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김도언 지음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선재의 아버지는 본래 승려였다. 하지만 한 여자를 만나면서 정욕에 눈을 떠 파계하고 만다. 둘은 살림을 차리고 선재와 선규를 낳는다. 

세속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규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어머니는 병을 앓는다. 얼굴이 뭉그러지고 손발이 썩어가는 병, 한센병이었다.


정작 시인이 된 것은 선재의 벗이었다.

선재는 마음에 두고 있던 '은' 에게 '사랑해도 되겠니' 라는 말을 하지 못했고, 대신 '시를 쓸 것'이라고 일기장에 적는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천형을 벗어 내는 참회의 시를 쓸 것이라던 선재는, 그러나 번번이 신춘문예에서 미끄러졌다. 정작 시인이 된 것은 선제의 벗이었고, '은' 역시 그에게 시집간다. 


선재는 생계를 위해 면접을 보러 간 학원에서 '직업이 없는 동안 뭘 했느냐'는 질문에 '그냥 나 자신을 견뎠습니다' 라는, 에밀 시오랑의 말을 흉내낸 답변을 내놓는다.  


선재가 세 들어 사는 단층집의 주인은 소라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다.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리며 풍을 맞은 아버지를 돌보는 소라는 때때로 '로렐라이 언덕' 이나 '오빠 생각' 같은 노래를  부르고, 만화영화를 반복해서 본다. 만화영화를 볼 때 소라는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에 선재는 마음이 달뜬다.


가끔 소라의 동생 호준이 찾아와 돈을 털어간다. 호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비뚤어져 양아치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호준에게는 미진이라는 이름의 학원 강사 짝이 있다. 미진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 잘 알고 있었다. 실제 미진에게 집적이는 남자도 많았다. 하지만 의붓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뒤 미진은 호준과 같은 사내에게 매력을 느낀다. 


선재는 면접에서 엉터리로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취직된다. 그 학원에 미진이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원장은 가끔 미진을 돈으로 사서 품었고, 부원장은 미진에게 끊임없이 집적댔다. 비대한 강사 선숙은 부원장을 흠모했고,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희태는 그들 모두를 경멸했다. 


한편, 군대 가 있는 소라의 남편 영표는 소라가 자신의 전화를 매번 늦게 받는다며 들들 볶았다. 그런 영표를 군대 선임이자 선재의 동생인 선규는 못 마땅했다. 고참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제멋대로라는 이유였다. 

어느 날, 선규가 영표를 구타하고 영표는 맥을 놓고 만다.


영표가 구타당하던 그 시간, 선재는 소라의 손목을 잡는다. 얼마간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약간의 왕래도 있었던 터에 감정이 얽힌 것이다. 둘이 서로를 탐닉하는 그 때, 벽 너머에서는 풍을 맞은 아버지가 요의를 느껴 불어대는 나팔 소리와 영표의 사고 소식을 알리는 전화벨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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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가정에 심각한 결핍이나 문제가 있으면 그 자녀는 대게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낮은 자존감은 때로 터무니 없는 이상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어른이 되는 것'으로는 치료될 수 없는 어릴 적 아픔은, 종종 '예술가가 된다'든가, '권력자가 된다'든가 하는 일견 폭력적인 목표의 달성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는 착각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는 독학자나 외톨이가 추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평범하게 자라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랑을 잃게 마련이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짝은 '목표를 이룬 나'에게 걸맞는 짝이다. 짝들은 '평범한 사람' 에게로 가고, '나'는 패배자로 남겨진다.

출생으로부터 패널티, 목표의 좌절, 사랑의 상실... '나'는 자학과 우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마침내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낮은 자존감을 조금씩 뜯어먹는 나... '자신을 견디는' 행위.


변두리 좌절된 인생들의 편린을 모아 하나의 소설로 묶은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는 구성 면에서 인상과 장면의 결합 형태를 띠면서도 구심점을 놓치지 않아 산만하게 읽히지 않는 매력이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84735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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