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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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바람의 도시 > 


'내' 가 처음 고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일곱 살 무렵의 봄이었다. '나'는 벚꽃놀이 명소인 고네가이 공원에서 아빠와 헤어져 길을 잃는다. 울고 있던 '나'에게 한 아주머니가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어두워지면 요괴가 나오는 길이니 한눈 팔지 말고 가라고 했다. 비포장인 그 도로 양쪽엔 집들이 있었지만 도로쪽으로 현관을 낸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무서움을 참고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가끔 그 길에 대해 생각했다. 그 길은 어쩐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을 주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이 내밀한 이야기를 친구 가즈키에게 털어 놓는다. 가즈키는 그 이야기에 무척 흥미를 느꼈는지 함께 가보자고 했다. 어렵사리 입구를 찾아 '그 길'에 들어선 '나'와 가즈키는, 그러나 목적지인 고네가이 공원으로 나가지 못한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 길'에서 유일하게 출입문을 낸 찻집에서 만난 청년 렌은 '나'와 가즈키가 오면 안되는 곳에 왔다면서 걱정을 했다. 그곳은 고도, 귀신의 길, 죽은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그림자의 길, 신의 통행로 따위로 불리는 곳이며, 바깥 세계와는 다른 공간이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렌과 함께 동행한 '나'와 가즈키는 중도에 고모리라는 남자와 맞닥뜨린다. 렌과 고모리는 원수 사이라 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가즈키가 사고로 죽는다. 렌이 고모리를 도끼로 해치운 뒤 '나'와 렌은 가즈키를 살려내기 위해 '비의 사원'으로 향한다. 렌은 '나'에게 고모리와 얽힌 은원 관계, 그리고 왜 고도에서 나갈 수 없는지 이야기 해준다.


고도와 현실 세계는 통로를 통해 이어져 있지만 아무나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렌의 어머니는 고도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고도에 들어와 렌을 낳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렌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면서 호시카와라는 남자에게 렌을 맡긴다. 얼마 후 렌은 우연히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자가 사망하자 그를 살려내기 위해 유골함을 훔쳐 고도로 들어왔다. 비의 사원으로 간 어머니는 남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완전한 형태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남자는 어머니에게 잉태되어 렌으로 태어나게 된다. 어머니는 렌이 장성하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이 되자 렌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장성한 렌은 현실 세계에서 고도로 들어온 고모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고모리는 현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그 중 하나가 렌이었다.


비의 사원에 도착한 렌과 '나'는 가즈키를 원래대로 살려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즈키는 고도에서 살아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열흘만에 현실로 돌아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고도에서의 기억을 망각에 부치고 살아간다.


< 야시 >


어느 날, 이즈미는 동창 유지의 권유로 야시에 가게 된다. 야시가 열린다는 장소에는 시장이 설 것 같지 않았지만 숲으로 들어가니 정말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치들은 요괴나 유령들 같았고, 파는 물건들도 특이했다.

잠시 뒤 헌팅캡을 쓴 노신사와 친해진 이즈미와 유지는 납치업자의 가게로 간다. 그리고 유지가 야시에 온 이유를 알게 된다.


유지가 어렸을 적에 동생과 함께 야시에 온 적이 있었다. 야시에서 현실로 돌아가려면 특이한 조건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한 가지를 사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지와 동생은 돈이 없었다. 

납치업자의 가게에서 유지는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잘하는 능력'을 사게 된다. 값으로 치뤄야 할 댓가는 동생이었다. 유지는 이 모든 것이 꿈일 수도 있고, 꿈이 아니라면 돌아간 뒤에 부모님과 함께 동생을 데리러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보니 동생은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 뒤로 유지는 실제로 야구를 잘 하게 되었고 고시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하지만 동생을 댓가로 얻은 능력이었기에 유지는 못내 괴로웠고 마침내 동생을 찾기 위해 야시에 다시 오게된다.


납치업자에게서 동생을 되사려 했지만 유지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즈미는 유지가 이번엔 자신을 댓가로 치르려는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유지는 오히려 이즈미에게 동생을 사달라고 한다. 댓가는 바로 유지 자신. 유지는 현실 세계에 염증을 느껴 이곳에 오게되었기 때문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납치업자가 동생이라고 지칭한 아이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 어쨌든 납치업자의 말을 믿고 거래를 끝내고 동생을 건내받으려는 순간 야시에서 사귄 헌팅캡을 쓴 노신사가 재빨리 칼을 꺼내 납치업자의 목을 벤다. 


유지가 야시장에 처음와서 동생을 넘긴 직후, 동생은 납치업자의 가게에서 탈출해 아무 가게에나 들어갔다. 거기서 동생은 '젊음'을 댓가로 '자유'를 산다. 그리고 노신사가 된 유지의 동생이 납치업자의 목을 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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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이세계(異世界)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이세계물의 성공을 위한 첫번째 조건은 독자가 납득할 수 잇는 룰의 정립이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룰을 독자가 받아들일 때 호러소설로서 기능한다. 만약 룰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면 공포는 내면화되지 못하고, 환상은 헛소리로 전락한다.


<바람의 도시>에서 나오는 이세계인 고도에서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고도에 속하는 것은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비의 사원에서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조건이 따라 붙는다는 것. <야시>의 원칙 역시 두 가지다. '야시'에서는 무언가를 사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과, '야시'에서는 공정하게 장사를 해야한다는 것. 


<바람의 도시>에서는 렌과 가즈키가 고도에 귀속되고, <유지>에서는 납치업자가 '공정'을 위배했기 때문에 그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납득할 만한 룰과 복선, 그리고 반전으로 잘 읽힌다. 하지만 걸작의 반열에 올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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