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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14년 경제경영서적 중 화두는 단연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겠으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일을 꼬집어낸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스> 또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일종의 이론서, 하나는 현실 사례집으로 볼 수 있고
<플래시 보이스>는 최전선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속살을 파헤치고 있지요.
마이클 루이스는 이미 <머니볼>, <부메랑>, <빅 숏>, <라이어스 포커> 등으로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져있는 작가고 월가와 금융시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서
'진짜' 내용을 쓸 수 있는 경력과 더불어 흡입력있는 필체가 일품입니다.
특히 이번 책은 '금융가의 탐욕'이라는,
이제는 식상하거나 새삼스러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존작들과 전혀 다른 초단타매매, 프로그램매매의 세계를 집중 조명하면서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재미를 제공합니다.
< 마이클 루이스의 장점 >
- 현업을 아는 저자라 내용을 제대로 쓴다
- 글도 맛깔나게 쓴다
-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눠쓰기'나 '내용 재탕'을 안한다
연방국이기도 하고 국토면적이 큰 미국은
증권거래소가 여럿이고 민간 거래소도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른 특징인데
다수의 거래소가 존재하다보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같은 종목에 대한 찰나의 가격 괴리를 이용하여
최단 시간에 주문을 넣어 차익거래를 얻는게 바로 초단타매매 기법의 핵심입니다.
어떻게든 거래소에 주문이 닿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래소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거나 비밀리에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사내 접근권한을 얻기 위해 보안검색을 무려 5회 거쳐야 하는 등
마이크로세컨즈, '수백만 분의 1초'를 악용한 선행매매를 보면
규제는 절대 시장을 앞서나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거래소가 여럿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일단 한국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일반인, 심지어 기관투자자들이 보는 호가창 조차 '허상'일 수 있다는 게 참 기가막힌데
하루에 5만 5천번의 가격 괴리가 발생한다니
결국 일반인들은 자신의 거래행동이 프로그램 초단타매매를 하는 극소수에게
수없는 차익거래의 기회만 제공해줄 뿐
등 뒤에 거대한 마에스트로가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음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눈 뜨고 코베인' 셈이며
참고로 투자자를 차별하는 '전용선' 문제는, 국내에서도 이미 수면 위로 불거진 문제입니다.
어떤 초단타매매 회사는 5년 반 동안 거래하는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은 날이 단 하루에 불과할 정도였고
그조차도 인간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의 당일 정산,
아니 1초 매수-매도 정산이라는 기가막힌 거래는
본인들이 아닌 나머지 모두를 바보로 전락시켜버리는 놀라운 일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행 증권거래세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 하고,
독점사업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한국 내 증권거래소가 하나뿐인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속도만 빠르면 승률 100%인 방식이므로
극비리에 전용 광케이블까지 실제 매설할 정도인 속내용을 읽다보면
허수주문을 넣는다거나
선취매 후 까페 또는 채팅방에 종목을 올려서 소위 '토스'하는 행위,
거래회사를 통해 주요 매수/매도 주체가 누군지 정보를 비대칭적으로 알아보는 정도는
감히 비교대상의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
찰나의 시간차로 예상과 다르게 거래가 체결될 수 있는
시장가 주문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지정가 주문, 혹은 예약 주문을 하더라도
이 정보가 누군가에게 입수되어 있다면 변용될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게 됩니다.
- 다크풀, 거래소?
현재 거래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도
사실 일반인들에겐 그리 달가운 거래방식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한국이 파생에 휘둘리는 대표적이고도 전형적인 파생 웩더독 시장 중 하나라는 건 시장참여자라면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지요.
첩보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이 책에서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정당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이들이 만든 거래소 IEX가
근본적으로 유지되고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한 거래량을 제공해준 주체가 골드만삭스라는 점.
그러나 골드만삭스가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보긴 힘들어보입니다.
초단타매매는 결국 부띠끄처럼 규모가 작아 잽싸게 움직일 수 있고
단 1나노세컨즈라도 주문을 빨리 전송할 수 있는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골드만 같은 로비력이 강한 공룡급 회사가 이점을 챙길 수 있는 방식이 아니어서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므로 이를 제어하기 위해 IEX를 도운 거라고 봐야겠지요.
IEX의 탄생과정은 나름 감동적이며 탐욕으로 가득찬 금융시장의 자정능력에 한 줄기 희망이었지만 현실의 면면을 봤을 때 '권선징악'은, 마법을 쓰고 장풍을 쏘는 것보다 막강하고 영원할 판타지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