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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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 상점가에서 '하모니카 할아버지'로 불리는 노인이 소비세 12엔을 요구하는 여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치매 노인의 우발적인 범죄로 사건을 종결하려 하나 요시키 형사의 생각은 달랐다. 은연중 드러나는 지적인 면모와 특정한 경우 드러내는 반응들이 치매라고 치부하기엔 위화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요시키는 노인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노인의 이름은 나메카와 이쿠오. 유아유괴 살인범으로 26년간 복역하였고, 최근 출소하였다. 출소 후에는 전철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자기 내부로 침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노인을 자주 보아온 사람들에 의하면 딱히 구걸을 하려는 의도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들 그가 약간 정신 이상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요시키 형사가 우연히 나메카와 이쿠오가 복역 중 썼다는 4편의 이야기를 입수하게 된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내용이었다.


쇼와 32년(1957년) 1월, 삿포로에서 이시카리누마타를 향해 북상하는 삿쇼 선 밤 기차에 피에로가 나타난다. 삐에로는 통로를 지나며 미친듯이 춤을 추었다. 승객들은 일순 삐에로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삐에로가 화장실 쪽으로 사라진 직후, 총소리가 들린다. 승객들은 놀라서 화장실로 향해 문을 열려 했으나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역무원이 와서 화장실을 열자, 그 안에는 삐에로가 총에 맞아 사망한 채 누워있었다. 삐에로의 주변에는 촛불이 빽빽히 불타고 있어 더욱 기괴했다. 사람들은 그 충격적인 모습에 화장실 문을 닫고 웅성거린다. 잠시 뒤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보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이야기도 이와 비슷했다. 열차에 치인 시체를 차장이 수습해 두었는데 갑자기 시체가 일어나 걸었다든가, 눈이 붉은 거인이 나타나 기차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든가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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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실상은 여태명이 기찻간에서 야쿠자와 싸움이 붙어 살해당한 직후 여태영이 야쿠자 중 한 명을 죽이면서 시작된다. 여태영은 살인을 감추면서도 동생의 시신은 수습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체가 증발해야 했으므로 삐에로가 나타나 시선을 끈 직후 마치 자살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시체의 주변에 촛불을 빽빽히 꽂아 놓은 것은 역무원이 자칫 시체를 자세히 살펴볼 우려가 있어서였다. 시체가 일어난 것은 여태영이 시체인 척 누워 있었기 때문이고, 기차가 폭발해 하늘로 올라간 것은 움직이는 시체를 향해 승객들이 던진 밀가루가 때마침 날아온 불티와 만나 폭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붉은 눈을 한 거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 연기 속을 날아가는 경비행기의 붉은 비행등이었다.


하찮은 이유로 사람을 찔러 죽인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비참하게 강제징용 당한 여태영 여태명 형제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타국의 강제력에 의해 신체를 구속 당하고 노동력을 착취 당하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움켜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형제. 비정한 여인과 야쿠자에 의해 살해 당한 동생의 복수를 하려 하지만 벤야마라는 악질 형사에 의해 누명이 씌워져 26년을 복역하게 되어 복수의 욕망마저 차압당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 조선인. 그런 조선인의 이야기를 시마다 소지라는 양심적인 일본 작가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 담았다.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는 점과 30년에 걸친 과거사 추적과 삿포로의 우시코시 형사와의 협업이 거의 아무런 장애도 없는 점 등은 단점으로 거론되나, 대담한 발상과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통렬히 성찰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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