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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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나'는 친구 연희가 그곳으로 유학 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때 사귀었던,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던 H를 떠올리고,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과거를 연상한다.


서울대를 나와 교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3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주이공 '나'는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자 같은 재단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외국어 고등학교에 간다. 그러나 이번엔 너무 뛰어난 아이들에 끼인 탓에 주눅이 들었다. 재벌이나 고위공무을 아버지로 둔 그 애들 사이에서, 비쩍 마른데다 치아 교정기를 낀 '나'는 어떻게든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아둥바둥 댄다. 꼴찌에서 10번째 성적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며 긴장된 3년을 보낸 '나'는 그러나 입시에 실패해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실제 외국어 고등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여대를 진학한 뒤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녀적 감수성에 기대어 학창시절 으레 겪기 마련인 일들을 짤막하게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어놓았는데, 호흡이 짧고 주제의식도 희미하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화자 '나'도 엄밀히 따지면 건물주의 딸로 독자가 공감할 포인트가 막연하다. 과외선생의 실연, 불어선생의 이직, 친구의 죽음과 같은 에피소드도 배경으로 흐릿하게 날려버려 주된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새의 선물>과 같은 깜찍함도 떨어지고, <마이너리그>와 같은 입담도 갖추지 못했다. 

자습 감독 선생이 앞문으로 들어와 조용히 하라고 외친 뒤 뒷문을 열고 이 반은 조용하군 이라고 말했다는, 70년대 생은 모두 알 법한 우스갯 소리는 써먹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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