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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에서 나 홀로
최일남 외 / 강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 오 아메리카 - 최일남 >
신문사 문화부장을 하는 '나'를 시골 노인네가 찾아온다. 용건은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니 신문에 실어 달라는 것.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일이 흔치 않았을 뿐 더러, '미국' 이라면 일단 한 수 접고 숭앙하던 시기였으니 과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나, 노인의 태도가 좀 미심쩍었다. 결국 '나'는 노인에게 학위증의 보완을 요구하며 돌려보낸다.
얼마 뒤 알아보니 노인은 고향으로 돌아간 길로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노인은 아들 하나가 좌익에 연루되어 온 가족이 연좌제에 걸리자 미국 간 큰아들이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는 허위 기사를 신문에 실어 연좌제 건을 휘갑치려 하였던 것.
< 長而里 개암나무 - 이문구 >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 농사를 망칠 지경이 되자 마을 사람들, 특히 주인공 '전가'의 매제와 동생을 중심으로 기우제를 지내야 하리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서울 사람이 쓴 묘를 파헤쳐 내는 것을 기우제의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전가'는 안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순박한 농심', '미풍양속' 짓찧어싸며 여론을 몰아갔다.
그러나 남편이 '월부책장수' 방문하듯 잠자리를 한다며 타박하는 아내나, 조카 학문이 등은 똑바로 박힌 정신을 갖고 있어 '전가'를 응원한다.
< 샛길에서 나 홀로 - 김원우 >
화자 '나'는 한때 대기업에서 잘 나갔으나 지금은 명퇴를 당해 이런저런 궁리 중이다. 아내가 '대학 접장' 노릇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다. 다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막내 동생이 급사하여 의지가지 할 데 없게 된 조카를 양자로 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두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하나는 과거 한때 자기네 집에서 일꾼이자 양자 비슷하게 생활했던 '봉이'에 관한 추억이다. 그러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봉이와의 연락은 끊기게 된다. 다른 하나는, 동료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관련된 사건이다. 그 여인과는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자리를 옮겨 계산을 따져보니 하룻밤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그런데 여자는 자신이 '나'의 아이를 배태했다가 떼어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지만 그후로 여자는 나에게 연락해오지 않았다.
노친네가 조카를 정식으로 입양하라고 성화다. 우리네 인연의 구도는 결국 잔정 끼얹기와 덧정 일구기 인데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인색하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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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메리카>는 다분히 작위적인 작품이다. 마감에 쫓겨 이야기를 부랴부랴 급조해낸 느낌으로 '미국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제3세계 국가로서의 남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느낌이 커 시쁘지 않다.
<장이리 개암나무>는 다섯번에 걸쳐 읽어 나갔다. 조금 읽다 책을 덮고 웃고, 조금 읽다 다시 책을 놓은 채 이문구 선생의 다른 작품들에 관해 생각하고... 그저 웃음으로 일관했다. 선생의 이른 타계가 안타깝다.
<샛길에서 나 홀로>의 김원우는 인간에 대한 탐색을 심도 깊게 소설로 풀어내는 작가로 사변적이면서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여기 실린 작품은 샛길 연작의 2편으로 곳곳에 문체 실험을 가해 놓았는데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들어 성공적인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