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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이들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2021년 정월 초하루 0시 3분.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 술집에서 소동이 일어나 조셉 리카도가 피살된다. 그는 1995년에 태어났고, 인간 존재 중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그가 태어났던 1995년 이후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1995년은 '오메가 해'로 명명되었다. 40년 내로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인류는 '보편적 권태(ennui universel)' 라는 병에 시달리는 중이다. 어린이 놀이터는 철거되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얼굴에 색칠을 한' 오메가들이 사람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고, 국립보안경찰은 범죄자를 잡으면 곧바로 Man 섬으로 이동시켜 영구 격리시켰다.
엄마노릇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좌절된 모성에 대한 갈망으로 어떤 사람들은 인형에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테오도어 페이런은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의 특별연구원이자 철학박사로 올해 쉰 하나이다. 부주의로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원인이 되어 아내와 헤어져 혼자 산다.
그는 또 센 리파이어트와 사촌지간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총통이자 독재자인 바로 그 센 리파이어트 말이다. 테어도어 페이런은 한 때 센의 권유로 평의회 참관인 겸 자문역을 했지만, 지금은 그 일을 관두고 역사를 가르친다.
어느 날, 왼손이 불구인 여성 줄리언이 테어도어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불구였기 때문에 마흔 다섯 미만 여성이라면 6개월에 한번씩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건강진단(난자를 생성할 수 있는지)을 면제 받았다. 그녀는 잉글랜드와 브리튼 곳곳에서 그릇된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일들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한때 평의회 성원이었던 테어도어가 센과 얘기하여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남편 롤프를 비롯한 다섯 명이 동아리를 이뤄 뜻을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테어도어는 줄리언에 대한 호감으로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지만, 센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총통은 15년 전에 선출되었는데 그 뒤로는 선거가 치뤄지지 않았다. 그는 국립보안경찰 그레나디어를 자신의 주위에 배치하고 독재자가 되어 정액검사제도를 실시하고 지방의회 의장을 선출하지 못하게 했다. 부인과 검진을 강제로 실시했고, 무엇보다도 콰이터스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Quietus는 생명활동의 유예 및 중지를 뜻했다. 콰이터스는 사실상 단체 학살임에도 불구하고 외형은 자발적인 자살의 양태를 띠었다.
예상대로 센은 테어도어의 제안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건 '누가 테어도어에게 그러한 발언을 하도록 부추겼나' 였다.
테어도어는 제안이 좌절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줄리언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룹 리더인 롤프, 조산원 출신의 미리엄, 사제 루크, 소년같은 외모의 가스코뉴를 만난다. 그들은 테어도어의 얘기를 전해듣고 실망한다.
얼마 뒤 그들은 행동에 나선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는 일이었다. 총선을 실시할 것, 체류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할 것, 콰이터스를 철폐할 것, 맨섬 유형제도를 폐지할 것, 강제적 신체검사를 당장 중단할 것 등을 내건 전단지는 시내 곳곳에 뿌려진다. 서명란엔 '다섯 마리 물고기'라고 씌여 있었다.
줄리언에게 호감을 품은 테어도어는 '당신만이라도 무모한 짓을 그만두라' 고 권유하지만 실패한 뒤 6개월간 유럽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테어도어에게 날아든 소식은 가스코뉴가 잡혀갔다는 것과 '다섯 마리 물고기'가 콰이터스 예정지의 부잔교를 폭파하는 등 과격한 행동에 돌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줄리앤을 만난 테어도어는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낳을 때 까지 피신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4주간 머무를 수 있는 은신처가 필요했다.
테어도어는 가스코뉴가 빠진 '다섯 마리 물고기'와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롤프와 다툼을 반복하고, 롤프 역시 기존 권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레나디어를 피해 도망치던 이들 앞에 '얼굴에 색칠을 한' 오메가들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루크가 희생된다. 줄리언은 서럽게 울면서 자신의 뱃 속에 있는 아이는 루크의 아이였다고 고백한다. 루크 역시 줄리언과 마찬가지로 건강진단을 면제받은 부류였다. 그는 간질 환자였다.
아이 아버지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롤프가 사라진다. 그는 줄리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일러바침으로써 조그만 권력이라도 얻게 되길 꿈꾸며 총통에게 갔을 터였다.
도주가 계속되고, 그 과정에서 미리엄이 사망한다. 마침내 그레나디어와 센이 테어도어와 줄리언 앞에 나타난다. 테어도어는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센을 사살한다.
센이 죽고, 아이는 이미 태어났다. 테어도어는 센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자신의 손가락에 끼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뺄 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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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고딕풍으로 그려내는 추리소설의 대가 P.D.제임스가 말년인 1992년에 발표한 <The Children of Men> 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우리나라에는 1994년 동아일보사가 <콰이터스>로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최근엔 아작 출판사에서 <사람의 아이들>이라는 원제로 다시 출간되었다.
인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임이 되어 버린다는 가까운 미래 이야기인데, 곰곰 생각해 보면 허무함이 밀려든다. 수천년에 걸쳐 이룬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40년 내로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반복 하는 행동들도 따지고 보면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음 세대가 없다면 인간은 무엇에 집중하게 될 것인가? P.D.제임스가 내놓는 대답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권력에 집착함으로써 남은 삶을 최대한 추악하게 덧칠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종말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국적에 따라 체류자를 차별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며, 45세 이상과 이하를 차별한다. 노동력을 활용해 만들어내야 할 대단할 것도 없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콰이터스라는 이름으로 단체 학살 당하고, 독재자는 자신의 주위에 더 많은 국가경찰을 배치한다.
주인공은 그런 종말의 시대에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대면하기 위하여 어제를 해석하는 학문' 인 역사를 가르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게다가 아이를 낳아봐야 소용이 없다며 건강검진을 면제받은 장애인 줄리언과 루크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일체의 차별에 대해 가공할 냉소를 날리는 P.D.제임스의 디스토피아 이야기는 작가가 추리소설에서 외도한 단 한편의 작품이며, 2006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 클라이브 오웬과 줄리안 무어 주연 영화로 제작되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10223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