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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최인석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평점 :
소설은 화자가 삼청교육대 피해자인 심우영 노인을 취재하면서 시작된다. 심우영 노인에게는 말 못하는 부인이 있었는데, 맑은 외모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심우영 노인은 자신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서, 어느 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려 그리 보인다 했다. 그들을 취재할 당시만 해도 궁금한 것은 삼청교육대였는데, 취재는 한 달을 넘기게 되었다.
이것은 심우영과 주영순, 그리고 '열고야' 라는 나라와 그곳에서 온 윤작은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우영의 아버지는 도둑이었는데 어느 날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축대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홀로 된 우영의 어머니는 술에 의존하다 우영을 고아원에 맡기고 도망쳤다.
고아원 원장은 국가에서 지원한 물품을 자기 잇속을 채우는 데 사용했고, 특히 의약품은 마누라가 운영하는 약국으로 빼돌려 재판매했다. 원장의 처남이 총무였는데, 수시로 아이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가했다.
참다 못한 우영은 여자친구 영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1년여 남긴 어느 날, 원장의 책상에 똥을 누고 해방촌으로 도망친다.
고아원 선배 병식이형이 일하는 방직공장에 찾아간 우영은 뜻밖에도 따뜻한 밥을 대접 받는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자가 갓 지은 쌀밥과 김치찌개를 내왔다. 바로 이 여자가 밥어미로 불리는 윤작은년이다.
처음 얼마간 병식이형과 순금이누나의 방에서 신세를 지던 우영은 미군부대 나이트클럽 주티에 취직한다. 거기서 우영이 하는 일이란 미군들이 소변을 누는 사이 구두를 닦고 바지를 털어주는 따위의 일이었다. 그 댓가로 1달러 정도의 팁을 받았는데, 1년을 모으면 우리나라 돈으로 30만원 가량 되었다. 1~2년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우영은 병식이형의 만류와 치욕감에도 불구하고 미군 나이트클럽 일에 열중했다. 나아가 미군과 관계를 만들어 PX 물품을 빼다 파는 일에도 뛰어 들었다.
얼마 뒤, 우영은 벌어들인 돈으로 가죽잠바를 사입고 영순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영순은 우영의 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실망한 우영은 대마초와 오입질에 빠져들지만 영순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뭔가 사정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영순의 졸업식 날, 우영은 한껏 빼입고 학교로 찾아간다. 하지만 영순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소문 해 보니 영순의 아비가 고아원에 찾아왔었다고 했다.
다시 물어물어 아비와 영순이 산다는 곳으로 가보니 주변 사람들은 영순아비가 돈을 떼먹고 도망가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그 즈음, 병식은 다니던 방직공장 사정이 어려워져 문을 닫자 집에서 술 마시는 일에 골몰한다. 툭하면 순금도 때렸다. 순금은 우영에게 추파를 던진다. 고아원에서 제일 예뻤던 순금. 우영은 그녀와 정을 통하고 만다.
순금은 우영과 정을 통한 후부터 우영을 졸라댔다. 미군부대 클럽에 일자리를 얻어 직접 돈을 벌겠다는 것이었다. 우영은 내키지 않아 번번히 거절했지만 순금은 자력으로 클럽 주티에 일자리를 얻는다. 그 뒤 순금은 뭐에 홀린 듯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몸까지 파는 지경에 이른다. 자연 우영과의 관계도 수많은 관계 중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우영에겐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우영의 사업이 날로 번창해 창고 겸 집이 필요하게 되자 망해버린 방직공장이 생각난다. 가보니 거기에는 밥어미 작은년이가 여전히 살고 있었다. 작은년이는 언제든 들어와 살아도 좋다며 우영을 반긴다. 그녀는 밥을 정성껏 차려주었고, 집을 깨끗하게 건사했다. 우영이 간혹 감사의 뜻으로 돈을 건내면 작은년이는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녀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고,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필요로 하면 조건 없이 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도.
우영은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열고야'라는 나라에서 왔는데, 그곳은 북쪽으로 오십년, 동쪽으로 칠십년, 다시 북쪽으로 백십년 걸어야 나온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거기는 피나 쇠붙이, 목숨과 쇠붙이가 부딪는 일이 없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지도 않으며 천막촌이나 판잣집도 없다고 했다. 오줌싸는 동안 바지를 털어주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우영은 그녀의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은 어딘지 모르게 감동을 주는 면이 있었다.
다시 영순이 나타난 것은 나이트클럽 권상무와 함께였다. 영순은 사기꾼 아비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져 미군부대까지 흘러든 것이었다. 멜라니로 이름을 바꾼 영순은 스트립쇼에 나갔고 권상무의 잠자리 수발을 들었다. 눈이 뒤집혀 권상무에게 대든 우영은 흠씬 두들겨 맞은 후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다. 작은년이가 우영을 구해내 간호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우영은 고아원 후배 상주를 사주해 권상무를 살해하도록 한다. 혼혈인데다 고아원에 버려져 세상에 대한 악만 남은 상주는 기꺼이 우영의 부탁을 들어준다. 권상무가 죽자 나이트클럽은 조상무가 이어받고, 우영은 옛 거래선을 다시 회복한다.
그 사이 제브라 스타로 이름을 바꾼 영순은 미군과 동거하며 PX 물품을 떼다 팔아 제법 돈을 모은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순이 우영과 작은년이를 초대한 자리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영순의 아비가 돈을 빼앗아 가려고 옥신각신 하다가 넘어져 사망한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에게 작은년이가 여기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오지도 않았다고 선언한다. 작은년이는 치상죄로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작은년이가 감옥에 간 사이, 우영은 그녀가 파던 우물을 판다. 그녀는 우물을 파내려가 지구 반대편으로 가면, 세상이 열고야 처럼 바뀔거라고 했다. 그 말이 상징적인 말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모르지만 우물을 파다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영순이 찾아왔다. 하지만 둘은 예전처럼 몸을 섞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사건들도 몇 가지 일어난다. 미국으로 간 히피 앤소니 커시의 어머니가 보낸 초청장이 도착한다. 우영은 막대한 가치의 그 초청장을 상주에게 준다. 하지만 상주는 미국 갈 팔자가 못 되었다. 순금이 초청장을 훔쳐다 팔았기 때문이다.
순금의 끝도 좋지 않았다. 미군과 화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대검에 찔려 죽은 것이다. 박정희는 한미행정협정에 따른 타협 끝에 수사권과 재판권을 포기한다. 범인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처벌 받지 않는다. 오직 순금의 남편, 병식이형이 분신자살했을 뿐이다.
윤작은년이 출소한다. 우영과 영순, 작은년이는 작은 밥집을 열어 소박하게 살기로 한다. 하지만 권상무의 부하 송준태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들을 찾아온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상주의 팔다리를 절단냈다는 것이었다. 우영이 우물을 파고 있는 사이 찾아온 송준태는 작은년이를 고문하여 우영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했다. 작은년이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모진 폭행을 다 받아낸다. 이틀 뒤 그녀가 죽는다. 그 사건으로 우영은 백발이 되고, 영순은 목소리를 잃는다. 거대한 용 한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용이 작은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뒤 우영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 출소한 우영은 영순과 함께 보육원 한켠에 보금자리를 꾸며 작은년이를 떠올리며 남은 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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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 열고야에서 온 작은년이의 임무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 이다. 열심히 살아가다 목숨을 바쳐야 할 사정이 생기면, 목숨을 내놓는 것. 이것이 열고야에서 온 스파이들의 임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리고, 전봉준이 함거에 실려가 목을 내놓은 것. 작은년이는 그들이 스파이였다고 말한다.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는 훨씬 사람다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살다간 그 행위가 곧 간첩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아름다운 간첩들이 잠시 머물다 간 이곳 남한 땅에 토착왜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 최근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이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을 어쩌면 우리가 대어주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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