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섬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전, 사람들이 죽어갔던 도시가 개발되면서 문시백드림존 이라는 이름의 15층 건물이 들어선다. 식당가와 영화관, 오피스텔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이 복합빌딩의 최상층에 '섬' 이라는 이름의 술집이 있다.


술집 사장은 정희원이다. 그녀는 '아내를 의심하고 매질하는' 남편과 장애가 있는 4살난 아이,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었다. 그리고 그녀도 사고의 영향으로 폐경을 맞았다. 이후로 그녀는 땅에 뿌리박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문시백드림존의 제일 꼭대기 층에서 왠만하면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자가 지배인 효섭이다. 효섭은 정희원과 세속을 이어주는 '끈'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를 위해 은행일을 보고, 곤란한 손님을 쫓아냈으며, 그녀의 주거환경과 건강상태를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효섭은 소리없이 수행했기 때문에 마치 그림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다 죽어가던 정희원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의 뒤를 쫓아 이곳 '섬'까지 온 사내다.


둘이 꾸려가는 술집 '섬'에 문시백드림존에 사는 여러 인물들이 드나든다. 그들은 정희원에게 호감을 갖기도 했고, 효섭을 짝사랑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보지 않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왔던 방송작가 진주, 아내가 어느 날 '당신은 발전이 없다'며 떠나버린 뒤 '섬'에서 위안을 얻는 교사 영중, 삶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악착같이 자기 몫의 삶을 가꿔나가는 새미, 그리고 20년 전의 학살의 경험 때문에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섬'의 전 주인이자 문시백의 아들 영로.


그들은 '섬'에 가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한다. '섬'은 그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면, 그제서야 '섬'을 떠났다. 마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정희원과 효섭이 서류상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에 태풍이 몰아친다. 정희원은 '사랑의 집'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에 홀린 듯 자원봉사를 갔다가 그곳이 자신이 머무를 곳이란 생각을 한다. 장애가 있는 4-5살난 아이들과 지내면서 과거 자신이 사고를 일으켜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져 속죄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효섭은 한동안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희원의 바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2001년에 발간된 소설로 20년이 흐른 지금 읽어보면 꽤나 고전적인 맛이 난다. 밀레니엄 세대라며 날렵한 문체와 시선의 서슴없는 변화 등을 미덕으로 여기고, 가볍고 찰나적인 사랑이 각종 소설에서 판을 치던 시기에 발표된 <불꽃섬>은 다소 고풍스럽고 느린 전개로 인물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그러나, 드라마적 재미라 할만한 것이 그다지 없고 희원, 효섭, 진주, 영중 등 주요 등장 인물 중 딱히 마음 가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은 소설을 지루하게 만드는 감점 요인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5410827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