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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우가 살고 있는 집은 춘의산 자락을 뒤로 끼고 있었는데, 공장 부지로 팔려 곧 헐릴 예정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동대문에서 옷 장사 하는 올케를 도우며 혼자 살고 있는 신우의 처지와 집의 처지는, 어쩐지 닮아 있었다.
어느 날, 신우는 뒷 마당에서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사내를 만난다. 그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고 처음 꺼낸 말은 "세상이 화안해요" 였다. 아마도 산벚나무 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얘기한 것일지 몰랐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나마스테" 라고 인사했다. 그의 이름은 카밀이었고, 네팔 사람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3년째였는데, 청바지
공장에서 샌드기에 맞아 상처를 입은 데다가 주소만 들고 친구를 찾아 왔다 길까지 잃는 통에 신우의 집 뒷마당까지 흘러들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 뒤 카밀은 같은 네팔인 처녀를 데려와 방을 빌려줄 없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다.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긴 신우는 방을 내준다. 카밀과 사비나라는 이름의 처녀는 그녀의 집 방 한 간을 빌어 살림을 시작한다.
그러나
셋의 기묘한 동거 생활은 곧 파국을 맞는다. 사비나가 도통 신우를 어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신우는 사비나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사비나도 지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 사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 얼마 뒤 사비나가 카밀이
모은 돈 천만원이 든 통장을 들고 잠적한다.
카밀은 사비나를 잃고 괴로워했다. 신우는 카밀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아픔에 공감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카밀은 차츰 신우에게서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느끼게 되어
의지하게 된다. 결국 남녀 관계로 발전하게 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신우 오빠의 완강한 반대와 카밀의 어정쩡한 태도로
둘 사이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신우는 오빠에게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L.A.흑인 폭동을 상기시키려
애쓴다. 신우의 아버지는 L.A.흑인 폭동으로 인해 사망했기 때문에 타국에 돈 벌러 간 가난한 나라 사람의 처지를 오빠가 십분
이해해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오빠는 요령부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방황하고 절망하던
카밀이 신우 옆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카밀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카밀의 내부에서 고통 받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카밀은 그들이 일한 만큼 댓가를 받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며,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밀의 그런 주장이 무색하게도 정부의 입법 방향은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결국 자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카밀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이 환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캄캄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치던 카밀이 세상을 향해 던진 마지막 말은 현수막에
씌여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그 현수막을 따라 카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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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 의거, 4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행된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분류되던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을 이어 투신하거나, 분신하거나, 목을 메었다. 고향의 가족은 물론이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빚을
얻어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에게, '추방'은 '죽음'과 다른 말이 아니었다. 그 해 11월, 다르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청년이 자살한다. 그리고 뒤 이어 방글라데시 사람 비쿠가, 러시아의 안드레이가, 우즈베키스탄인 부르혼이 자살한다. 12월엔
우즈베키스탄인 카임이 자살했고, 중국동포 김원섭씨가 행려병자처럼 죽어갔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 한국의 가요가, 영화가,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그 와중에 소위 '국뽕' 컨텐츠가 범람하고, 나치즘을 연상케 하는 정도의 민족주의적 사고도 매우 진보적인 것인 양
포장되어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위상은 문화적인 컨텐츠의 인기와 수출 만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하게 세계 공영에 기여하는가 역시 중요할 것이다. 국력이 높아질 수록 보편적인 인간 권리에 대한
존중, 과거사에 대한 제한 없는 반성을 타국이 볼 때 극성스럽다 할 정도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뽕'과 '민족주의'라는
정신적 자위행위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찰나에 소비되는 자극적 컨텐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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