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동의보감 세트 - 전3권 - MBC 특별 기획 <구암 허준> 드라마 원작 소설 동의보감
이은성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준의 생모 손씨의 집안은 인종 1년 윤임(尹任)이 사사당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일족이 몰락했는데, 하천으로 떨어진 손씨가 해미 군관 허륜의 첩이 된 후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허준(許浚)이다.


명종이 승하하고 14대 임금 선조가 즉위한 즈음, 허준은 첩의 자식이면서도 아버지 그늘 아래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헛헛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실 추씨 몰래 글을 배우고 아버지 위세를 빌려 큰 갓을 썼지만 자신이 천첩의 아들임은 변함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용천에 유의태라는 명의를 쫓아온 부녀가 있었다. 하지만 유의태와 길이 엇갈려 아버지는 객사하고 딸인 다희는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된다. 한눈에 다희에게 반한 허준이 그녀를 도와 장사를 치뤄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마지우가 있는 경상도 땅 산음현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유민이 많은 시기이므로 관의 도움을 빈다면 적당히 신분을 속이고 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산음현으로 가는 동안 패물과 돈을 꾸려 맡았던 장번사령이 도망쳐 허준 일가는 빈털털이가 된다. 게다가 겨우 찾아간 산음현 현감도 이미 바뀐 터라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전임 현감과 각별한 사이였다던 구일서가 허준이 살 곳을 제공해주어 겨우 터를 잡는다. 게다가 산음 땅은 "3년만 꿈지럭거리면 3년 먹을 걸 들고 나간다"는 말이 있는 고장이었다. 당귀와 오미자 등 약초가 최상급이었고 마연동 사철광에서 품을 팔아도 호구지책은 되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허준이 유의태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어머니 손씨가 여독으로 인해 체기가 있어 의원을 찾아 갔는데 그가 바로 유의태였다. 유의태는 손씨가 배를 타고 왔다는 사실을 보지 않고도 알아 맞혔고,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판가름하여 칼로 베듯이 처방을 내렸다. 허준은 그의 압도적인 실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의 문하가 되기로 결심한다.


유의태 문하는 고달팠다. 일단 텃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허준은 매일같이 그들의 '악의'에 의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유의태의 태도였다. 유의태는 문하에 든 자들에게 의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약초를 캐오라, 병자를 수발들라, 따위 허드렛 일만 시켰을 뿐 배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었다. 게다가 야속한 것은 문하에 든 자들이 조금이라도 서운한 감정을 비칠라 치면 '언제 있으라 했나' 하는 식으로 내쳤다.

허준이 유의태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의술에 대한 태도' 정도였고, 그것도 유의태가 삼적대사나 안광익과 같은 동료 의원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였다. 오로지 어깨 너머로, 빌려다 본 의서로, 그리고 유의태가 환자들을 치료할 때 눈여겨 본 짐작으로 의술을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준의 집에 응급환자가 들이닥쳤다. 허준은 자신이 아직 의원이 아니므로 고칠 수 없다 했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 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소문 나 허준 집으로 돈이 없는 자들이 병을 고쳐달라고 드나들기 시작했다. 영달이 등이 이를 눈치채고 유의태에게 '허준이 허락없이 의원을 열어 돈을 취한다'고 일러바쳤다. 욕심 많은 유의태의 아내는 이를 듣고 눈이 뒤집히지만 유의태는 사정을 들어보더니 허준이 환자에게 처방한 내역을 가져오라 이른다. 그리고 허준의 처방에 대해 평을 해준다. 이것이 유의태가 허준에게 내려준 최초의 직접적인 가르침이었다. 


본래 유의태는 젊었을 적 어의가 되려 했었다. 하지만 당시 내의원 일인자인 양예수가 유의태의 뛰어난 의술을 경계하는 바람에 어의가 되지 못했다. 비분을 금치 못한 유의태가 양예수에게 대들다 마침내 구침지희(九鍼之戱)로 실력을 가름한 일화는 유명하다. 구침지희에서 승리한 유의태의 버선코에 양예수는 '조선 제일 의원은 산음의 유의태다'라고 조아려야만 했다. 

하지만 승리도 젊었을 적의 치기에서 비롯된 허망한 결과였을 뿐, 유의태는 의술의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닫고 산음에 묻혀 의원을 연다. 그런 유의태가 아들 도지가 아닌 다른 자에게 최초로 의술을 가르치니 허준의 정성이 갸륵했음이다.  

허준은 유의태의 신임을 받아 세도가인 창녕 성대감의 안부인 병을 고치러 떠난다. 성대감은 처음에 유의태가 아닌 허준이 온 것에 실망하나, 허준이 정성으로 병자를 돌본 끝에 풍병을 낫게 하자 감동하여 내의원이 될 수 있는 소개장을 써준다.

뜻밖의 결과에 허준은 어리둥절 하면서도 소개장이 제시하는 희망에 도취되어 이제 면천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 산음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임오근 등의 비방이었다. 허준이 병자를 낫워주고 받은 소개장으로 내의원이 되려 한다는 생각에 분개한 유의태는 허준으로 부터 소개장을 빼앗아 불태워버린 뒤 문하에서 내쫓는다. 


상심한 허준은 스승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의원 되기를 포기한다. 고흥 나로도의 구일서라도 찾아가 남은 삶을 의탁해야겠다는 생각은 임시변통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허준은 길을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두 냥 짜리 산삼을 발견한다. 두 냥이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면천은 못 해도 남은 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허준의 거동을 수상쩍게 생각한 심마니들에게 걸려 흠씬 두들겨 맞고 산삼까지 빼앗긴 것이다. 피떡이 되어 있는 허준을 안광익과 김민세가 우연히 발견해 구해준다. 

깨어난 허준에게 김민세는 허준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면천시켜 주랴" 라는 말을 반복해서 묻는다. 허준은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못하고 김민세의 기세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힌다.

기운을 차린 허준은 김민세라는 인물이 궁금하기도 하고 면천이라는 단어에 매혹되기도 해서 그를 찾아간다. 그러나 김민세는 산에서 문둥병자들을 고치며 원수의 아들과 살아가고 있었다. 허준이 의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허준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내의원 취재에 응하기로 작정한다. 유의태의 오해도 어느 정도 풀렸고, 유의태 문하의 상화라는 상냥한 젊은이가 의서도 구해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유의태의 아들 도지와 나란히 한양으로 취재 시험을 보러간 허준은 그러나, 취재에 응하지 못한다. 가는 도중 주막에서 병자들을 고쳐주다가 결국 버드내라는 마을까지 가서 '한 사람만이라도 더' 고쳐주려다 결국 취재 시험에 맞춰 한양에 가지 못한 것이다. 

낙심한 허준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 도지의 합격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유의태는 기뻐하기는 커녕 도지에게 허준이 과장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추궁하고, 의술을 져버린 아들에게 크게 실망하여 의절하고 만다.  얼마 뒤 유의태 문하의 임오근이 패악질을 부리고 떠나는 바람에 유의태가 팔을 다치자 허준이 그를 대신 병자를 돌보게 된다. 유의태와 허준이 화해함과 동시에 '비인부전(非人不傳)'이 이루어지는 계기였다. 얼마 뒤 유의태는 반위로 세상을 뜨면서 자신의 몸을 허준에게 남긴다. 허준은 울면서 스승의 몸을 해부한다.


유의태가 사망하고 허준은 취재에 다시 응해 수석으로 합격한다. 양예수의 견제로 허준은 혜민서와 같이 힘든 곳으로 돌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공빈의 아우를 고치면서 선조의 눈에 든다. 

공빈의 아우는 구안와사였는데 양예수는 구안와사만 극적으로 치료하려 했다. 하지만 허준은 진맥 중 그가 반위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 결국 반위를 고친 것이다. 


허준은 또한 중국의 이시진이 본초강목(本草鋼目)을 지어 의술에 크게 기여한 바를 보고 감명받아 자신도 동의보감(東醫寶鑑)과 같은 방대한 의서를 집필할 계획을 세운다.

왜란 중에는 의원들이 제 한몸 지키기에 급급할 때 혜민서 서고의 비망록과 처방전을 보물과 같이 챙겨 맨 마지막으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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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자율학습 시간에 맨 뒷자리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보던 소설인데 당시에는 중편 쯤 읽다 작파했다가, 이번에 다시 완독하게 되었다. 


시나리오 작가로 주로 활동하던 이은성의 유작으로, 본래 춘하추동 4부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심장발작으로 작가가 사망하는 바람에 추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소설이 끝이 난다. 그래서 의녀 미사(美史)와의 관계 등이 시작 부분에서 마무리되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신영복 선생은 <동의보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허준의 이야기는 물론 소설가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사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사실이라는 그릇은 진실을 담아내기에는 언제나 작고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건들이 허준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가공의 사실이라 해도, 허준이 내놓은 결과물들에 비춰봤을 때 '사실은 아닐지언정 진실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한다'는 그의 혜안에 동감하는 바이다. 


스승 유의태가 의사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놓았기에 여기 적어 본다.


첫째는 심의(心醫)로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마음이 편안케 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병자가 그 의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로서 그건 의원이 병자에 대하여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고서야 가능한 품격이다.


둘째가 식의(食醫)로 병자의 병세를 판단함에 항상 정성이 모자라며 병자가 말하는 병명만 기억하고 약을 지어먹이는 자다.


셋째가 약의(藥醫)로 스스로 병자의 성색을 판단하여 병의 경중을 찾아내려 않고 병자가 구술하는 대로 약방문에 의지해 약을 짓되 병이 조석으로 성쇠가 있는 법과 병자의 근력과 내장의 허실까지를 비교하지 않고 병자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위의 약만 마냥 먹이며 차도를 기다리는 자다.


넷째가 혼의(昏醫)로 병자가 위급해하면 저도 덩달아 허둥대고 병자가 쓰러져 잠들면 저도 궁둥이 붙이고 앉아 눈만 뒤룩거리며 오로지 비싼 약 팔 궁리만 일삼는 자다.


다섯째가 광의(狂醫)로 병자란 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항상 과장된다는 걸 모르고 오로지 병자의 말만 듣고 매운 약을 함부로 지어먹이는 자다.


여섯째가 망의(妄醫)로 병자의 고통보다 병자의 의복을 보아 약값을 많이 내는 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이 있고 또한 밤중에 찾아오면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행색이 가난하면 따돌리기 일쑤인 자로 낮에 찾아가도 병자의 마르고 부한 것조차 보지 않으며 오로지 전에 누굴 무슨 약으로 고쳤다는 것만 증험 삼아서 비싼 약이 잘 낫는다고 우기는 자다.


일곱째가 사의(詐醫)로 오로지 의원의 행색만 흉내내며 스스로 안 아픈 이도 찾아다니며 병을 보는 체하다가 그저 제가 꾸미는 한 가지 약으로 만병통치라 우기는 자다.


여덟째가 살의(殺醫)로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는 이치와 생명이 살고 죽는 이치를 알지 못하며 하물며 아파 고통받는 이를 보고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고 나아가 남이 지은 약방문에 일일이 이다 아니다 요란을 떨어 제 이름만 파는 자다.


유의태의 말에 아들 도지가 말한다. 


"결국 본받을 만한 의원은 심의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유의태가 답한다.


"그러니까 저마다 의원이노라 행세할지라도 이 세상이 진실로 기다리고 바라는 의원은 오로지 한 부류 심의뿐이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니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치료하지 않겠다고 패악을 떨고, 결국 응급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은 살의(殺醫)쯤으로 분류하면 될까. 

국가로부터 라이센스를 강력하게 보호받는 집단들은 자신들이 받는 혜택에 대한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한순간도 망각해선 안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064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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