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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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90년대 초, 인하대학교 앞에는 '길' 이라는 서점과, '새벽' 이라는 서점이 있었다. 두 서점 모두 책을 사면 비닐로 포장을 해주었다. '길' 서점은 내가 3학년 때인가 흉흉한 소문과 함께 사라졌다. '새벽' 서점은 주인장이 만화책방을 겸영하며 '도서 판매량 저하 경향'에 맞서다 장렬히 산화해 갔다.


당시 용돈을 타거나 가욋돈이 생기면 서점에 갔다. 서점에 들어가기 전엔 졸밋한 기분이 들며 요의가 느껴지므로 화장실에 들른 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렇지 않으면 도서 선정을 그르치기 쉽다.

제일 먼저 주인장이 중앙에 진열해 놓은 권장도서를 훑어 본다. 사회과학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적당히 조합한 그 권장도서들은 물론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민음사에서 한창 새로이 번역하여 발간하기 시작한 세계문학들도 만만치 않다. 아, 책등 한가운데 빨간색 네모 안에 <문학과 지성사>가 박힌 소설들도 나를 유혹한다. 그렇지만 역시 <창작과 비평> 사의 소설들 쪽이? 아니야.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아직 읽지 못했잖아... 나는 한시간여를 그렇게 구경만 하다 겨우 한 두권을 아쉽게 사서 탐닉하듯 읽었다. 


그러다 작가들의 서재를 찍은 사진 등에 매료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쓰모토 세이초, 고은, 심지어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교수의 서재까지...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그 사진과 그림들에서 나는 묘한 위안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취직을 한 뒤 책들을 살 여유가 더 많이 생겼다. 술을 마시지 않고, 별다른 취미도 없는 나에게 독서는 그야말로 맞춤한 취미였다. 월급에서 얼마간의 돈을 헐어 책을 사고, 그 책들을 읽는 것. 건강하고,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나의 방은 책들에 점령되기 시작하였다. 


5천권 가량 된 시점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7천권이 되었을 때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책은 내 방 4면을 모두 채우고, 거실을 잠식한 뒤, 복도의 자투리 공간까지 빠짐없이 요구하더니 마침내 책장들 앞에 2중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이사를 한번 하려면 10만원에서 20만원의 추가 견적이 나왔다. 책은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며 위안했지만 단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사서 꽂아놓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책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년필이나 볼펜도, 컴퓨터와 노트북도, 다운로드 받은 영화들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물건으로부터의 '소외'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그때 읽게 된 책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이다.


...전자책에 대해 느꼈던 위화감은, 사실은 종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읽어도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위해 모으는 거라고 믿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은 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과시욕의 산물이었다.

...나는 가득 쌓인 책으로 나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흔 중반에 접어든 지금은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 대한 두근거리는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과시욕의 산물이 되고 말았다.


물건을 늘리면 늘릴수록...'침묵의 To Do 리스트'가 늘어난다. 


그래서 최근 나는 허접한 책들을 '읽어치우는' 데 골몰하기도 했다. 과거에 돈이 없어 책을 사기 어려웠을 때는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소중하게 읽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할 여유가 된 후에 급격히 책이 불어나 보관할 공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허접한 책을 먼저 읽고 북스캐너로 해치우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독서생활이었다.


지난 주부터 2주간 50리터 쓰레기 봉투 20여개 분량을 내다 버렸다. 쓰지 않는 전자기기와 옷가지들을 분리수거함에 넣었음에도 쓰레기가 저렇게나 나왔다. 


북스캐너도 바삐 돌아가고 있다. 침묵의 To Do 리스트를 줄이니 현재가 보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물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새삼 생겼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크게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공감이 간다. 실천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주위에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음은 사사키 후미오가 말하는 물건을 줄인 후 찾아온 12가지 변화이다.


01. 시간이 생긴다.

02. 생활이 즐거워진다.

03.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04.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05.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06.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07. 집중력이 높아진다.

08.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한다.

09. 건강하고 안전하다.

10.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11.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12. 감사하는 삶은 산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9667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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