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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생물학·심리학 등과 활발하게 연계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은 확실히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비합리적 가정을 토대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을 꾸준히 잘 만들어내고 있지요.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자체가 문제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강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여유가 없는 인간에게 어떤 현상·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음식섭취량을 크게 줄여버리는 실험 후
참가자들이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는 현상이나
음식이나 요리 관련 내용에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단어들 중 유독 '케이크' 같은 단어는 인지해내는 등의 흥미로운 실험결과들은
사람들이 한 번 '결핍의 늪'에 빠지면 부족함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심지어 인지능력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터널'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입증합니다.
불안이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듯,
결핍 또한 우리의 정신을 잠식한다는 것이죠.
이미 신경쓸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결국 터널링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시야나 감각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소화할 수 있는 '대역폭'마저 좁아질 수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특히 미국같은 나라에 살 경우 가내 아픈 사람이 있으면
막대한 병원비 부담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갖기 거의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이는 워킹푸어 문제 등 경제·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신용경제라는 마차가 굴러가려면 결국 누군가 채무자가 되어야 하고
채무자 입장에서는 뒤에서 거대한 공이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는 셈인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당장 뒤에 있는 공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깔려버릴 수 있다는 걸 의식해야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근시안적 행동을 하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병원비 부조금 자동차 수리비 처럼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비용들은
여유로운 이들에게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며,
한 번의 판단미스 혹은 금융위기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른 손실이
누군가에게는 단순 실수나 별 것 아닌 손해에 불과할 수 있어도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므로.
즉 적당한 결핍은 사람이 집중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결핍이 과할 경우 아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매고 위축시키는 족쇄가 됩니다.
여유가 있을 때 오히려 생산성 및 효율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건
포드가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40시간 정도로 줄였을 때 단위 생산원가가 줄어들고 생산량 제고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나
한 주에 60시간 이상의 작업이 두 달 이상 지속되면
동일 인력이 40시간 일할때보다도 생산성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여러 실험결과에서도 드러납니다.
결핍이란 금전적인 결핍 외 시간, 육체, 정신 등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적용해볼 수 있는데
'시간'에 결핍의 개념을 적용해보면 한층 재미있습니다.
증기기관 발명 이후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한 반면, 인간의 24시간은 언제나 동일하지요.
가령 예전에는 등기부등본 하나를 떼보기 위해 등기소까지 가서 자료를 복사나 출력 등 제공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에만 거의 하루가 걸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앉은 자리, 즉석에서 출력·확인이 가능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사람은 굉장히 많은 여유시간을 가져야 정상이겠으나
실제로는 추가로 소화해야 하는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결국 일하는 시간의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게 됩니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해줬다는 건 너무나도 명확한데도 세상은 왜이렇게 각박한지,
이런 측면으로 바라보면 기술 혁신의 효용성에 아주 살짝 의문을 품어볼수도 있겠습니다.
- 오해가 없기 위해, 원시시대로 복귀하자는 게 아닌 단순한 상념입니다 ^^
신용경제사회에서 돈과 시간이란 묘한 관계를 지니며 이 둘을 맞바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실제로 부자들은 노동이 아닌 '시간'을 산다고도 볼 수 있는데
여유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이를 돌볼 시간,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준비할 시간 등을 잠식한다는 걸 감안하면
시간가치는 돈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끊임없이 일에 쫓기는 경우 또한 금전적으로 부족한 경우 못지않게 강력한 '터널링' 효과를 유발하게 되겠지요.
경제학자-심리학자의 협업을 통해 좋은 시너지를 일궈낸 <결핍의 경제학>에 담긴 내용은,
빈자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적 접근방법의 전환, 조직관리, 다이어트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동시에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제공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