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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곡 소오강호 세트 - 전8권 (특별한정 보급판)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뜬금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 무협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소위 통속소설로 분류되어 세간에서 굉장히 낮게 평가되곤 합니다.
 -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국내 신무협도 간간이 있었습니다.
김용으로 한정지어 보면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엿보이는 과도한 중화사상이나 명확한 선악 구분 같은 한계,
여기에 시간에 쫓기면서 명보에 연재했던 작품들이라 과연 그가 쓴 게 맞느냐는 논란 등 다양한 지적이 제기되어왔죠.
하지만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고작 무협(?)에 불과한 그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되며 북경대에서는 국제연구토론회가 열리고
알리바바의 마윈이 IT업계의 대가들과 김용을 모셔 <화산논검>을 개최하며
정식 역사가 아닌데도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무한 재생산된다는 것만으로도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긴 어렵습니다.
고아하신 평단에서만 높게 평가받고 실제 독자는 거의 없는 글을 쓰기보단 
김용처럼 대대로 회자되는 작품을 한 번이라도 내보는 게 대다수 작가들의 소원일 겁니다.
무협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알고계셨을텐데
중원문화사에서 올해 5월 김용의 주요 작품(녹정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연성결/설산비호/벽혈검)을 재발간하면서 
20년전 가격 특별 한정판이라며 나름 큰 폭의 할인 예약주문을 받았습니다. 
작품전집을 이미 모아둔 애호가들과 달리 전 지금껏 영웅문 3부작밖에 없었던터라 
가격도 저렴한 이번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대부분 구입해서 이번 여름을 무협과 본격 함께하는 중입니다ㅎ
그러나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번역과 오타문제.
번역은 그렇다쳐도 재발매본이 몇 년 주기로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오타가 계속 보인다는건 솔직히 성의 부족입니다.
다양한 번역본이 있는 김용의 영웅문 3부작 또한 고려원 등 예전 버전 호응도가 가장 높듯
저처럼 소장본이 없던 사람이 아닌 바에야 옛날 서적포판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이네요.
이번에 소오강호를 다 읽고 곧 천룡팔부를 보게 될텐데 내용도 좀 변경됐다는 말이 있어 조금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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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의 영호충은 개성이 뚜렷한 김용 작품 속 주인공들 중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캐릭터고
규화보전과 벽사검법의 독특함이 녹아든 동방불패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독특한 소재였기에 중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한 임청하의 <동방불패>로 우리 기억엔 더 잘 남아있죠 ^^
김용의 주인공들은 우유부단하거나(곽정, 장무기) 아니면 너무 독단적이거나(양과) 등등 
각자 뚜렷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공통적으로 대영웅 혹은 대협사의 풍모를 풍깁니다. 
그런데 그의 후기작이면서 장편소설인 소오강호나 녹정기의 주인공들은 정의로운 영웅협객의 이미지보단
세상을 자유롭게 노니는 도가적 가치관을 지닌다는 큰 차이점을 보입니다.
실생활에선 정치적인 행보를 많이 보인 김용이 작품에선 이런 흐름을 보인다는게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지는데
그의 본심을 누가 알겠냐마는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혼탁했던 당시 중국 사회상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소설에 또 다른 자신의 희구를 투영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요.
드라마처럼 명교를 집어삼키는 의천도룡기 후반부의 주원장이나
5대 문파 통합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좌랭선 등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악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음흉함에 있어 가장 으뜸인 인물은 전집을 통틀어 아마 '군자검 악불군'일 것 같습니다.
사파인 일월교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정파의 인물들을 보다보면 
과연 정사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되죠.
어떤 인물을 명확한 악으로 지목했다는 점이 한계다 싶으면서도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악'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종종 뒤통수도 맞는 게 인생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더라도 가족으로 만났을 때, 친구/동료로 만났을 때, 선배/상사로 만났을 때, 후배/부하로 만났을 때, 
파트너로 만났을 때, 경쟁상대로 만났을 때 평가는 각기 다르기 마련입니다.
유명한 모 투자은행에서 브로커 신규 채용 시 각지고 샤프한 외모보다는 순박한 농부 같은 외모를 선호한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문득 떠오르는데 '큰 도적'일수록 자신을 군자검처럼 잘 감출 수 있어야겠죠ㅎ
중년이 되면 얼굴을 속이기 어렵다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자한 포커페이스'들은 정말 무서운 존재입니다. 
군자와 위군자는 한 끗 차이랄까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오강호>의 주제는 
초반부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신교의 장로 곡양 간의 정서적 교류에 가장 잘 담겨있습니다.
바로 '천추만재 일통강호' 따위에 관심 없고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
강호를 꼭 제패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나
남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채찍질만 가하는 프레임을 가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지기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에 강호를 회상하며 크게 한 번 웃고 떠나는 
고즈넉한 '은자'의 삶 또한 충분히 즐겁지 아니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