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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인적성 검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1) 12 14 16 이라는 법칙이 있다고 했을 때
2) 3 5 7 이나
3) 10 11 12 가 과연 위 법칙에 부합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문장에서 주어진 가정을 '2씩 증가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에게 2번은 정답이고 3번은 오답입니다.
하지만 첫 가정을 '숫자가 증가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2번과 3번 모두 정답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짝수의 순차적 나열'로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2번과 3번 모두 오답입니다.
상기 사례처럼 세상은 답이 딱딱 떨어지게 돌아가지 않으며 명확하게 정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들로 가득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정답'을 내기 어려운 분야는 의외로 도덕윤리겠지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대단히 논쟁적인 사례들을 대거 제시하면서 공리주의나 평등/자유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차를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도덕윤리학을 다루다보니 수없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맛볼거리로 제공하고도
마지막에는 다소 모호한 형태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공동선...?)
다 읽고나면 상당히 흥미롭고 논쟁적이었던 것 같지만 무언가 허전한 공백이 느껴지죠.
<바른 마음>은 진화론에 기반하여 도덕윤리학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대단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철학·도덕윤리학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인문학적 현상들은
그간 주로 문화적 차이, 역사적 맥락, 환경적 영향 같은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는데
진화론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환경·역사보다도 더 원초적 차원인 인간 자체, 생물학에 토대를 둔다는 점일 겁니다.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TED 강의에서 '진보, 보수의 도덕적 뿌리'라는 짧은 강의를 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그의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바른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 전략적이며,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 플라톤 같은 이성 지상주의와 상반된 견해를 다양한 과학적 심리학적 사례, 특히 진화론에 기반하여 주장
[2부] 바른 마음에는 다양한 힘이 있고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나 공평성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 지금껏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잣대는 대부분 피해나 공평성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생물학·심리학에 기반하여 도덕성 판단의 잣대를 보다 다양화
[3부]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만든다.
- 인간을 호모 듀플렉스 '90%의 침팬지 + 10%의 벌'이라 지칭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2~3부에 몰려있고
1부는 저자의 생각을 펼치기 위한 전제와 입증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부부터 펼쳐지는 도덕성 기반에 대한 6가지 분류는 아주 재미있고 설득력 높습니다.
저자는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자유/압제 라는
도덕성 기반에 대한 6가지 대분류를 제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대개 피해를 끼쳤는지나 공리-공평성에 상당히 집중해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봤을 때 군집하는 것이 장기 생존을 위해 유리한 등
'이기적인 유전자'에 되려 조직에 소속되어 충성하거나 조직을 유지하는 권위에 대해 인정하려드는
근원적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참신하고도 인상적입니다.
추가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2부 8장)>에 대해 분석하는 내용은
이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여러 해석 중 설득력이 가장 높습니다.
우리도 늘 신기하게 여겨온 이 현상에 대한 해석은 그간 주로 어린시절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거나,
혹은 '세뇌'당했다거나, 심지어 가난한 이들이 '무식'하다는 등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저자는 진보 진영이 도덕성에 대한 다양한 '미각' 중 배려/피해나 공평성에만 기반하여 이들을 설득하려 했을 뿐
국가나 조직에 대한 소속본능·충성이나 권위 같은 나머지 '미각'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대분류는 바로 몇몇 기타 원칙들과 일견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자유/압제로
자유/압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 차이가 정치적으로는 소위 좌파·진보, 우파·보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추가로 공평성 원칙에 대해 우파/좌파는 해석이 전혀 다른데
우파의 공평성 원칙은 '일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 것을 줄 이유는 없다'에 가깝고
좌파의 공평성 원칙은 '가진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을 편취하기 때문에 이를 나눠야 한다'입니다.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알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모여 사는 조직생활을 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난제입니다.
3부는 주로 인간의 집단지향성, '군집 스위치'에 대한 내용이고
유럽에서 왕정이 종료되고 시민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안되어 파시즘이 생기면서 '자유로부터 도피'한 역사적 사실,
원시부족들이 벌이는 집단축제나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이 열광한 모습 등 다양한 현상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집단지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나름 설득력있다고 보입니다.
상기와 같은 측면에서 저자는 종교라는 군집단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합니다.
결국 각자의 도덕적 판단은 생물학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결정되며
각자가 지니게 되는 '코끼리'와 같은 나름의 직관적 도덕률이 생기면서 이 사회는 늘상 갈등을 빚게 됩니다.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자유/압제에 대한 선호도가 각자 다를 뿐더러
심지어 공평성 등 일부 대원칙에 대한 판단 기준부터가 각기 다를 정도니
결국 타인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모르게 됩니다.
조너선 하이트가 대표적인 클리셰이자 캐치프레이즈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두 첫 문장에서 언급한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기존까지의 도덕적 잣대에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해 이해하려는 기반이 추가된다면
최소한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바른 마음>이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호응을 얻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