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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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성 검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1)  12 14 16   이라는 법칙이 있다고 했을 때

2)    3  5  7    이나

3)  10 11 12   가 과연 위 법칙에 부합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문장에서 주어진 가정을 '2씩 증가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에게 2번은 정답이고 3번은 오답입니다.

하지만 첫 가정을 '숫자가 증가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2번과 3번 모두 정답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짝수의 순차적 나열'로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2번과 3번 모두 오답입니다.

상기 사례처럼 세상은 답이 딱딱 떨어지게 돌아가지 않으며 명확하게 정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들로 가득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정답'을 내기 어려운 분야는 의외로 도덕윤리겠지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대단히 논쟁적인 사례들을 대거 제시하면서 공리주의나 평등/자유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차를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도덕윤리학을 다루다보니 수없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맛볼거리로 제공하고도

마지막에는 다소 모호한 형태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공동선...?)

다 읽고나면 상당히 흥미롭고 논쟁적이었던 것 같지만 무언가 허전한 공백이 느껴지죠.  

 

<바른 마음>은 진화론에 기반하여 도덕윤리학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대단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철학·도덕윤리학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인문학적 현상들은

그간 주로 문화적 차이, 역사적 맥락, 환경적 영향 같은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는데

진화론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환경·역사보다도 더 원초적 차원인 인간 자체, 생물학에 토대를 둔다는 점일 겁니다.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TED 강의에서 '진보, 보수의 도덕적 뿌리'라는 짧은 강의를 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그의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바른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 전략적이며,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 플라톤 같은 이성 지상주의와 상반된 견해를 다양한 과학적 심리학적 사례, 특히 진화론에 기반하여 주장

[2부] 바른 마음에는 다양한 힘이 있고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나 공평성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 지금껏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잣대는 대부분 피해나 공평성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생물학·심리학에 기반하여 도덕성 판단의 잣대를 보다 다양화

[3부]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만든다.

 - 인간을 호모 듀플렉스 '90%의 침팬지 + 10%의 벌'이라 지칭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2~3부에 몰려있고 

1부는 저자의 생각을 펼치기 위한 전제와 입증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부부터 펼쳐지는 도덕성 기반에 대한 6가지 분류는 아주 재미있고 설득력 높습니다.

저자는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자유/압제 라는 

도덕성 기반에 대한 6가지 대분류를 제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대개 피해를 끼쳤는지나 공리-공평성에 상당히 집중해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봤을 때 군집하는 것이 장기 생존을 위해 유리한 등

'이기적인 유전자'에 되려 조직에 소속되어 충성하거나 조직을 유지하는 권위에 대해 인정하려드는 

근원적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참신하고도 인상적입니다.

 

추가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2부 8장)>에 대해 분석하는 내용은

이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여러 해석 중 설득력이 가장 높습니다.

우리도 늘 신기하게 여겨온 이 현상에 대한 해석은 그간 주로 어린시절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거나, 

혹은 '세뇌'당했다거나, 심지어 가난한 이들이 '무식'하다는 등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저자는 진보 진영이 도덕성에 대한 다양한 '미각' 중 배려/피해나 공평성에만 기반하여 이들을 설득하려 했을 뿐 

국가나 조직에 대한 소속본능·충성이나 권위 같은 나머지 '미각'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대분류는 바로 몇몇 기타 원칙들과 일견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자유/압제로 

자유/압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 차이가 정치적으로는 소위 좌파·진보, 우파·보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추가로 공평성 원칙에 대해 우파/좌파는 해석이 전혀 다른데

우파의 공평성 원칙은 '일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 것을 줄 이유는 없다'에 가깝고

좌파의 공평성 원칙은 '가진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을 편취하기 때문에 이를 나눠야 한다'입니다.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알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모여 사는 조직생활을 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난제입니다.

 

 

3부는 주로 인간의 집단지향성, '군집 스위치'에 대한 내용이고

유럽에서 왕정이 종료되고 시민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안되어 파시즘이 생기면서 '자유로부터 도피'한 역사적 사실,

원시부족들이 벌이는 집단축제나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이 열광한 모습 등 다양한 현상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집단지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나름 설득력있다고 보입니다.

상기와 같은 측면에서 저자는 종교라는 군집단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합니다.

 

 

결국 각자의 도덕적 판단은 생물학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결정되며

각자가 지니게 되는 '코끼리'와 같은 나름의 직관적 도덕률이 생기면서 이 사회는 늘상 갈등을 빚게 됩니다.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자유/압제에 대한 선호도가 각자 다를 뿐더러

심지어 공평성 등 일부 대원칙에 대한 판단 기준부터가 각기 다를 정도니

결국 타인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모르게 됩니다.

 

조너선 하이트가 대표적인 클리셰이자 캐치프레이즈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두 첫 문장에서 언급한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기존까지의 도덕적 잣대에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해 이해하려는 기반이 추가된다면

최소한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바른 마음>이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호응을 얻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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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식인가 - 부자가 되려면 자본이 일하게 하라
존 리 지음 / 이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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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식인가>는 주식 입문서로써 아주 쉽게 쓰여지고 무난한 내용인 동시에

해외에서 오랜기간 자산운용을 해온 전문가가 코스피가 왜 늘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는지,

한국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왜 꼭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짚어주는 책입니다.

 

실제 한국은 보유 현금이나 부동산 등을 합산한 자산가치가 시가총액에 육박하거나 더 큰 회사들이 제법 존재하는데

이런 비합리적인 상태가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기관투자자·개인을 비롯한 소수 주주들(심지어 외국인까지)이 

대주주의 횡포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기 때문이지요. 

국내 M&A에 막대한 프리미엄이 부여되는 현상 속에는 이런 대주주 프리미엄(?)도 일부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보유 현금이 배당재원으로 지급되거나 성장동력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회사에 유보만 되어있거나 

핵심 자산들이 어느날 갑자기 헐값에 매각되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신뢰 이슈를 야기하면서 국내기업들의 역량 대비 낮게 가치평가받는 주된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한국 증시에 투자할 때 기업의 내재역량과 더불어 

반드시 중요하게 같이 파악해야될 요소는 바로 대주주의 도덕성입니다. 

 - 회사 보유 자산가치가 아무리 좋아도, 사업 전망과 이익모델이 뛰어나도 공동 투자자들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이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통제할 마땅한 방법이 별반 없다는 것 또한 문제로,

저자가 참여했던 장하성 펀드의 실질 성과는 미약했으나

국내 자본시장이 의미있게 발전하는 데 나름 큰 의의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ㅌㄱ, ㄹㄷ 등등등...

 

시중에 주식투자 관련 서적은 수없이 쏟아져나와 있고 별반 차별성이 없는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외국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스커더에서 코리아펀드를 장기간 운용해온 저자의 경력은 한국증시를 바라보는 외국인을 그대로 대변해주기 때문에

비단 초보자가 아닌 전문 투자자라도 외인의 시각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번 참고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특히 주주자본주의가 성립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비로소 이 나라가 재평가 받으면서 유무형 양방면으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저자의 주장은 

비단 금융권 종사자, 주식 투자자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반인이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일 겁니다.

100 정도의 내재가치를 지닌 A라는 회사가 상기 이유 때문에 50으로밖에 평가받지 못한다면

지배구조 문제가 개선될 경우 회사 자체는 그대로여도 진정한 시장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고,

빚을 늘려 대단위 토목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무형적·정성적 문제의 해결을 통해 

가시적인 실제 시장가치가 2배로 증가할 수 있는 막대한 국부창출이 가능해집니다.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신뢰'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그 시작은 현재 지구촌을 이끌어가고 있는 시스템의 근간인 자본시장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국내 금융업이 세계에서 선전하고 있는 제조업처럼 발전하려면

관치금융-노조문제 해소, 성과보상 체제 개편, 기업문화 개선, 리서치 역량 강화, 갑을관계 타파 등이 필요한 동시에,

자본주의 시장모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용'이 반드시 수반되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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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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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경제경영서적 중 화두는 단연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겠으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일을 꼬집어낸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스> 또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일종의 이론서, 하나는 현실 사례집으로 볼 수 있고

<플래시 보이스>는 최전선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속살을 파헤치고 있지요.

 

마이클 루이스는 이미 <머니볼>, <부메랑>, <빅 숏>, <라이어스 포커> 등으로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져있는 작가고 월가와 금융시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서 

'진짜' 내용을 쓸 수 있는 경력과 더불어 흡입력있는 필체가 일품입니다. 

특히 이번 책은 '금융가의 탐욕'이라는, 

이제는 식상하거나 새삼스러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존작들과 전혀 다른 초단타매매, 프로그램매매의 세계를 집중 조명하면서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재미를 제공합니다.

 

< 마이클 루이스의 장점 >

 - 현업을 아는 저자라 내용을 제대로 쓴다

 - 글도 맛깔나게 쓴다

 -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눠쓰기'나 '내용 재탕'을 안한다

 

 

연방국이기도 하고 국토면적이 큰 미국은 

증권거래소가 여럿이고 민간 거래소도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른 특징인데

다수의 거래소가 존재하다보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같은 종목에 대한 찰나의 가격 괴리를 이용하여

최단 시간에 주문을 넣어 차익거래를 얻는게 바로 초단타매매 기법의 핵심입니다.

 

어떻게든 거래소에 주문이 닿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래소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거나 비밀리에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사내 접근권한을 얻기 위해 보안검색을 무려 5회 거쳐야 하는 등 

마이크로세컨즈, '수백만 분의 1초'를 악용한 선행매매를 보면

규제는 절대 시장을 앞서나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거래소가 여럿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일단 한국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일반인, 심지어 기관투자자들이 보는 호가창 조차 '허상'일 수 있다는 게 참 기가막힌데

하루에 5만 5천번의 가격 괴리가 발생한다니

결국 일반인들은 자신의 거래행동이 프로그램 초단타매매를 하는 극소수에게 

수없는 차익거래의 기회만 제공해줄 뿐

등 뒤에 거대한 마에스트로가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음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눈 뜨고 코베인' 셈이며

참고로 투자자를 차별하는 '전용선' 문제는, 국내에서도 이미 수면 위로 불거진 문제입니다.

 

어떤 초단타매매 회사는 5년 반 동안 거래하는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은 날이 단 하루에 불과할 정도였고

그조차도 인간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의 당일 정산,

아니 1초 매수-매도 정산이라는 기가막힌 거래는

본인들이 아닌 나머지 모두를 바보로 전락시켜버리는 놀라운 일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행 증권거래세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 하고,

독점사업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한국 내 증권거래소가 하나뿐인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속도만 빠르면 승률 100%인 방식이므로 

극비리에 전용 광케이블까지 실제 매설할 정도인 속내용을 읽다보면

허수주문을 넣는다거나 

선취매 후 까페 또는 채팅방에 종목을 올려서 소위 '토스'하는 행위,

거래회사를 통해 주요 매수/매도 주체가 누군지 정보를 비대칭적으로 알아보는 정도는 

감히 비교대상의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

 

찰나의 시간차로 예상과 다르게 거래가 체결될 수 있는 

시장가 주문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지정가 주문, 혹은 예약 주문을 하더라도 

이 정보가 누군가에게 입수되어 있다면 변용될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게 됩니다.  

 - 다크풀, 거래소?

현재 거래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도 

사실 일반인들에겐 그리 달가운 거래방식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한국이 파생에 휘둘리는 대표적이고도 전형적인 파생 웩더독 시장 중 하나라는 건 시장참여자라면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지요.

 

첩보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이 책에서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정당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이들이 만든 거래소 IEX가 

근본적으로 유지되고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한 거래량을 제공해준 주체가 골드만삭스라는 점.

 

그러나 골드만삭스가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보긴 힘들어보입니다. 

초단타매매는 결국 부띠끄처럼 규모가 작아 잽싸게 움직일 수 있고 

단 1나노세컨즈라도 주문을 빨리 전송할 수 있는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골드만 같은 로비력이 강한 공룡급 회사가 이점을 챙길 수 있는 방식이 아니어서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므로 이를 제어하기 위해 IEX를 도운 거라고 봐야겠지요.

IEX의 탄생과정은 나름 감동적이며 탐욕으로 가득찬 금융시장의 자정능력에 한 줄기 희망이었지만 현실의 면면을 봤을 때 '권선징악'은, 마법을 쓰고 장풍을 쏘는 것보다 막강하고 영원할 판타지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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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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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쓴 <제2의 기계시대>는

1부 : 새로운 기계의 능력 

 - 기술이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만물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현상

2부 : 기술의 진보와 불평등

 - GDP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기술발전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 등의 문제점

3부 : 생존을 위한 전략

 - 이렇게 변모해 나가는 조류 속에서, 인간은 미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기계와 동반하면서 인간이 지속 번영할 수 있기 위한 제언이라는

무난한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매우 말끔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진보와 삶의 변화를 '1기'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파급효과에 따른 변혁을 '2기'로 보는 관점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진보하고 있는 기술력 및 네트워크-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진단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고찰합니다.

 

고대 우화에서 신기묘묘한 미스테리로 인식된 자동문은 현대인들에겐 일상의 도구가 되었고

구글에서는 바야흐로 무인 자동차를 본격 시현해내고 있습니다.

20세기말 체스 명인을 격파한 딥블루를 시초로 

이제는 유명 퀴즈쇼 '제퍼디'에서도 로봇이 인간의 뇌를 능가하고 있음을 재차 입증했지요.

인공지능은 이제 진단의, 의과학의 영역에도 본격 침투하는 중이고

각종 지표들을 주입시키자 인공지능이 작성한 경제 기사가 경제지에 멀쩡히 실릴 수 있을 정도로

SF에서나 등장했던 일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스티븐 핑커는 정량적 분석능력에 있어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능가하므로 

향후 경제·주식분석가들은 점차 사라질 수 있고

오히려 정원사, 요리사 등이 롱런하는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는데

구글자산운용사가 출범하는 날, 이 또한 부분적으로 현실화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요리를 배워야 하나...^^)

 

로봇, 인공지능이 계산·암기 같은 차원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반면

SF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상상되어온 것처럼 

로봇이 인간처럼 지각하고 감각하며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등 

'비정형성'에 대응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크다는 건 

사람처럼 걷고 달리는 로봇을 구현하는 것조차 여전히 어렵다는 데에서 입증됩니다.

0 아니면 1 이라는 정형화된 법칙에 의거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이는 아직까지 '난수'의 적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입니다.


추가로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디지털 네트워크가 일상화되면서 

21세기는 '비용 제로'의 시대가 되고 있어서 

이 또한 어떤 면에서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클리셰의 극치에 가깝더라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네트워크 파급력의 사례에서 배제하기 어렵듯



그런데 이것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음은,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급격한 변화는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적응 여부에 따라 격차를 벌리는 원인이 되어왔으니까요.

리카도나 마르크스는 기술 발전으로 근로자들의 상대적 임금격차 계속 악화되어 

생존임금 수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고 

실제 21세기초 미국 경제성장의 과실의 2/3 가량은 상위 1%가 가져갔습니다. 

전체적인 부가 증가하더라도 그 수혜가 일부에만 집중된다면 

이를 공유하지 못하는 다수의 불만은 누적되기 마련입니다.


교육 부문을 보면 온라인 강의, 소위 '동강'의 등장으로 

지리적 경계가 사라져 소위 스타강사들이 출현하였으나

수많은 오프라인 학원들의 경영 및 강사들의 처우 악화라는 이면이 있습니다. (저출산 영향 별도)

음악계에서도 카라얀의 지휘,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 호로비츠의 연주 등이 디지털화되다보니

신진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접근성의 향상은 심지어 장기 불황 중인 출판업이나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여

해리포터-죠앤 롤링이 대표적인 수혜자로 급부상하였으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음을, 저자들은 2장에서 잘 짚고 있습니다.


추가로 GDP가 안늘어도 상관없다라는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무식한 소리라고 펄쩍 뛰겠지만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GDP 성장이라는 맹목적인 목표에 내재된 문제점은 

저 또한 상당히 공감하는 측면입니다.

진정 가치있는 척도인지, 기술 진보에 의해 얻은 '잉여의 시간', 

창의적인 무언가에 종사할 수 있는 여유, 행복도 등  

무형자산에 대한 가치평가 또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로봇은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는데

'항공기는 날개를 퍼덕이지 않는다'라는 흥미로운 문장처럼 

마지막 장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가능성 모색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제1의 기계시대가 화학 결합에 갇힌 에너지를 해방시켜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제2의 기계시대는 진정으로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힘을 해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323p, 결론 중


인공지능로봇이 제퍼디에 출연해서 우승을 할 순 있겠지만 

제퍼디에 출연할 생각을 하지는 못하듯,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 

인간이 기계를 잘 활용하는 방식의 효율성이 더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마 특별한 이견이 나오진 않을 것 같네요. 

저자들은 이를 토대로 21세기 제2의 변혁기를 맞아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합니다. 


어차피 21세기 내 완벽한 안드로이드가 탄생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간의 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인공지능에 아웃소싱하고

기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 

이 맥락을 후손들에게 이해시키는 교육과정은 필수일 것입니다.

(이외에도 역소득세 도입이나 규제 완화, 경제적 지대 부과 등을 말하는 데 여기서는 독자들의 의견이 갈릴 듯 합니다.)


지금껏 여러 SF 영화-애니메이션-만화 등은 

시청자-독자들의 흥미를 돋워야 하기 때문에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이길 바라는 입장에서 

기계와의 공존은 인간이 여가 및 오락생활, 창의적인 활동 등에 종사하면서 

행복을 느낄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 큰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결핍'이 만연했던 반 세기 전보다, 

'공급과잉과 잉여'에 시달리더라도 작금의 상황이 낫다는 데에는 거의 누구나 공감할 테니까요.

이처럼 <제2의 기계시대>는 인공지능의 강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네트워크 확대라는 

21세기의 조류에 대해 흥미롭고도 깔끔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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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네 소사 1
정용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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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존재를 알게된 건 최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으면서 

19~20권 즈음의 작가 후기에 이 책이 잠깐 언급된 내용이 있어서였습니다.

 

<정가네 소사>는 할아버지 대부터 삼대에 걸친 작가 본인의 가정사를 그리고 있는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골드러시가 만연했던 시절 금 채굴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몰락한 외할아버지,

무면허 의사였던 아버지,

그토록 원했던 사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형,

못난 지아비들 때문에 억척지게 일해야했던 삼대의 여인들 등

집안사를 정말 날것처럼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습니다. 

공개석에서 드러내기 쉽지 않을법한 본인의 첫사랑 이야기까지 그대로 담겨있기도 하지요.

 

윤태호의 웹툰 <인천상륙작전>은 일반 가정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선이 매우 굵은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정용연의 <정가네 소사>는 정말 제목 그대로 '소사', 

작가 본인의 집안사를 잔잔하게 돌이키면서 남기는 회고록 같은 성격입니다.

 

세은(세계은행)에서 빚내 잠실을 만들고 누에를 키우다 

일본 중국 간 수교로 인해 정부 수매량이 줄어들면서 

원래부터 그리 넉넉지 못했던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기도 하고

서울로 이주하면서 다른 집에 보냈던 개 거뭉이가 줄을 끊고 다시 돌아왔던 서글픈 추억이나

역설적으로 할애비가 어떻게든 자식들 먹여살려보겠다고 파놓은 금 방죽 흙구덩이에 

손자가 빠져죽는 역설까지, 작가는 담담하게 회고합니다.

 

집안사를 다룬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림이나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작가의 애정이 담뿍 담겨있는 작품이라

완성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3권 마지막 후기를 보면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지 7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니

그 기간 전부를 이 작품을 그리는데 매진한 건 아니더라도 

얼마나 공들여 그렸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 돈이 되지 않는 그림 등등... 돈이 되지 않는 건 무용(無用)하듯

 - 1권 p27 중

이 책은 소위 '잘팔리는', 혹은 잘팔릴만한 책이 전혀 아니고 

'12.7월 출간되어 2년이 넘게 지난 지금 제가 받아든 책은 역시나 '1쇄'입니다. -_-...

현대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처럼 선이 굵지도 않고 

화려한 수사나 미학이 없는데다 

소설, 만화, 작화 등에 어느 정도 동원되기 마련인 '화장'조차 전연 없는 탓이겠지요.

심지어 검색만 하면 무한히 쏟아져나오는 리뷰조차 몇 없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더라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하지만 절대 가볍지도 않게

힘을 빼고 연기하는 절정의 연기자처럼 조용조용 무덤덤하게 나열된 수사는 

순수미학, 그 자체로

구한말, 일제, 냉전 및 이념, 새마을운동, 군부정권, 민주정권 등을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사를

이런 식으로 힘 빼고 어루만져주는 작품도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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