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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꽃다발을 흙탕물에 던져 버렸다
윌라 캐더 / 도서출판 오상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미국 서부의 스위트 워터 마을 외각에 포레스터 대위 부부의 저택이 있었다. 대위는 철도 부설공사 이권을 가지고 있었고 은행의 대주주이기도 했다. 부인은 대위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기품이 넘치면서도 요염한 여인이었다.
주인공 니일 허버어트는 외삼촌 포머로이 씨 댁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포머로이씨는 판사이자 포레스터 대위의 법률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니일은 포레스터 부인을 볼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니일이 동네 소년들과 포레스터 대위의 저택 주변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마을 개들을 독살한다고 소문 난 불량배 아이비가 소년들에게 다가와 거들먹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내 딱따구리를 쏘아 맞혔다. 아이비는 주머니칼을 꺼내 바닥에 떨어진 딱따구리의 눈을 도려낸 뒤 다시 날려 보냈다. 가련한 딱다구리는 겨우겨우 나무 위쪽 둥지로 날아갔다. 니일은 딱다구리가 너무 불쌍했다. 차라리 딱다구리를 죽이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 생각한 니일이 나무에 오르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만다. 심하게 다친 니일을 포레스터 부인이 간호해준다. 니일은 흥분과 긴장 속에서 자신을 간호하는 포레스터 부인의 손길과 체취를 느낀다. 아마도 니일이 느낀 최초의 여자였을 것이다.
니일은 요염하면서도 성숙한 포레스터 부인을 동경했고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긴장 속에서 보내곤 한다. 하지만 니일의 이런 두근거림은 곧 깨어지고 만다. 좋지 않은 소문을 달고 다니는 엘린저라는 정력적인 남성과 포레스터 부인이 부정한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니일은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가슴 속에 세겨진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니일은 건축기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방학을 맞아 고향인 스위트 워터에 돌아온 니일이 꽃다발을 만들어 포레스터 부인의 저택으로 갔을 때, 니일은 또 다시 엘린저와 포레스터 부인의 부적절한 대화를 엿듣는다. 니일은 부인을 위해 만든 꽃다발을 흙탕물에 던져 버린다.
경제공황이 찾아오고, 포레스터 대위의 은행이 파산한다. 대위는 자신의 재산을 챙길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돈을 맡긴 불쌍한 고객들을 위해 재산을 헐어 보상 해준다. 대위는 스위트 워터에 있는 저택만 겨우 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일혈까지 찾아와 대위는 굴신하기 조차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만다. 포레스터 부인의 정염을 덮을 돈도, 남성의 육체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기꾼 같은 엘린저 마저 돈 많은 처녀와 결혼하며 부인을 떠난다.
부인은 술에 의존했고, 과거 소년이었던 니일의 친구들과 야비한 아이비에게 몸을 허락하며 타락해간다. 니일은 자신의 마돈나가 타락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긍지높은 포레스터 대위가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본 뒤 대학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는 포레스터 부인과 야비한 아이비에 관한 더러운 소문이 날아든다. 하지만 그런 더러운 소문도 외삼촌 포머로이가 사망하면서 끝이 난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 젊은 시절을 스위트 워터 마을에서 지냈다는 낮선 남자가 니일에게 다가와 자기 소개를 한다. 그는 에드 엘리어트란라는 사람이라면서 옛 친구 포레스터 부인의 소식을 전한다.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호와 결혼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던 그녀가 스위트 워터의 주민들 안부를 자세히 물은 뒤 부탁을 남겼다고 했다. "니일 허버어트를 만나게 되면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잊지 말고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말을 들은 니일은 먹먹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만, 사내는 그녀가 삼 년 전 이미 숨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그날 밤, 니일은 거리에서 산 장미꽃 송이에 비밀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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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불편하다. 불편하니까 현실적이겠지만, 현실적인 것을 굳이 소설에서까지 반복해서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미의 불편함이다.
포레스터 대위는 스캔들에 휘말린 메리언 옴스비(훗날 포레스터 부인)의 생명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결혼한 뒤에는 일체 과거를 묻지 않는다. 대공황 시기에는 은행이 파산하자 다른 대주주들과 달리 자신의 채권과 주식을 처분하여 고객 지분으로 돌려놓는다.
이토록 긍지높은 인물을 작가는 뇌일혈에 걸리도록 하여 성적, 신체적 기능을 박탈시킨다. 그런 뒤 그의 아내 포레스터 부인을 건달, 양아치, 얼치기들과 어울리도록 하여 타락하도록 만들고,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를 낱낱히 지켜보도록 한다.
긍지높은 인물과 주인공은 요염한 포레스터 부인의 신체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한 뒤, 온갖 시정잡배들이 기품있는 부인을 유린토록 하는 이 구성이 어떤 효과를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사디스트적인 구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873년 버지니아 윈체스터 태생인 윌라 캐더는 서부 개척시대에 관한 소설을 주로 썼다. 본 작품은 원제 <A Lost Lady>로 오상출판사가 펴낸 책 표지에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씌여 있으나 이는 출판사의 농간이고, 실제 수상작은 1922년에 발표한 <One of Our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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