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자를 위하여
송영 지음 / 창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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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발로자를 위하여 - 문예중앙 1998년 겨울호


동창  모임에서 박교수가 모스끄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다짜고짜 여행에 끼워달라고 조른다. 언젠가 다시 발로자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로자를 처음 본 것은 구십이년도였다. 그때는 쿠데타가 일어나서 의사당에 대포를 쏘고 옐찐이 탱크 위에서 연설을 했던 직후였다. 발로자의 본명은 블라지미르 띠호노프로 당시 여행안내인이었는데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했고, 친절하고 예의발랐다. '나'는 발로자에게 이상하게도 호감이 갔고, 그와 친교를 맺게 된다. 그래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지 않아 그로부터 연락이 온다. 한국여성과 사랑에 빠진 그가 한국여행을 와서 전화를 준 것이다. 호감과 만남은 나이를 넘은 친교로 이어졌고, '나'는 발로자를 만나러 다시 러시아여행을 온 것이다.

다시 만난 발로자는 그다지 신색이 좋지 못했다. 짧은 여행이 끝난 뒤, '나'는 발로자가 자신을 끌어주었던 교수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당했고, 적당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으며, 해외로 나가 교수자리를 얻으려던 노력들도 번번히 좌절되었다는 좋지 못한 소식들을 듣는다. '나'는 발로자가 꼭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던 예전의 그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아 가끔 발로자가 신음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낀다. 


o 두 사람 - 현대문학 2003년 1월호


퇴직 은행원 류광현씨. 모든 시민들이 '세기의 축구대결'을 기다리며 TV 앞에 바투 앉아 있을 지금, 그는 버스정류장에 책을 들고 나와 읽고 있다. 잠시 뒤 인기척을 느낀 류광현씨가 옆을 보니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붙임성 있게 류광현씨에게 말을 걸더니 담배도 빌리고 신변잡기를 떠벌이기도 하더니 갑자기 자기 집에 초대를 하겠단다. 별난 인간이라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그는 아내에게 친구를 사귀었노라 자랑까지 한다. 얼마 뒤, 류광현씨는 그가 생각나 찾아가 봤지만 실상 잡동사니 따위를 나무둥치에 모아두었을 뿐인 자리였다. 그의 정체 역시 아무에게나 말을 걸며 담배나 빌리는 행려병자와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된 류광현씨는 몹시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o 천사는 어디있나? - 미네르바 2000년 봄호


신촌역 부근 하숙집에 사는 '나'는 키가 보통사람보다 훨씬 작은, 소위 난장이 사내와 살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김동정이었는데, 술집 앞에서 손님을 끄는 역할을 했다. 술을 잘 못 마셨고, 단 것을 좋아하는 김동정씨는 몹시 순박하고 착했다. 그래서인지 술집여자들도 김동정씨를 썩 좋아해서 사탕 따위를 사서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김동정씨가 자신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다고 고백하는데, 찬찬히 들어보니 김동정씨의 순수한 맘을 이용하려는 사기꾼이다. '내'가 그 사실을 지적하자, 김동정씨도 사실은 알고 있었던 듯 '언젠가 자신에게도 천사같은 여자가 나타날까요'라고 묻더니 씩씩하게 인사하고 직장으로 나갔다.


o 태어난 곳 - 실천문학 2002년 여름호


포천 면소에 다니는 군청 서기에게 '내' 고향이 똘뽀라 하니, 그런 지명은 처음 듣는다고 한다. 동리에서 오래된 노인들도 다들 똘뽀를 모른다 하니,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노인네가 '알겠다' 하더니, 개울 주변에 돌을 많이 쌓아 돌보라 불리던 곳을 일러준다. 선생님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고, 똘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나는 내 고향이 똘뽀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o 신뢰받는 인간 - 황해문화 1999년 겨울호


미국에서 영구귀국한 사내가 형의 연락처를 묻는데 '나'는 대답이 궁하다. 형은 소싯적에 잠시 유령회사 같은 곳에 다니며 잠깐 돈을 벌었을 뿐, 그 뒤로는 백수건달로 생활하며 간간히 나에게 돈을 빌어 썼고 현재는 알콜 중독이었다. 시설에 입소해있는 형을 자꾸만 찾으니 대답이 궁했던 것인데, '그'가 죽어라 형을 만나겠다 하고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하루는 그의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시설로 안내한다. 그런데 시설 입구에서 그가 '이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쩐지 형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형의 성격상 불쾌해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로서 가장 큰 배려를 베푼 셈이었고, 우리는 요양원을 뒤로 하고 차를 타고 샛길을 다시 빠져나왔다.


o 자비와 동정 - 문학과 경계 2001년 여름호


어느 날 '나'는 종로 네거리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혼자 걷다가 낯익은 얼굴과 조우한다. 수행승을 여럿 달고 오는 스님이었다. 스님의 이름은 성한경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중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는데, 성한경이 어찌 눈치챘는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졸업 때까지 머물라고 배려해주었다. 그런데 성한경네도 찢어지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송정역 부근에서 철로에 떨어뜨린 석탄을 주워 생계를 연명할 정도였다. 성한경의 아버지는 세상 팔자 편한 사람으로 하루 번돈을 몽땅 술을 먹고 들어와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잤다. 성한경을 그런 아버지를 마치 자랑이나 하는 것 처럼 유쾌한 목소리로 '우리 아버지는 호인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성한경의 그런 태도와, '나'를 동숙자로 받아들여준 점 등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다.


o 성자의 그늘 - 문예중앙 2001년 여름호


몇해 전에 볼일이 있어 광주로 간 '나'는 옛 친구 김규석을 만난다. 그는 술담배를 하지 않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의 아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유독 김규식이 나를 자기 집으로 이끌더니, 재떨이까지 대령하며 담배를 권하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란다.

그는 세상 없는 기독교도인 자기 아내가 사기꾼 외할아버지의 말에 속아 돈을 들어다 바친 일과, 존경받는 목사인 장인이 노인을 내친 이야기 등을 털어놓는다.


o 고려인 니나 - 창작과 비평 1999년 여름호


우리집 일을 도와주는 고려인 니나는 한국말이 서툴다. 아이가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가끔 니나에게 짜증을 내는데, 니나는 품성이 좋아 그런지 다 받아준다. 니나에게 지하철 안내를 부탁하자 니나는 바쁜데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 그리고 없는 돈에 초콜릿을 사서 아들에게 선물로 주라한다. '나'는 사정 때문에 니나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마음 아프다. 니나는 해고를 통보 받고 "그럼 잘 가. 내 갈게" 라고 하고 선선히 포기하고 돌아선다. '나'는 너무 서툴게 행동한 게 아닌지 마음에 걸린다.


o 모슬 기행 - 현대문학 1995년 1월호


이라크 주한대사 가잘씨와 박해수 기자의 인연으로 '나', 홍명혜, 김정 등이 이라크 여행을 오게 되었다. 그런데 화가 김정이 가잘씨의 딸 로라에게 빠진 뒤 이라크에 남겠다고 떼를 쓴다. 그는 캐나다와 한국을 오간 덕에 양쪽의 정서 모두를 담은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어느쪽에도 호소력이 없는 어정쩡한 작품세계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바빌론으로 혼자 갔던 김정이 실종되자 모두들 당황한다. 비행기편을 미루고 한바탕 난리를 치룬 뒤끝에, 바그다드 대사관에서 김정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어쩐지 다행이라는 감정과, 까닭모를 공허가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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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1988년도니까 중학교 1학년때이다. <대통령아저씨 그게 아니어요>라는 정치꽁트집이었는데,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라는 책과 짝을 이뤄 작은형방에 꽃혀 있었다. 누가봐도 전두환, 이순자였는데 <대통령아저씨...>에 수록된 첫번째 작품 작가가 송영이었다.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작가 이름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가 이번에 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수필과 소설의 경계에 걸친 것같은 느낌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첫작품인 <발로자를 위하여>도 現 오슬로대학의 박노자 교수와의 실제 만남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100년만의 최악의 폭염이라는데 집에 에어컨이 없어 그냥 있는 것도 힘들어 독서일기를 쓰지 않았는데 당직 서면서 몰아쓰고 있다. 에어컨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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