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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남자가 니혼바시 파출소 앞을 불안한 걸음으로 지나쳤다. 이를 지켜보던 파출소 순경은 남자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니혼바시 다리 중간쯤 기린 조각상으로 장식된 기둥에 기대서더니 동작을 멈추었다. 순경이 취객을 살펴보러 가까이 다가갔을 때 붉게 물든 와이셔츠 자락이 보였다. 사망한 남자의 이름은 아오야기 다케아키. 아내와 아들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용의자는 금방 특정되었다. 이름은 후유키. 무직인 그는 사건 당일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트럭에 치였는데, 그의 소지품을 조사하니 다케아키의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이 나왔다. 문제는 후유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서 용의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경찰은 후유키가 아오야기를 살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수사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접점이 나온다. 후유키는 아오야기가 관리자로 있던 공장에 다닌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산재를 당했다. 목을 다쳐 손까지 저렸지만 회사는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후유키를 해고한다. 함께 일했던 동료와 공장장의 증언도 일치한다. 후유키가 산재처리를 제대로 진행해 주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회사 책임자인 아오야기 다케아키를 살해했다. 이것이 경찰이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가가 형사의 생각은 달랐다. 가가는 다케아키가 왜 사건 당일 그곳에 있었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다케아키의 소지품 중 특이하게 생긴 안경 케이스의 판매처를 알아내고, 메밀 국수를 먹었던 장소 등을 더듬어 살핀다. 그리고 마침내 다케아키가 칠복신 순례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칠복신 순례는 무언가 간절히 빌 것이 있을 때 하는 것인데, 가족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가족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종이학을 백마리씩 접어 공양할 만큼 간절했던 다케아키. 그가 빌었던 신사는 수난구재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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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등학생이 계획 살인을 저지른다. <졸업>에서는 출세를 위해 자살에 실패한 여자친구의 손목을 세면대에 다시 집어넣는 비정한 남자 친구가 나온다.
하찮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범죄자가 되는 그들을 '선생' 가가는 올바른 길로 지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가는 '선생'을 그만두고 '경찰'이 된다. 다른 가가 시리즈도 비정한 청소년들이 곧잘 등장하고, 그들은 계도 대상이 아닌 처벌 대상으로 그려진다.
<기린의 날개>에서는 아예 '선생'의 잘못된 지도를 '경찰'이 바로잡는 구도를 그려낸다.
"왜 아오야기 씨를 칼로 찌르고도 자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그건 당신이 그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야. 잘못을 저질러도 어물쩍 넘어가면 다 해결된다고 말이지. 3년 전 당신은 세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쳤어. 그래서 스기노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 거야. 아오야기 씨는 당신이 잘못 교육한 아들에게 무엇이 옳은 일인지 가르치려고 했어. 그것도 모르면서 당신이 무슨 선생이야. 당신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어"
그러나 미묘하게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 같다. 범죄자로 머물던 아이들이 <기린의 날개>에서는 참회의 길을 걷는다. 가가도 이제 소념 범죄자들과 화해를 시도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기린의 날개>에서 가가의 아버지가 죽는다. 그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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