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곡 소오강호 세트 - 전8권 (특별한정 보급판)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뜬금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 무협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소위 통속소설로 분류되어 세간에서 굉장히 낮게 평가되곤 합니다.

 -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국내 신무협도 간간이 있었습니다.

김용으로 한정지어 보면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엿보이는 과도한 중화사상이나 명확한 선악 구분 같은 한계,

여기에 시간에 쫓기면서 명보에 연재했던 작품들이라 과연 그가 쓴 게 맞느냐는 논란 등 다양한 지적이 제기되어왔죠.


하지만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고작 무협(?)에 불과한 그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되며 북경대에서는 국제연구토론회가 열리고

알리바바의 마윈이 IT업계의 대가들과 김용을 모셔 <화산논검>을 개최하며

정식 역사가 아닌데도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무한 재생산된다는 것만으로도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긴 어렵습니다.

고아하신 평단에서만 높게 평가받고 실제 독자는 거의 없는 글을 쓰기보단 

김용처럼 대대로 회자되는 작품을 한 번이라도 내보는 게 대다수 작가들의 소원일 겁니다.



무협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알고계셨을텐데

중원문화사에서 올해 5월 김용의 주요 작품(녹정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연성결/설산비호/벽혈검)을 재발간하면서 

20년전 가격 특별 한정판이라며 나름 큰 폭의 할인 예약주문을 받았습니다. 

작품전집을 이미 모아둔 애호가들과 달리 전 지금껏 영웅문 3부작밖에 없었던터라 

가격도 저렴한 이번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대부분 구입해서 이번 여름을 무협과 본격 함께하는 중입니다ㅎ


그러나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번역과 오타문제.

번역은 그렇다쳐도 재발매본이 몇 년 주기로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오타가 계속 보인다는건 솔직히 성의 부족입니다.

다양한 번역본이 있는 김용의 영웅문 3부작 또한 고려원 등 예전 버전 호응도가 가장 높듯

저처럼 소장본이 없던 사람이 아닌 바에야 옛날 서적포판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이네요.

이번에 소오강호를 다 읽고 곧 천룡팔부를 보게 될텐데 내용도 좀 변경됐다는 말이 있어 조금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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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의 영호충은 개성이 뚜렷한 김용 작품 속 주인공들 중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캐릭터고

규화보전과 벽사검법의 독특함이 녹아든 동방불패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독특한 소재였기에 중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한 임청하의 <동방불패>로 우리 기억엔 더 잘 남아있죠 ^^


김용의 주인공들은 우유부단하거나(곽정, 장무기) 아니면 너무 독단적이거나(양과) 등등 

각자 뚜렷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공통적으로 대영웅 혹은 대협사의 풍모를 풍깁니다. 

그런데 그의 후기작이면서 장편소설인 소오강호나 녹정기의 주인공들은 정의로운 영웅협객의 이미지보단

세상을 자유롭게 노니는 도가적 가치관을 지닌다는 큰 차이점을 보입니다.

실생활에선 정치적인 행보를 많이 보인 김용이 작품에선 이런 흐름을 보인다는게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지는데

그의 본심을 누가 알겠냐마는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혼탁했던 당시 중국 사회상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소설에 또 다른 자신의 희구를 투영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요.


드라마처럼 명교를 집어삼키는 의천도룡기 후반부의 주원장이나

5대 문파 통합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좌랭선 등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악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음흉함에 있어 가장 으뜸인 인물은 전집을 통틀어 아마 '군자검 악불군'일 것 같습니다.

사파인 일월교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정파의 인물들을 보다보면 

과연 정사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되죠.


어떤 인물을 명확한 악으로 지목했다는 점이 한계다 싶으면서도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악'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종종 뒤통수도 맞는 게 인생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더라도 가족으로 만났을 때, 친구/동료로 만났을 때, 선배/상사로 만났을 때, 후배/부하로 만났을 때, 

파트너로 만났을 때, 경쟁상대로 만났을 때 평가는 각기 다르기 마련입니다.

유명한 모 투자은행에서 브로커 신규 채용 시 각지고 샤프한 외모보다는 순박한 농부 같은 외모를 선호한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문득 떠오르는데 '큰 도적'일수록 자신을 군자검처럼 잘 감출 수 있어야겠죠ㅎ

중년이 되면 얼굴을 속이기 어렵다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자한 포커페이스'들은 정말 무서운 존재입니다. 

군자와 위군자는 한 끗 차이랄까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오강호>의 주제는 

초반부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신교의 장로 곡양 간의 정서적 교류에 가장 잘 담겨있습니다.

바로 '천추만재 일통강호' 따위에 관심 없고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

강호를 꼭 제패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나

남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채찍질만 가하는 프레임을 가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지기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에 강호를 회상하며 크게 한 번 웃고 떠나는 

고즈넉한 '은자'의 삶 또한 충분히 즐겁지 아니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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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사
리처드 실라.시드니 호머 지음, 이은주 옮김, 홍춘욱 감수 / 리딩리더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출구전략 단행 후 거대한 자본유출이 일어날지 여부는 예단할 수 없고 꾸준히 지켜볼 사안으로

장차 채권시장의 거대한 변곡점이 올 수도 있는 시점을 맞아 

금융의 고전에 해당하는 <금리의 역사>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해당 분야의 책을 처음 접하는 단계가 아닌 한 통독·발췌독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이 책 또한 거의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압박이 있어서

동서고금의 금리 데이터 나열 관련 분량이 많은 책의 특성 상 관심있는 부분 위주로 찾아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일단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그리스·로마, 중세에서 현대 주요국에 이르기까지,

이 자료들을 어떻게 다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금리 시계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요즘은 AAA AA A B 처럼 채권등급을 세분화하여 시간차가 있거나 국가가 다르더라도 비교가 가능하죠.

반면 얼마 전까지는 이러한 정량적 구분이 없었을 뿐더러 각국의 특수성 또한 가지각색이므로

제시된 예전 자료들의 1대1 비교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될 겁니다.

 - 이 한계가 본서의 가치를 0.1%도 손상시키진 않습니다.


금융의 역사를 다룬 주요 책에 늘 빠지지 않는 내용은

금/은 함량 감소 같은 화폐순도 저하로 해당 통화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경우

로마를 비롯하여 해당 사회는 결국 무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죠.

신대륙이나 식민지로부터 은과 금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자국 경제가 황폐화된 스페인도 있고.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신뢰에 기반한 신용거래의 장점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으로,

비록 '월가의 탐욕'으로 대표되는 탐욕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시대정신> 같은 내용에 일견 공감가기도 하나

그 장점을 버릴 순 없습니다.



각종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구축된 DB를 토대로 최대한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현대에도

중앙은행들이 여전히 '샤워실의 바보들'처럼 갈팡질팡 헤매는 모습을 늘상 보는데

전산 시스템도 없고 자료 확보가 어려워 통계의 정확도가 매우 낮았던 예전에는 통화정책이 더 어려웠을 겁니다. 


가령 농부들의 생산성 대비 적용 금리가 지나치게 높았다면?   - 샤일록 -

금리가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 못한다면 종국에는 부채 탕감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경우 프리라이더가 생기게 되므로 애초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운영해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가 있죠.

몇 년 전 다룬 <부채, 그 첫 5000년>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가?'라는 무시무시한 의문이 생길법한 상황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은근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부채탕감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지만...


고대부터 중세, 근대 유럽, 20세기 유럽·북미, 현대에 이르는 책의 내용을 읽으면

러시아나 중국이 왜 그리 은행거래, 신용거래를 불신하고 현금을 쟁여두는 걸 선호하는지

네덜란드를 필두로 한 유럽의 자본시장 발달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미국에까지 이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각국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을 역사적 맥락을 통해 되짚어볼 수 있어서 좋네요.


그리고 미국의 금리 시계열 추이을 보면 시장금리를 정책금리에 나름 잘 연동시켜왔다는 게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지금의 옐런도 출구전략 단행 전 자산시장에 살짝살짝 충격을 가하면서

말 한 마디로 전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센스를 선보이듯.

반면 신용시스템, 즉 자본시장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은 대부분 세계무대에서 부상하지 못하거나 

잠깐 패권을 쥐더라도 금새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사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에는 고금리가 용인되다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점차 하향 안정화되고

자본비용의 감소를 토대로 사회가 유지되면서 다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기조가 

살기 좋은 나라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금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소위 서구권이 지구촌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원인를 해석하는 데 있어 

총균쇠와 같은 생태적 인류학적 분석도 대단히 의미있는 동시에 

'적절한 금리 조율'을 통한 자본시장과 사회 안정이라는 요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연구서적에 가까워 다소 학술적이지만 각국 금리DB에 대한 내용은 가볍게 통독하면서 

현재 우리에게 이 책이 지니는 의의 위주로 음미한다면 아주 효과적인 독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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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한국사 -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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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던 손이 하루 몸을 의탁하여 한 끼 얻어먹고 초연히 길을 떠난다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낭만 식객이 아닌,

대가를 치르고 먹기 위해 찾아가는 음식점 개념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확산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풍부해진 식량과 이동수단의 발달, 그리고 특히 가공·보전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탓이겠지요.

반찬보다는 엄청난 양의 밥을 주로 먹었던 조선시대와 달리 (밥 >>>>>>> 반찬)

이제는 기술문명을 토대로 미각 또한 다변화되어 인류는 본격 '호모 푸디안~'으로 재탄생하는 중입니다ㅎ


<식탁 위의 한국사>는 대표적인 음식들을 나열 형태로 기술하고 있어서 분량이 다소 두꺼운 감은 있되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들에 대한 깨알같은 에피소드 및 디테일들이 즐거운 안주거리인 책입니다.

휴게소 따로국밥의 유래, 고추장 없는 비빔밥, 계삼탕(삼계탕)의 대중화 과정, 김치의 변천사,

어회와 사시미의 비교, 한중일 3국의 식문화가 혼합되어 탄생한 당면잡채,

조선간장에서 달착지근한 양조간장으로의 중심이동, 갈비구이의 시작, 사라져가는 약주 등등...



본문은 총 5부, 외래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한 1부 개항기를 시작으로 2부의 다양한 국밥~, 

신선로 구절판 편육 등 음식 외 음식점이라는 공간 그 자체도 같이 다룬 3부 '조선요리옥', 

술 빈대떡 순대 등 풍성한 음주와 안주거리를 다룬 4부 '대폿집',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식품공업의 발달 및 프랜차이즈를 다룬 5부 '음식의 혼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시작이 삼국/고려/조선시대가 아닌 개항기부터라는 것.

이 구성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한식'이 

반드시 수 백 년 전통과 유구한 역사를 타고 쭉 유지되어온 게 아님을 유추해볼 수 있죠.

이는 한국에 국한되는 현상이 절대 아닙니다. 냉동·냉장 기술의 발달 등에 힘입은 덕이므로


현대 한식이 

 1) 개화 이후 식민지 시절 일본의 영향 

 2) 해방 이후 서구의 영향(+기술 발전)을 엄청나게 받아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는 쌀농사 위주였기 때문에 면 문화는 미국의 밀가루 원조시점부터 급격히 발달했고

거의 모두가 의심없이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김밥조차 실제론 일식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탄생했을 정돈데

전반적으로 우리는 한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3년 전 캄보디아에 갔을 때 보석광산이나 앙코르와트 같은 것만 큼직하게 그려진 지도를 볼 수 있었고

가이드 분 말씀으로는 내세울 게 하도없다보니 지도를 일부러 이렇게 그렸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본인이 창의적이라고 하지 않고 빌 게이츠가 자신이 부유하다고 할 필요가 없듯

'두 유 노우 캥남스타일?' '두 유 노우 김치?'는 솔직히 없어보이고,

하다못해 영화 <버드맨>의 별 거 아닌 대사 한 마디에 분노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이런 민족주의는 다른 이들에게 부담감만 심어줄 수 있어 진정 한식의 세계화를 원한다면 오히려 경계해야 할 요소고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자존심도 좋지만 기무치 같은 것에 흥분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음식으로 명성있는 나라들은 신선한 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 환경 못지 않게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는 결절지역에 있거나 역사적으로 다른 곳과 접촉이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위 '몇 백 년 전통'이나 단일민족 개념 같은, 오직 우리만의 '단일음식'이라는 개념이 그리 중요할까요?

피자가 한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하듯 외국의 음식을 받아들여 우리 입맛에 맞게 잘 각색해내면 그만입니다.



저자의 생각은 각 장의 후반~마지막 한 두 문장에 함축적으로 표출되는 편인데

본래의 맛을 잃은 추어탕이나 사카린 깍두기와 함께 나오는 허여멀건한 설렁탕 등

음식별 원맛을 잃어가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은 각 장마다 살짝살짝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적으로 조성된 하천가 경치를 자연이라 생각하고 양식 민물고기를 먹으며 

자연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추세에 대한 의문(쏘가리매운탕 부분) 등도 어느 정도 공감가는 부분.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현재, 

해방 이후 공장제 프랜차이즈가 확산되면서 음식맛이 획일화되어가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잠깐 언급됩니다.

한때는 '위생'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추구하는만큼, 

수요가 생기고 있으니 그에 따른 공급이 조금씩 피어나겠지요.

홍대를 넘어 상수역이나 광흥창 쪽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 

자기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은 까페들이 하나씩 잔잔하게 생기고 있듯

늘 비슷한 맛에 지겨움을 느낀 사람들은 패션이 유행하듯 트렌디한 음식을 찾아다니기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있을 뿐이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공감하며,

식도락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대대적으로 형성 중인 요즘 풍성한 해외 음식들도 골고루 접하고 싶다면

작년 KBS에서 방영한 <글로벌 대기획, 요리인류 8부작> 다큐도 즐겁고 맛있는 볼거리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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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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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심리학 등과 활발하게 연계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은 확실히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비합리적 가정을 토대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을 꾸준히 잘 만들어내고 있지요.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자체가 문제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강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여유가 없는 인간에게 어떤 현상·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음식섭취량을 크게 줄여버리는 실험 후 

참가자들이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는 현상이나

음식이나 요리 관련 내용에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단어들 중 유독 '케이크' 같은 단어는 인지해내는 등의 흥미로운 실험결과들은

사람들이 한 번 '결핍의 늪'에 빠지면 부족함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심지어 인지능력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터널'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입증합니다.


불안이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듯,

결핍 또한 우리의 정신을 잠식한다는 것이죠.


이미 신경쓸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결국 터널링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시야나 감각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소화할 수 있는 '대역폭'마저 좁아질 수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특히 미국같은 나라에 살 경우 가내 아픈 사람이 있으면

막대한 병원비 부담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갖기 거의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이는 워킹푸어 문제 등 경제·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신용경제라는 마차가 굴러가려면 결국 누군가 채무자가 되어야 하고

채무자 입장에서는 뒤에서 거대한 공이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는 셈인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당장 뒤에 있는 공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깔려버릴 수 있다는 걸 의식해야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근시안적 행동을 하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병원비 부조금 자동차 수리비 처럼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비용들은 

여유로운 이들에게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며, 

한 번의 판단미스 혹은 금융위기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른 손실이 

누군가에게는 단순 실수나 별 것 아닌 손해에 불과할 수 있어도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므로.


즉 적당한 결핍은 사람이 집중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결핍이 과할 경우 아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매고 위축시키는 족쇄가 됩니다.

여유가 있을 때 오히려 생산성 및 효율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건

포드가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40시간 정도로 줄였을 때 단위 생산원가가 줄어들고 생산량 제고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나

한 주에 60시간 이상의 작업이 두 달 이상 지속되면 

동일 인력이 40시간 일할때보다도 생산성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여러 실험결과에서도 드러납니다.



결핍이란 금전적인 결핍 외 시간, 육체, 정신 등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적용해볼 수 있는데

'시간'에 결핍의 개념을 적용해보면 한층 재미있습니다.

증기기관 발명 이후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한 반면, 인간의 24시간은 언제나 동일하지요.

가령 예전에는 등기부등본 하나를 떼보기 위해 등기소까지 가서 자료를 복사나 출력 등 제공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에만 거의 하루가 걸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앉은 자리, 즉석에서 출력·확인이 가능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사람은 굉장히 많은 여유시간을 가져야 정상이겠으나

실제로는 추가로 소화해야 하는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결국 일하는 시간의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게 됩니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해줬다는 건 너무나도 명확한데도 세상은 왜이렇게 각박한지,

이런 측면으로 바라보면 기술 혁신의 효용성에 아주 살짝 의문을 품어볼수도 있겠습니다. 

 - 오해가 없기 위해, 원시시대로 복귀하자는 게 아닌 단순한 상념입니다 ^^


신용경제사회에서 돈과 시간이란 묘한 관계를 지니며 이 둘을 맞바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실제로 부자들은 노동이 아닌 '시간'을 산다고도 볼 수 있는데

여유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이를 돌볼 시간,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준비할 시간 등을 잠식한다는 걸 감안하면

시간가치는 돈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끊임없이 일에 쫓기는 경우 또한 금전적으로 부족한 경우 못지않게 강력한 '터널링' 효과를 유발하게 되겠지요.



경제학자-심리학자의 협업을 통해 좋은 시너지를 일궈낸 <결핍의 경제학>에 담긴 내용은,

빈자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적 접근방법의 전환, 조직관리, 다이어트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동시에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제공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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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이론은 없다 - 거꾸로 보는 현대 물리학
마르셀로 글레이서 지음, 조현욱 옮김 / 까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 대칭 vs 비대칭 -


이 책은 어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마법이나 뱀파이어 같은 존재에 심취하다 

결국 '가장 강력한 마법'인 물리학에 입문한 저자가 오랫동안 통일이론을 신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 우주를 포괄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원리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결정론적 시각에 입각하여 집필된 <최종 이론의 꿈>이 '대칭의 미학'이라면,

이에 대한 반론의 성격으로 집필된 <최종 이론은 없다>는 '비대칭의 미학'을 다루는 책이라고 볼 수 있지요


세상을 하나의 원칙으로 설명하려는 전일성에 대한 강력한 희구를 가진 이들이 많듯

우리가 누구이고 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신학부터 최종 이론을 찾고자 하는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유서 깊습니다.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없다라는 명제는 학문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논쟁거리듯...

이 책은 '전일성'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시간, 물질, 생명의 비대칭성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존재'에 대한 비대칭성을 언급합니다.

참고로 본문 중 2~4장 내용은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난해하며

그래서 저자는 가독성 높은 1, 5장을 먼저 보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서두에 권해주기도 합니다.



- 인간의 한계 -


인간의 한계라는 측면은 세상을 아우를 수 있는 이론이 과연 존재하는가와는 별도의 문제이겠지만

생각해보면 본인이 현대과학을 다시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도 

정작 자신은 오랜기간 받아들이지 않았던 엄청난 천재가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던 것처럼

인간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가령 '위대한 설계'가 정말 있다하더라도

과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이를 제대로 이해·인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분명 상당부분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불완전성, 불확정성의 원리) 



- 미시, 거시 -


그렇다고 이 책이 과학적 탐구가 별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통일이론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뿐

만물을 움직이는 숱한 원리에 대해 연구해나가는 것의 의의는 충분하므로.


경제든 물리든 사회학이든 미시적-거시적으로 '굳이' 나눠보자면 물리학의 경우 

미시적으로는 원자, 전자, 광자를 탐구하면서 물질의 아주 미세한 부분을 찾아나가는 환원주의,

거시적으로는 최근 가장 핫한 화두가 되고 있는 복잡계를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저기 부대끼며 살다보면 거시적인 시야의 중요성을 계속 느끼게 되기 마련이고

추가로 요즘은 단편적인 정보가 넘쳐나다보니 종종 미시적 탐구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빛이 휘고 시공간이 굴절한다'라는 연구가 GPS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비롯

실생활에 활용되고 있는 상당수의 편의시설들은 미시적 탐구로부터 파생된 부산물들입니다.


이제 일반인에게도 영화 <가타카>에 나온 A, C, G, T가 익숙한 개념이 되었고 

뱀파이어처럼 영원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줄기세포 관련 광고를 늘 접할 수 있듯...

과학자들의 연구가 어떤 면에선 괴짜들의 단순 장난 정도로 비춰질 여지도 있으나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데 있어 그들의 기여도를 간과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지요.


입자물리학 등 본문의 일부가 일반인에게 꽤나 먼 내용일 순 있어도

뉴턴의 중력에서부터 빅뱅이론, 특수상대성 이론, 일반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 건 절대 아닌 셈입니다.

(책 중반부는 난이도가 높아서 1장 → 5장 → 2~4장 순으로 읽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 물리학과 소설 사이 -


이 책은 읽는내내 물리학과 소설의 오묘한 경계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 아닌가요?


영화·드라마에서의 슈퍼 영웅·재벌·일탈 판타지나 무협지·판타지에 늘상 나오는 절대무공·대마법 같이

우리가 마음 속 깊이 희구하는 환상성은 문화컨텐츠 뿐만 아니라 물리학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가령 '초끈이론'은 인간이 열망하는 또 하나의 절대마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ㅎ

문득 완벽한 유피넬적 존재인 엘프와 불완전한 헬카네스적 존재인 인간을 대비시킨 

<드래곤 라자>가 오버랩되기도 했고

물리학서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서워해서 늑대인간·뱀파이어 등을 찾아보았다는 본인의 이야기부터 

프랑켄슈타인 등 다양한 '비과학적'인 사회현상들을 언급하는 수많은 내용을 보면

이 책은 철학과 우리네 인생을 같이 담고 있는 퓨전 물리학서로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은 어떤 대원칙에 의거 대칭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살다보면 비대칭성에 의해서도 굴러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초월적 존재 혹은 대원칙에 의거 탄생했든, 

우리가 아니지만 결국 우리였던 단순 물질에서 우연히 잉태되었든 간에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와 생명의 소중함이 경시되는 건 전혀 아니며 저는 살짝 비대칭성에 기우는 입장인데, 

'운칠기삼'이라는 단어가 이를 압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주지 않나 합니다.


대칭의 미학, 그리고 비대칭의 미학

여러분은 어느 쪽에 좀 더 끌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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