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주인공 '나'는 대필작가이다. 반지하에 세를 얻어 사무실과 살림살이를 겸하고 있는데, 예전엔 아내와 함께 살았다.  

 '엔진오일이 세는 차를 언젠가 고쳐야 하리라' 생각하고, 가끔 여자 둘이서 그냥저냥 꾸려가는 막걸리 집에 가며, 밥은 때때로 차려 먹고 때때로 사먹는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집 주변의 이런저런 가게들을 이용하는 '나'의 일상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는 분주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대필일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굴곡 많았던 삶을 책으로 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 덕에 밥 굶지 않을 만큼 들어온다. 처음엔 대필일을 하면 의뢰인과 긴밀한 관계가 될거라 생각했지만, 작업이 끝나면 관계가 대부분 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내가 집필을 의뢰한다. 그런데 의뢰자는 자신의 삶을 소재로 소설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사내가 풍기는 묘한 매력 때문에 그러마하고 대답한다. 하지만 남자는 며칠 뒤 죽고 만다. 


사내가 말한 '소설' 이라는 말 때문일까. '나'는 죽은 아내와, 진돗개라고 믿었던 태순이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과 날을 세워 '대결'만 하던 '내'가 모정리로 가 농사짓고 살던 '시절', '나'와 아내는 개를 키웠다. 가장 애착했던 개는 진돗개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잡종이었던- 태순이었다. 

아내는 어느 날 부터 많이 아팠다. 누군가는 무병이라고 했다. 태순이가 아내 대신 죽은 뒤, '나'와 아내는 모정리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지금의 사무실을 얻어 대필일을 시작했다. '나'의 뾰족한 성격을 아내는 둥글둥글하게 받아주었고, 일도 힘껏 도와주었다. 

아내는 태순이가 꼭 다시 올거라고 했다. 아내가 한 말은 맞을거라 생각했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둘이 함께 산책을 나간 날이었다. 아내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말들을 하며 서로에게 기대서 걷던 길 끝에 놀이터가 있었다. 

음료수를 사가지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벤치에 누워 숨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내가 생각 나면 '나'는 새벽 거리고 나갔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진 않았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좋았던 그 날,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거리. 그래서 '나'는 새벽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내를 느꼈다.


아내가 집에 왔다. 아내는 밥을 짓고 된장 찌개를 끓여 내왔다. 집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아내는 오래된 막걸리 통에 곰팡이가 피었더라며 그런건 바로바로 버려야 한다 했고, 안주 없이는 술 마시지 말라 했다. 그리고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사업에 실패해 자살한 아버지, 봉제공장에서 어렵게 돈을 벌던 어머니, 아내 대신 죽었던 개 태인이가 보였다. 그리고, 스무 살 시절의 가여운 '나'도 보였다. 소설을 써보라던 장 선생이 환히 웃으며 축하한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장 선생은 아버지를 닮은 것도 같았다.


담배를 사러 사무실을 나왔을 때 주차장 한구석에 강아지 한 마리가 보았다. 장 선생을 만났던던 밤에 보았던 유기견이었다. 그 사이 더 초췌해진 강아지 앞으로 다가가자 강아직지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내' 구두를 핥는다. 이 녀석 까지 기르면 아홉 번째 개다. 아내가 죽기 전 만든 문패,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이라고 쓰인 문패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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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대신 써주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 기르던 개, 그리고 부모님과 사귀었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죽은 자들을 보는 주인공과 미래를 예측하는 아내 등 환상적인 면들이 세세한 동네 풍경과 어우러져 묘하게 조화롭다.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용서하고 안쓰러워하는 부분과 죽은 아내를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울컥했던 것 같다. 임영태의 작품은 묘하게 나를 공감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작가의 소설은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와 <비디오를 보는 남자> 두 편을 읽었는데, 둘 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작품을 사서 꽂아 두었는데, 과작이라서 아껴 읽는다. <모정리 일기>도 얼마 전 샀는데, 작품에서 모정리 시절 이야기가 언급되어 반가왔다. 작가의 아내 이서인도 시집 한 권과 소설 두 권을 작가이다. 소설을 다 읽고 혹시 정말 아내가 죽었나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데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사람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라는 이서인 작가의 말을 되뇌어 본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좀 더 충분히 사랑하자고 다짐한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31046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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