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8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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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나(=덕훈)는 5년 전 회사에서 계약직 프리랜서로 일했던 그녀(=인아)를 만났다. 그녀는 소위 '볼매' 였고, '내' 섹스 판타지를 실현 시켜 줄 용의와 능력을 겸비한 '섀도 스트라이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죽고 못 사는 축구의 광 팬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독점 본능에 굴복해 청혼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나'의 청혼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일처제를 원치 않는 부류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키는 대로 술을 먹고 싶어했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주저 없이 잠자리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와 결혼하면 그런 자신의 욕망이 좌절될 것이므로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구슬리는 한편, 일부 조건에 대해서는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물론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결혼을 하면 어느 정도 그런 자유분방함이 사그라들 것이고, 특히 아이라도 생기면 가정적으로 변해 평범한 주부의 외양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전 자신의 의지를 결혼 후에도 관철시켜 나갔고,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를 하다가 어느 날 덜컥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나'와 이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나'와 새로 생긴 남자인 '재경' 모두와 함께 살고자 하며, 만약 함께 살 수 없다면 양쪽 집을 오가며 둘 모두를 남편으로 두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로 저항하던 '나'는, 그러나 아내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 애정인지 모를 어떤 감정 때문에 점차 아내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그녀가 살고자 하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생기면 아내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 오리라던 '아이'가 마침내 둘 사이에 생기지만, 아내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고,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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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라는 괴상한 단어를 가진 가족의 형태가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아내와, '나' 외의 또 다른 '남편'을 떼어내고 그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일부일처제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처절한 싸움이 작가의 해박한 축구 지식과 결합하여 다소 기괴한 소설이 창조 되었다.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보면 일부일처제란 자본주의 사회 제도가 체제를 재생산 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인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정당한 가족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매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발전시켜왔고, 그러한 가족 제도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박현욱은 소설이라는 질료를 가지고 일종의 '시뮬라시옹'을 펼쳐 놓는데, 양식 있는 독자라면 여기에 '도발적인 질문', '재기발랄한 문체' 운운하며 작가의 발칙한 상상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나'는 이제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시뮬라시옹'에 과도하게 몰입한 탓인지 그다지 기꺼운 마음으로 소설을 칭찬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말에 불과한 덕훈이 처한 상황에서 일종의 공포를 느낀다. 사랑하는 여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면서도,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원치 않는 가족 형태를 내면화하는 모습이야 말로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반응은 전혀 작가가 의도한 반응이 아닐 것이다. 


몇 달 간 책을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닌데 독서일기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동안 뭘 했나 따져보니 드라마를 일단 열심히 봤다. <응답하라 1988>, <홈랜드>, <나르코스>, <왕좌의 게임>,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를 매일 같이 보니 시간이 참 잘 갔다. 집에 오면 뭔가 할 일이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좀 더 진지하게 들어보려다 헤드폰과 이어폰을 과도하게 사 들였다.  좋은 장비로 음악을 듣다 보니 뭔가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나만 이런 세상을 몰랐던 것 같은...그러다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음색과 음향을 듣는 느낌이 들어 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책을 읽는다. 직관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멋진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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