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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 이철환 산문집
이철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이 전하는 감동의 울렁임이 까닭 없이 숨 가쁜 삶을 진정시켜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 아닐까. <반성문>은 전부가 반성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읽어보면 전부가 반성문이 아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없이 멸시당하면서도 묵묵히 삶을 지탱해 온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니 말이다. <연탄길>을 만나고 오래도록 그 따뜻함에 의지했는데 여기 또 낮은 소리로 전하는 반성문이 세상살이에 서툰 사람들에게 작은 길 하나를 틔워주고 있다.
‘반성한다는 것은 상처에게 길을 묻는 것’이라 했다. 반성이 부족해서였을까? 살아오는 동안이 안개 속과 같았던 것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며 그렇게 잘난 사람들 틈에 내 자리하나 마련하자고 늘 헐떡거린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니까, 보편성이란 메커니즘에 중독되어 한 번도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유를 댄다. 내 살기 힘겨워서 그런 것이니 면죄부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조금 모자란 척, 미련스러운 척, 두어 걸음 뒤에 서서 걸으면 헐떡일 이유가 없는 것을. 어느 날 후회가 만들어 낸 물음표 투성이의 나날들이 견고한 바위의 무게로 느껴질 때쯤에야 무릎을 스스로 꿇는다. 무릎 꿇은 철부지에게 <반성문>은 물음표의 자리를 느낌표들로 대신할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등을 토닥여 준다. 눈높이를 조금만 더 낮추고 걸음의 속도를 조금만 더 늦추고 마음을 조금만 더 열어보면 훨씬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들꽃의 아름다움을 무시한 것에 대한 반성, 부모에게 해준 것이 뭐냐고 악다구니에 가깝게 대들었던 사춘기 불효에 대한 뒤늦은 반성. 박수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갖지 않았던 자만심에 대한 반성. 미련한 것에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하고 멸시했던 것에 대한 반성. 허리를 굽히는 수고도 없이 뻣뻣하게 선 채로 진실을 건지려고 했던 것에 대한 반성. 시냇물을 노래하게 하는 것은 울퉁불퉁 바위라는 것을 모르고 피하려고만 했던 것에 대한 반성. 반성할 것을 찾은 하루라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삶이냐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반성문>은 낮은 울림으로 스며들어 마음 구석에 감춰둔 부끄러움에 대해 반성문을 쓰고 또 쓰게 한다. 제자의 잘못을 앞에 두고 제자의 종아리를 치는 대신 잘못 가르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의 종아리를 친다는 스승이야기가 있다. <반성문>을 읽는 동안 회초리를 맞는 스승의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잘못 축에도 끼지 못할 잘못들로 반성을 하면서 뻔뻔한 사람들을 대신해 고개를 숙이면서 크게 반성하는 사람들은 진실로 작은 잘못을 하는 사람들이다, 작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