를 껴안은 채 숨이 끊어져 있었는데 여자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뿌리까지 남자가 물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여자의 시신은 사후 2-3일 경과한 듯 보였는데, 남자는 방금 숨을 거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유메노시마 크루즈>

에노요시는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우지시마 부부의 요트에 동승하여 여행중이다. 우지시마 부부는 다소 미심쩍은 다단계에 속해 있었는데 에노요시를 승선시켜 시간을 두고 설득한 뒤 자신의 아래 계급에 두고 싶어했다. 에노요시가 우지시마 부부의 속물 근성에 슬슬 질려갈 무렵, 요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지한다.

프로펠러를 살펴보던 우지시마는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신을 법한 신발이 끼어있는 걸 발견한다. 우지시마는 신발을 매우 꺼림칙해 했다. 신발을 치우는 것 만으로는 배가 움직이지 않았고, 키일에 무언가 끼인 것 같다는 판단에 우지시마가 잠수하게 된다. 하지만 돌아온 우지시마는 키일을 어린아이가 붙잡고 있다며 패닉에 빠진다.

어린아이가 맨발이라는 말과 함께 구토하는 우지시마를 보던 에노요시는 이들 부부와 함께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홀로 헤엄쳐 도쿄만의 테트라 포트로 헤엄쳐 간다. 먼저 육지로 가서 해상보안청에 신고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테트라포트에 닿은 에노요시는 콘크리트 틈새에서 아까 발견한 신발의 다른 한 짝을 발견한다.

<고도>

스에히로 켄스케는 도쿄의 제6다이바라는 고도에 갈 기회가 생기자 과거 일을 떠올린다.

9년 전 켄스케는 친구 토시히로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알게 된 여자가 나카자와 유카리였다. 토시히로는 나카자와 유카리가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며 함부로 대했지만 유카리는 다소곳한 태도로 토시히로를 대했다.

어느 날, 토시히로는 켄스케에게 비밀을 알려준다며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용인 즉슨, 자신이 유카리를 제6다이바라는 무인도에 발가벗겨 남겨둔 후 돌아왔다는 것이다. 말대로라면 유카리는 그곳에서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토시히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켄스케는 늦었지만 제6다이바에 갈 기회가 생겼으니 과거의 일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토시히로를 꼭 닮은 야생 상태의 소년을 발견한다.

그제서야 켄스케는 토시히로가 종교적 이상에 빠진 유카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를 사람이 닿지 못하는 섬에 데려다 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다에 잠긴 숲>

1975년 초겨울, 스기야마는 동료 사카키바라와 함께 발견되지 않은 동굴을 찾는 탐험에 떠났다가 실제 종유동을 발견한다. 장비와 인력이 더 필요했지만 처녀지를 탐험한다는 흥분에 둘은 종유동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미숙함과 실수가 겹쳐 사카키바라가 즉사하고, 스기야마는 사카키바라가 돌과 함께 길을 가로막아 버려 종유동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가며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물길을 발견한 스기야마는 물길이 얼마나 이어질지, 그 끝에 있을 출구가 자신의 몸이 빠져나갈 만큼 큰 지 알 수 없었지만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기야마는 자신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뒷면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방수테이프로 밀봉한 뒤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1995년 스기야마 타케히코는 아버지가 사망한 종유동으로 탐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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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머니의 좁은 자궁 안 물 속에서 10달을 머물다 세상으로 나왔다. 그렇지만 좁은 공간과 물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스즈키 코지의 <어두컴컴한 물밑에서>는 이러한 물과 좁은 공간에 대한 공포를 주제로 한 7 가지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 <바다에 잠긴 숲> 에 나오는 편지를 전해주는 짤막한 프롤로그와 에피소드로 이뤄진 소설집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仄暗い水の底から, 어슴푸레한 물 밑에서>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검은 물밑에서> 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고, 2005년에는 미국에서 <Dark Water> 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실제 원혼이 나타나 주인공과 딸을 위헙하고, 딸을 지키기 위해 엄마가 희생한다는 줄거리인데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한 무리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재미가 반감된다.

<유메노시마 크루즈>는 2007년 미국에서 기획한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 중 한 편인 <악몽의 크루즈> 로 영화화 된다. 감독은 <링 제로 버스데이>의 감독인 츠루타 노리오.

2012년에 판매된 고물 노트북을 당근에서 하나 구입해다가 블로그에 독서일기를 쓴다. 11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의 노트북을 단돈 5만원에 사가지고 돌아오면서, 왜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은 죄다 과거의 물건들 밖에 없을까 자문한다.

훨씬 더 좋은 성능의 가전제품을 살 수 있는데도 카세트 라디오나 유선 이어폰과 같은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 외에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과거의 흥미와 욕망은 갈망의 형태로 변화해 매우 강력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흥미와 호기심은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일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04870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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