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체국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8
모리이 유카 지음, 노애선 옮김 / 갤리온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2010년에 나는 서울 명동의 마징가제트를 닮은 건물 6층으로 매일 같이 출근했다. 당시엔 아직 일본인 관광객이 중국인 관광객 보다 상대적으로 많던 시절이었다. 6층에서 담배를 피우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중국대사관이 내려다 보였다. 화교 아이들이 줄지어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졸음이 왔다.


그해 10월에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의 우체국을 방문했다. 그때 부러웠던 건 사실 거기서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팬시용품이나 개성 넘치는 건물이나 차량 디자인 등이 아니라 칸막이로 고객과 분리되어 있는 점과 점심에 창구를 닫는다는 점 등이었다. 고객과 직원이 동등한 위치라는 느낌이 부러웠다. 그만큼 당시엔 CS가 강조되는 시기여서 모든 우체국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광화문쪽으로 가다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지은이 모리이 유카는 입체조형가이자 '잡화 수집가'인데 드럭스토어, 슈퍼마킷, 뮤지엄샵, 우체국에 관한 '탐닉' 시리즈를 출간한 작가다. 당연히 '우체국에 탐닉하다'를 집어들었는데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이제서야 꺼내서 읽는다. 


배달에 이용되는 자전거나 수레, 우체국을 상징하는 둥그렇게 말린 나팔, 어린이를 위한 앙증맞은 학용품, 여러가지 우체통 등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배달차량도...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은 시기였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우체국을 다니는 나 조차도 개인적인 용무로 편지를 써본 기억이 없다. 딱 한번 우표전시회에서 장난 삼아 딸애에게 엽서를 보낸 적이 있을 뿐이다. 우편 분야는 만성 적자에 시달린 지 오래다. 


그동안 우체국은 다른 나라를 롤모델로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한때 뉴질랜드 우정이야 말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한참 돌아다니던 책이 '거대 공룡의 고삐를 당겨 세우며(Reining in the Dinosaur)'이다. 인력감축과 조직축소가 미덕이던 시절이었다. 

뉴질랜드가 시들해지자 일본우정을 배우자는 붐이 일었다. 우편사업주식회사와 유초은행, 그리고 간포 생명보험으로 분할하여 민영화한 사례를 연구했다. 세계화라는 이름의 광풍 속에서 많은 나라가 공공부문을 민영화 하던 시기였다. 전기, 수도, 도로, 심지어 경찰과 교도소까지 민영화한 나라들이 많았다. 그때는 민영화가 곧 선이던 시기였다.


그런 터프한 시대를 거쳐 대한민국 우체국은 여전히 국가기관으로 남아있다. 우체국이 정부조직으로 남아있는 건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뿐이며, 그나마 미국은 우편 서비스만 제공한다.

30여개 국은 공사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일본,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이 그렇다.

영국, 독일, 네델란드의 우체국은 모두 민영화 되었다. 


앞으로 또 다시 10년 뒤의 우체국의 모습이 어떠할 지 상상하기 어렵다. 우편 적자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고, 예금은 여신업무 취급 불가, 보험은 가입한도 제한과 변액보험 판매 불가다. 차 포 떼고 두는 장기 게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09679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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