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나
김사과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미나와 수정은 P시에 살고 있다. 이들의 여유로운 중산층 부모는 자녀가 체제에 안정적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고액의 사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나름 융통성도 발휘하고 있어 미나와 수정은 담배를 피우고 노래방에서 맘에 드는 남자애들과 술을 마시는 정도의 여가는 즐기고 있다. '시발'을 문장에 섞어 쓰는 빈도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과하거나 덜하지 않은, 말하자면 '부잣집 아이' 라고 통칭해도 큰 문제가 없는 정도이다.
그런 이들의 단조로운 생활에 큰 변화를 주는 사건이 생겼다. 미나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절친 박지예가 투신자살한 것이다.
미나는 박지예와 최근 연락이 뜸했지만 친했던 친구의 자살이 일종의 파문을 던졌던 것인지 시험에 불성실하게 응하고 며칠간 학교를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선글라스를 끼고 어머니와 나타난 미나는 자퇴서를 내고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버린다.
미나의 이런 행동 변화에 당황한 것은 수정이었다. 수정은 한동안 수학문제를 전투적으로 푸는 등, 자신이 얼마나 체제에 적합한 인간인지 확인함으로써 위기를 넘기려 했지만 처리되지 못한 울분은 중첩되어 쌓여갔다. 도대체 미나가 박지예라는 루저의 죽음에 그토록 공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나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었다. 미나는 무려 칼 융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수정은 미나 대신, 말을 듣지 않는 고양이를 시간을 들여 괴롭히다 벽에 죽을 때 까지 반복해서 내던져 죽여버린다.
수정은 미나의 오빠 민호에게 미나를 죽이겠다고 선언한 뒤 민호의 무관심을 등에 없고 미나를 찾아가 살해한다. 미나는 수정에게 왜 자신을 죽이려 드는지 묻지만 수정은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애초에 그걸 알았다면 미나를 죽였겠는가 말이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으니 죽이지 않았을까?
------
배수아가 떠오르는 문체를 구사하지만 무게감은 없다. 철학의 부재를 의도적 유치함으로 치장하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실존주의의 조잡한 변용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전부이다.
세계에 대한 애정 없음이 내뿜는 자기파괴적 독기가 고양이를 난도질 하고 미나를 살해한다.
언젠가 부터 소설이 쉽게 쉽게 쓰여지고, 평론가들이 뱀 지나간 자리를 설명한다.
그래서 강유정은 이 작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神의 탄생기' 라면서도(세상에!), '자신이 상식적인 인간'이고, 앗제나 지젝이나 융과 같은 유럽의 이름을 당대 지식인의 필수교양이라고 여긴다면(한마디로 걔네들에 대해서 잘 안다면) 당장 이 책을 무시하라고 책 말미에 적어놓았다. 공모의 냄새!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355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