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고, 내 거울 속의 지옥
임미경 지음 / 뿔(웅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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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혼돈과 같이 쏟아져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미고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졌다. 쓸쓸한 장례식과 의례적인 경찰 조사가 끝난 뒤, '나'(재경)은 그녀에 대해 글을 쓴다.


재경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벌이가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가고 방이 없어 오빠가 거실에 칸막이를 치고 잠을 자는 삶에서 공부라도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재경이 고른 선택지였다. 

그리고 그 즈음, 재경이 만난 것이 미고였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부유한 어머니를 둔 재경은 삶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고,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했으며, 원한다면 누구든 자신의 매력으로 붙잡아둘 수 있었다. 

둘은 서로의 매력에 끌렸다. 재경은 자유를 구가하는 미고에게 끌린 반면, 미고는 삶에 뿌리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재경에게서 안정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벌인 사소한 일탈들은 추억으로 남기고 둘은 나란히 대학 진학에 성공한다. 미고는 음악학과에, 재경은 법학과에. 그 동안 미고의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가 자살한다. 그럴 때 곁을 지켜준 것은 재경이었지만, 미고는 평상 시 화려한 남자들과 비슷한 부류의 여자들 사이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며 파티를 즐겼다. 그 파티의 공허함에 지칠 때 돌아가는 곳이 재경이었다. 둘은 점차 애증의 관계로 변했다. 함께 있으면 상처를 냈고, 헤어지면 외로움에 진저리 치며 서로를 찾았다.

그 틈바구니를 파고 든 것이 희중이었다. 재경의 선배인 희중은 영화를 찍었다. 재경의 동기들은 그런 희중의 자유분방한 삶을 '멋' 이라고 해석했지만, 재경은 '돈이 뒷받침 된 철부지 자유주의' 쯤으로 해석했다. 희중은 자신을 간파한 재경에게 오히려 끌린다. 

하지만 재경과 희중이 가까와지는 것을 본 미고가 희중을 유혹해 결혼한다. 그 결혼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재경을 희중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마음과, 자신이 미워하는 재경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는 마음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얼마 후 미고는 재경을 향한 愛와 憎 중에서, 愛가 더 본질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희중과의 관계가 파욱에 이르고, 미고는 술과 약에 빠져든다. 재경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변덕도 심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재경은 미고를 찾아간다. 미고는 재경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하지만 재경은 그 관계를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미고가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재경이 미고를 떨어지지 않게 잡았는지 아니면 그녀를 밖으로 밀쳤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것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재경 역시 미고에 대한 사랑과 미움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기에...


번역과 창작을 동시에 하는 작가들이 있다. 안정효, 이윤기, 김연경,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임미경. 

안정효는 아주 좋아하는 작가다. 소재 선택, 시대 정신에 대한 민감성,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한 어휘 구사... 모두 좋다. 

이윤기는 번역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소설이 더 좋다. 번역은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 소설의 번역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움베르토 에코를 번역한 적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소설을 다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푸코의 진자>는 소설 자체가 어려운 것 보다 번역 때문에 난해해진 면도 많다.

김연경은 소설, 번역 둘 다 내 취향이 아니다. 열린책들에서 펴낸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노라면 동일한 인물의 말투가 장 마다 바뀐다. 한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닌 것 같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미성년>도 별로였다.


이번에 읽은 임미경은 매우 좋다. 일단 별다른 사건이 없이 인물의 성격 위주로 책 한 권을 끌고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훌륭히 해내고 있다. 감정의 여러 층위를 세밀하게 포착해 내는 솜씨가 발군인데, 특히 모순된 감정을 사건으로 처리해 내는 수법이 훌륭하다. 

아쉽게도 이 작품 외 다른 창작집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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