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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한국사 -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평점 :
길 가던 손이 하루 몸을 의탁하여 한 끼 얻어먹고 초연히 길을 떠난다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낭만 식객이 아닌,
대가를 치르고 먹기 위해 찾아가는 음식점 개념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확산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풍부해진 식량과 이동수단의 발달, 그리고 특히 가공·보전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탓이겠지요.
반찬보다는 엄청난 양의 밥을 주로 먹었던 조선시대와 달리 (밥 >>>>>>> 반찬)
이제는 기술문명을 토대로 미각 또한 다변화되어 인류는 본격 '호모 푸디안~'으로 재탄생하는 중입니다ㅎ
<식탁 위의 한국사>는 대표적인 음식들을 나열 형태로 기술하고 있어서 분량이 다소 두꺼운 감은 있되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들에 대한 깨알같은 에피소드 및 디테일들이 즐거운 안주거리인 책입니다.
휴게소 따로국밥의 유래, 고추장 없는 비빔밥, 계삼탕(삼계탕)의 대중화 과정, 김치의 변천사,
어회와 사시미의 비교, 한중일 3국의 식문화가 혼합되어 탄생한 당면잡채,
조선간장에서 달착지근한 양조간장으로의 중심이동, 갈비구이의 시작, 사라져가는 약주 등등...
본문은 총 5부, 외래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한 1부 개항기를 시작으로 2부의 다양한 국밥~,
신선로 구절판 편육 등 음식 외 음식점이라는 공간 그 자체도 같이 다룬 3부 '조선요리옥',
술 빈대떡 순대 등 풍성한 음주와 안주거리를 다룬 4부 '대폿집',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식품공업의 발달 및 프랜차이즈를 다룬 5부 '음식의 혼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시작이 삼국/고려/조선시대가 아닌 개항기부터라는 것.
이 구성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한식'이
반드시 수 백 년 전통과 유구한 역사를 타고 쭉 유지되어온 게 아님을 유추해볼 수 있죠.
이는 한국에 국한되는 현상이 절대 아닙니다. 냉동·냉장 기술의 발달 등에 힘입은 덕이므로
현대 한식이
1) 개화 이후 식민지 시절 일본의 영향
2) 해방 이후 서구의 영향(+기술 발전)을 엄청나게 받아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는 쌀농사 위주였기 때문에 면 문화는 미국의 밀가루 원조시점부터 급격히 발달했고
거의 모두가 의심없이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김밥조차 실제론 일식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탄생했을 정돈데
전반적으로 우리는 한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3년 전 캄보디아에 갔을 때 보석광산이나 앙코르와트 같은 것만 큼직하게 그려진 지도를 볼 수 있었고
가이드 분 말씀으로는 내세울 게 하도없다보니 지도를 일부러 이렇게 그렸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본인이 창의적이라고 하지 않고 빌 게이츠가 자신이 부유하다고 할 필요가 없듯
'두 유 노우 캥남스타일?' '두 유 노우 김치?'는 솔직히 없어보이고,
하다못해 영화 <버드맨>의 별 거 아닌 대사 한 마디에 분노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이런 민족주의는 다른 이들에게 부담감만 심어줄 수 있어 진정 한식의 세계화를 원한다면 오히려 경계해야 할 요소고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자존심도 좋지만 기무치 같은 것에 흥분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음식으로 명성있는 나라들은 신선한 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 환경 못지 않게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는 결절지역에 있거나 역사적으로 다른 곳과 접촉이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위 '몇 백 년 전통'이나 단일민족 개념 같은, 오직 우리만의 '단일음식'이라는 개념이 그리 중요할까요?
피자가 한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하듯 외국의 음식을 받아들여 우리 입맛에 맞게 잘 각색해내면 그만입니다.
저자의 생각은 각 장의 후반~마지막 한 두 문장에 함축적으로 표출되는 편인데
본래의 맛을 잃은 추어탕이나 사카린 깍두기와 함께 나오는 허여멀건한 설렁탕 등
음식별 원맛을 잃어가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은 각 장마다 살짝살짝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적으로 조성된 하천가 경치를 자연이라 생각하고 양식 민물고기를 먹으며
자연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추세에 대한 의문(쏘가리매운탕 부분) 등도 어느 정도 공감가는 부분.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현재,
해방 이후 공장제 프랜차이즈가 확산되면서 음식맛이 획일화되어가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잠깐 언급됩니다.
한때는 '위생'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추구하는만큼,
수요가 생기고 있으니 그에 따른 공급이 조금씩 피어나겠지요.
홍대를 넘어 상수역이나 광흥창 쪽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
자기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은 까페들이 하나씩 잔잔하게 생기고 있듯
늘 비슷한 맛에 지겨움을 느낀 사람들은 패션이 유행하듯 트렌디한 음식을 찾아다니기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있을 뿐이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공감하며,
식도락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대대적으로 형성 중인 요즘 풍성한 해외 음식들도 골고루 접하고 싶다면
작년 KBS에서 방영한 <글로벌 대기획, 요리인류 8부작> 다큐도 즐겁고 맛있는 볼거리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