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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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어두운 경계 터널.

 

이 땅에 사는 성인 남성들은 이 터널을 한번씩 경험한다. 이쪽과 저쪽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변화된 나'를 나누는 어두운 경계를. 바로 군대를. 명령과 구타보다 효율적인 것은 없다는 그릇된 인식이 고착되는 곳. 지금까지의 '나'와는 또 다른 '나'를 강제로 발견하는 곳.


이동원은 쓴다. 


군대의 온갖 불합리는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데서 나온다...... 이병일 때는 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사회에서의 그 사람, 나아가 사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 자신도 몰랐던 속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다녀온 남자들이 가부장적인 괴물이 되는 것이, 꼰대가 되는 것이, 폭력의 효율성에 이끌리는 것이, 진보적 가치에 반하는 괴물이 되는 것이, 뭐가 놀라운가. 

인간의 본성 가장 밑바닥에 있는 터부, 타인을 살해해서는 안된다는 터부를 교묘히 조작해 '국가가 명령하면 총으로 누군가를 쏴죽여도 된다'고 속삭이는 곳. 


<살고 싶다>는 광주육군통합병원을 무대로 군대의 폭력과 부조리, 나아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숙고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구조를 차용해 정선한 병장의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은 본격 미스터리 작품에 비하면 다소 떨어진다. '육체와 사고를 끊임 없이 단련하고, 숙고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가는' 의지적 인물 이필립 병장 역시 다소 개성이 흐릿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8836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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