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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최재경 지음 / 민음사 / 2006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김유노는 JJ 물산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MD였다. 하지만 어느 날, 323만원 짜리 에어컨이 32만 3천원으로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 경쟁사가 32만 3천원짜리 에어컨에 1천건 이상 주문을 때려 박았다고 했다.
회사를 짤린 김유노는 소일거리 삼아 <벼룩시장>에서 본 광고에 따라 "뷔페 요리를 함께 먹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또래인 제인을 만난다. 둘은 한 때 외교관을 지냈고, 의원이라 불리는 노인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뷔페를 먹는다. 노인은 유노와 제인에게 시종일관 흥미를 나타내더니 헤어질 때 쯤 '돈 받고 노는 일이 있다' 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넨다. 명함에는 '축복의 섬' 이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둘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축복의 섬'에 전화를 걸었고, '재미 성향 검사'를 통과한 후 '돈 받고 놀아주는 사람', 즉 플레이어가 된다. 신규 플레이어들은 클럽 "보헤미안 오렌지"에서 첫 미팅을 가졌는데, 미팅에 나온 팀장 혜리는 자신을 성전환자라 스스럼 없이 밝히며 플레이어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그날 밤, 유노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플레이어를 그만두는 편이 좋다"는 은밀한 경고를 받지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압도적인 특전과 보상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처음 주어진 3단계 임무는 타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유노는 반년 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중년 사내를 위해 제주도에서 비싼 스포츠카를 빌려 여행을 했다. 유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고,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이 주는 쾌감을 만끽했다. 몇 차례 3단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유노에게 2단계 임무가 주어졌다. 2단계 임무는 타인이 욕망하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한경희라는 중년의 여성과 소도라는 외딴 섬에서 관능적인 경험을 치룬 유노는 그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놀이'와, '축복의 섬'이 제시하는 '놀이'에 어딘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바로 그 즈음, 성전환자인 혜리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혜리는 과거 신태우라는 이름을 썼고, 직업은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그는 플레이를 거듭하다 마침내 성전환까지 하게 되었는데, 성전환 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확고했으나 최근에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특히 미니라는 플레이어의 유혹에 굴복하고, 유노와 충동적인 잠자리를 가진 이후에는 한층 괴로워하던 차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로서 동지의식을 느꼈고 희미하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품었던 제인이 페이스 오프 임무를 받고 유노를 떠나게 된다.
유노는 '축복의 섬'이 표면에 내세우는 목적 외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쩌면 혜리의 사망 원인도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 과정에서 유노는 '축복의 섬'에 약간의 의심을 품고 있는 절친 상인과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유노와 상인이 '축복의 섬' 본거지를 마침내 찾아냈을 때 그곳에는 자신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만났던, 한 때 외교관을 지냈고 의원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었다. '축복의 섬'을 만들고 지휘한 장본인은 바로 그 노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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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다' 는 것이야 말로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활동일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 어느 때인가, '생산'과 '논다'는 것이 어느 정도 교집합을 가졌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논다'는 것은 생산으로 부터 완전 유리되어 온전히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 유노 앞에 한 노인이 '돈 받고 노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유노마저도 굴복시키는 마법을 일으킨다.
물론, 공짜는 없었다. 부르주아지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대치의 자극도 모자라 종종 마약에 탐닉하듯, 그들은 타인의 놀이를 질료로 삼아 욕망 자극의 불쏘시개로 삼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인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혼동하여 선전환 수술을 받기도 하고(혜리), 자신이 매일같이 보던 여자를 다른 여자와 착각하기도 한다(유노).
시작은 그럴싸하게 전개되나, 후반부로 갈 수록 호흡이 딸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허덕이다가, 부랴부랴 마무리를 짓고 마는 작가의 뒷심 부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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