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매듭은 누가 풀까
이경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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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손하영은 성공한 현대무용가이며 대학교수이다. 마흔을 목전에 앞 둔 그녀는 정인호와의 사이에 딸 둘을 두었는데, 큰 딸은 하영 작은딸은 인영이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눈치다.

하영과 아이들 사이에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하영을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미워했다. 집안 일은 입주 가정부가 도맡아 하고 있어 하영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런 손하영이 최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작품은 '도랑선비 청천각시'와 '치원대, 양산복' 이다. 이 과정에서 손하영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 연원을 따져보다 자신의 과거와 대면한다.

어렸을 적 손하영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먹고 어머니를 때렸다. 그는 한바탕 매타작이 끝나면 손하영을 끌어안고 '아버지 밉지' 라며 눈물을 흘렸다. 손하영은 어머니의 아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편에 섰다.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자기만이라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이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의 반복이 손하영의 여성성에 왜곡을 가져왔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파탄나게 만든 것 같았다.

손하영의 고통이 몸으로 번져 춤을 추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손하영은 재능있는 제자에게 자신의 배역을 물려준다. 

남편 정인호가 손하영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뜻밖에도 손하영은 남편에게 메달린다. 남편은 결국 떠나고, 손하영은 남편에게 메달린 자신의 심리가  과거 폭군 아버지 편에 섰던 심리와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어머니와는 화해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머니가 '니가 여자니?'라고 하영에게 던졌던 물음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과거 아버지 편을 들었던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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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손하영은 통상 우리사회가 어머니, 아내, 딸에게 요구하는 것 일체를 부작위로 일관한다.

육아에 관해 말하자면 몸매가 무너질까봐 모유 한 번 먹여본 적이 없고, 아이들 밥 한 끼 차려본 경험이 없다. 남편은 최소한 아이들과 놀아주기라도 하는데 반해 손하영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아이들에게 '왜 나를 미워하냐'며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남편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댁 제사를 깜빡해서 큰집에 가지 않은 날, 손하영은 남편의 냉담한 반응이 두려워 집에 가는 대신 호텔에 가서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 남편은 손하영의 사회생활을 이해한다며 제사 정도만 참석하라고 -차리라고가 아니라- 부탁 했었다. 바람피고 돌아온 손하영은 남편이 자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다.

그녀는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양복에서 혹시라도 바람의 징후가 있는지 살피면서 비참해하고, 이혼요구에는 눈물을 흘리며 뜻밖의 재난을 당한 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친모가 맞을 땐 수수방관 했으면서 자신이 힘들 땐 친모에게 전화를 걸어 패악질을 일삼는다.


손하영은 그야말로 공감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여자이다. 그런 손하영이라는 주인공을 가지고 작가는 '도랑선비 청천각시'와 '치원대 양산복' 이야기를 차용하여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여성성 보다 중요한건 인간성이다. 억압받는 부류에 속해 있다고 해서 뭐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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