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팡의 소식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밀고
1990년 12월 8일 밤, 스가모. 경찰서 망년회 도중 서장 고칸에게 쪽지 하나가 전달된다.
"십오 년 전 여교사 자살 사안 관련. 타살 의혹 농후 유력정보. 지급(至急), 귀서(歸署)"
1975년 여교사가 실연을 비관하여 괴로워하다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사실은 제자 세 명이 '루팡 작전' 이라는 것을 실행하다가 옥상에서 밀쳐 살해한 것 같다는 신빙성 있는 증거가 본청에 접수된 것이다. 단, 시효는 내일로 끝. 경찰은 즉시 과거의 3인조를 수배하고, 그 중 기타 요시오를 제일 먼저 임의 동행시켜 진술을 듣기 시작한다.
2. 루팡 작전
고등학교 3학년인 기타 요시오, 다쓰미 조지로, 다치바나 소이치가 시험지 절도 계획을 세운다. 그들이 작전 이름을 따온 '루팡'은 아지트격인 카페 이름이었다. 카페 마스터는 저 유명한 1968년 3억엔 사건의 용의자와 몽타주가 비슷한 우쓰미 가즈야란 자였는데, 3인조의 일탈행동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잠깐 다쓰미의 마작 친구 소마도 한 패로 끼워줄지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셋이서 범행하기로 결정된다.
3. 결행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시험지는 성공적으로 훔쳐냈다. 하지만 삼일 째 되던 날 사건이 일어난다. 망을 보던 중 글래머 여교사 마이코가 흰 구두를 신은 어떤 여성과 교무실에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그날 따라 매일 같이 교사를 순찰하는 '하이드 모키치'도 순찰을 돌지 않았다. 어쨌거나 삼인조는 교무실 금고를 따는 데 성공하는데, 거기엔 마이코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시신 옆에 떨어진 봉투에는 시험지의 답이 적혀 있었다. 셋은 기겁하여 금고를 도로 닫고 도망친다. 그런데 그 때 2층에 있던 신원불명의 사람 역시 창을 넘어 도망 친다.
4. 복수전
사건이 묘하게 흘러간다. 마이코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신문에 발표된 것이다. 게다가 옥상에는 그녀의 신발이 놓여 있었는데 그 속에서 유서가 발견 되었다고 했다. 유서의 내용이 실연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필체도 일치했기에 경찰은 사건을 종결한다.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잊을 수 없어. 당신의 목소리, 따스함. 차라리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없는 것. 나는 자신을 죽입니다."
3인조는 엉터리라 생각하고 진범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사건 당일 2층에서 도망친 인물이 용의자라 생각하여 소마, 교장, 체육교사 반도 등을 의심하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얼마 뒤 3인조는 엉터리 답을 똑같이 써낸 것이 들통 나 근신처분을 받는다. 소마는 수업일수 조작이 들통 나 취직이 취소되자 어린 여동생만 남겨 두고 자살하고 만다.
5. 추적
뜻밖에도 사건의 실마리는 다른 곳에서 풀렸다. 레즈비언 잡지 <레이디 클럽>의 독자 투고 사진 하단에서 마이코의 유서와 똑같은 문장이 발견된 것이다. 단,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어짜피 남자에게 이길 수 없네요. 당신을 신에게 돌려보냅니다. 남자를 만든 증오스러운 신에게"
6. 해빙점 ~ 7. 시간의 소굴
마이코가 레즈비언이었고, 음악교사인 아유미 등을 성적 학대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밝혀지며 살인범은 아유미로 결론이 나는 듯 했다. 아유미는 사건 당일도 마이코에게 성적인 학대를 받다가 그녀를 밀쳤는데 재수 없게도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아유미는 당시 다치바나와 사귀고 있었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뒤처리를 부탁했고, 다치바나는 마이코의 시신을 금고에 집어 넣는다. 3인조가 시험지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면 범행 중 발견한 것이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아유미의 행적을 눈치 챈 하이드 모키치가 아유미를 협박해 또 다시 성폭행하자 아유미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치바나는 이후 모든 비밀을 품에 안은 채 노숙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사건이 종결 처리 되려던 바로 그 때, 검시관이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의 몸에 너무 많은 상처가 있다는 점. 어쩌면 그녀는 아유미가 밀친 뒤 금고에 갇혔을 때 살아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옥상에서 던져버린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
작가는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은 속칭 "3엔 사건"을 소설 속에 차용한다. 3억엔 사건의 진범이 이중으로 설계된 학교 금고에 돈을 넣었다가 공소시효 날 금고를 열었는데, 그곳에 하필이면 숨이 간신히 붙어 있는 마이코가 있었다는 설정은 대담하다고 할까, 현실감이 결여되었다고 할까.
그러나 작가적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이야기를 끌고 가는 뚝심이 독자에게 곧바로 전해지는데다, 어쨌든 소설이란 한바탕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껄여보는 것이라 한다면 다소간의 현실성 결여는 눈 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15년의 시간을 단 하루 동안의 취조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며 범인을 추리해 내는 설정 역시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참신하다.
인간의 본성에 천착하는 사회파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데뷔작으로 지금은 없어진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가작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486926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