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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묻지 않는 삶 -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떤 철학자의 영적 순례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인터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요즘은 철학서를 잘 안 보지만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문구는
라캉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소위 젓가락 문화권 특유의 공동체? 혹은 체면? 중시 경향은 사회 평균적인 행복도의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체면이라는 단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겠군요ㅎ)
본서는 <월든>, <조화로운 삶>, <행복의 기원> 및 법정스님·법륜스님 같은 분들의 저서와 같은 선상에 서있으며
사실 이런 책들은 대개 유사한 논조/패턴을 보입니다.
어찌보면 뻔하고 늘 똑같은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언급되는 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론'인데도 막상 이를 지키며 사는 건 정말정말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영성'이라는 주제조차 한없이 도구화되고 상품화된 현세에서
저자가 유명세를 훌훌 떨쳐버리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든 자신을 띄우고 드러내고 싶어 안달나있는 시대에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소박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유럽 등지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자라 많은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였지만 아주 작은 출판사를 택했고
역시나 그놈의 마케팅이 잘 안되다보니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고 소리소문 없이 볼 사람만 조용히 본 느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단지 체화와 실천이 어려울 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CGV에 가면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지긋지긋한 광고가 있죠. '잊고 있었습니다~'
디씨를 비롯한 수많은 곳들에서 국뽕광고라 비웃음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나오더군요.
여기에 한창 싸이가 떴을 때 외국인만 보면 '두 유 노우 갱놤스타일?' 하며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자격지심,
인공지능으로 매년 기사를 대신 올려도 될 거 같은 고은의 노벨상 수상,
유투브에 넘쳐나는 'OOO를 처음 먹어본/접해본 외국인들의 반응',
해외 톱스타 내한 인터뷰에서 공식 입국절차처럼 외쳐대는 '김치 좋아해요~' 멘트 등등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남이 좋아하든 말든 타인의 생각에 왜 그렇게 신경을 쏟는지.
어떤 면에선 이런 어거지 국뽕 주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헬조선 같은 단어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의 시선에 갇혀서 사는 기조가 지속되면 앞으로 삶의 질이 아무리 더 나아져봐야 불만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겠죠.
절대적인 측면에서 분명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삶의 질을 고려하면 이런 남 신경쓰는 문화,
명품 등에 자기를 감추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분명 과합니다.
얼마 전 공중파에서 아스카 피규어를 거리낌없이 가지고 노는 데프콘의 모습은 대단히 이색적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숨겼어야 할 일이니까요.
로보트를 모으든 피규어를 수집하든 게임을 하든 진정 내가 즐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인지.
반대로 실상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본적도 없는 난해한 영화나 책을 좋아한다는 등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고 자의식 과잉을 부추기는 사회문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리암 니슨의 내한 인터뷰를 언뜻 보니 김치 좋아요 드립이 나오더군요. 여전히...-_-)a
공동체 지향적인 코리안 스탠다드에서 벗어나 각자 원대로 놀 줄 아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해방의 시대를 본격 맞이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