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 2022년 케이트그린어웨이 수상작 에프 그래픽 컬렉션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대니카 노프고로도프 그림,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숀 형이 죽었다. 날아온 총알에 형을 잃은 윌리엄 홀로먼.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기에 대비해서 훈련도 하는 것일까. 참담한 심정으로 숀 형의 죽음을 보는데, 더 황당한 건 형이 죽게 된 이유였다. 형을 죽인 범인은 칼슨 릭스! 윌의 추론일 뿐이지만, 단지 패거리에 인정받고 싶어서, 터프가이가 되기 위해 죽였단다. 심지어 릭스는 숀 형의 친구라고? 살인이 훈장처럼 여겨지는 것도 놀라운 데, 그거 때문에 친구에게 총을 쐈다고...? 이런 믿을 수 없는 추론을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에 머리가 멍해졌다. 윌이 사는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님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런 허망한 이유라도 붙여야지 살 수 있기 때문인가.


슬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울지 못한다. 그것이 이곳의 룰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말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하지 말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똑같이 갚아 줄 것. 비정함이 흐르는 룰을 따라 복수를 선택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걱정스레 윌을 바라보게 된다. 릭스를 죽이기 위해 숀이 숨겨놓은 총을 찾아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세상에서 가장 긴 1분이 시작된다.


7층에서 1층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묵직하면서 위트 있게 전개된다. 건들거리는 말과 톡 쏘는 말들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한방은 묵직해서 그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분명 가벼운 말투처럼 느껴지는데, 그 속의 말은 쇳덩이보다 무겁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리는 말들에 홀려 읽어갔다. 묵직함이 한 층씩 내려갈수록 쌓이고 쌓여 주인공을 압박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이 열린다. 띵-!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 ‘올드데블스를 운영하는 주인공 맬컴 커쇼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본인을 FBI 특수 요원이라 밝힌 그웬 멀비는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언급하며, 맬컴의 의견을 묻는다. 뭘 바라는 거지? 탐정소설을 좋아할 뿐인 맬컴에게 전문가이지 않냐며, 계속 견해를 구하는 FBI 요원. 계속 겉도는 대화에 결국 둘러말하길 포기한 그웬이 찾아온 이유를 밝히며,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것은 그가 오래전 블로그에 게시한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리스트였다.


2004년에 당신이 이 서점 블로그에 썼던 리스트, 기억하세요?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라는 리스트였죠.


추리소설 추천하면 아묻따로 나오는 <ABC 살인사건>부터 우리나라엔 출간 안 된 <이중배상>까지, 실제로 출간된 소설을 완벽한 살인리스트에 넣어 소재로 활용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단순히 언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추천사와 더불어 줄거리, 살해 동기, 방법까지 거론해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서는 이걸 어떻게 접목시킬지 기대가 커졌다. 맬컴이 한참을 고심했다는 말답게 살해 방법이 하나같이 독특하다. 연관성 없는 사람 두 명이 서로의 알리바이를 위해 대신 살해해주고, 놀래 켜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물속에서 기다렸다가 익사시킨다! 이걸 어찌 써먹을 요량인가! 관전 포인트였다. 그웬과 맬컴 또한 이러한 살해 방법의 현실성에 대해 토의하고, 낱낱이 분석하며, 범인을 추적해 나갔다.


범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이라.......”

새에 관련된 이름으로요.”

아뇨, 그건 헛갈려요. 찰리라고 하죠.”


리스트로 인해 살해 방법과 살해 과정은 밝혀졌다. 그래서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서는 어떻게 죽였는가 하는 이야기보다 누가?’, ‘?’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며, 왜 하필 맬컴의 리스트를 사용한 것인가? 추리소설엔 이유 없는 등장인물은 없다고, 주인공 맬컴과 주변의 이야기가 하나 둘 밝혀질 때마다 예상치 못한 관계성이 드러난다. 그들의 과거에 놀라고, 리스트의 비밀에 경악했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무던하고, 잔잔한 어투로 전개되고, 세상 무해하게 다가온다. 일상적으로 느껴졌던 풍경이 하나 둘 섬뜩하게 변하는 과정에 감탄하며 범인을 마주했다.


내가 심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혹은 가슴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는 거야.(...) 알 수가 없어. 50년 동안 부부로 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몰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 육필서명 필자, 강인섭 김광균 김광협 김구용 김동리 김문수 김민부 김승옥 김영태 김종길 김태규 김현 김현승 마광수 문덕수 문익환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성룡 박종구 박화목 박희진 서정주 석용원 송상옥 송수남 신봉승 오규원 이경남 이상보 이승훈 이청준 이탄 이해인 임인수
박이도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육필, 말 그대로 직접 쓴 손글씨를 말하는 것이다. 48명의 문객들로 받은 육필서명본을 한 데 모아놓으니 절경처럼 느껴진다. 바탕체도 아니고, 굴림체도 아닌 각자의 손글씨로 적힌 글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획일적인 글씨체로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에는 못 느껴볼 정서다. 여기에 더해 육필서명본을 써준 인물에 대한 추억을 더했다. 그래서 서명본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육필서명본과 함께 이제는 못 만날 시인들이 남긴 시를 읽으며, 그들을 추억해 본다.

육필의 개성만큼 인생도, 시도 다양하다. 수록된 동시, 한시, 참여시, 장시를 읽고 있으면 시를 왜 도외시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시가 그리워진다. 언론이 이자 시인인 이경남 시인의 「유월의 이데올로기」를 읽는 동안 탄식을 하고, 마광수 시인의 「자살자를 위하여」를 읽으면 울적해지고, 전봉건 시인의 -눈 내린 광장을/한 마리 표범의 발자국이 가로질렀다.-로 시작하는 「꽃. 천상의 악기」를 읽으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월이 된 활처럼 팽창한 욕망-이라니! 직설적인 것도 좋고, 은유적인 것도 좋다. 그리고 김종길 시인의 한시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한시를 만날지 꿈에도 생각해 못해서 더 반갑고 즐거웠다. 한시의 명맥이 끊이질 않길 바라는 박이도 시인의 마음에 동의를 하며 시를 감상했다. 김구용 시인 「뇌염」은 70년 전에 쓰인 시이지만 현시점을 관통하는 것도 놀랍다. 이외에 다양한 시를 읽으며 현시대를 관통하고, 마음을 관통하는 시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시인들을 이야기하는 박이도 시인의 문장은 그리움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박이도 시인의 첫 스승인 한실 이상보 박사님의 이야기에서 마주한 ‘우리의 말글살이는 어떠합니까?’는 질문에 요즘의 말글살이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시대에 따라 언어가 없어지고 생기고를 반복한다지만 거기에 한국의 얼은 남아있는지는 의문이다. 짧게 소개된 글이지만 왜 귀감이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헨치 1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어로가 저를 던졌어요.”

 

일명 히어로라는 인물로 인해 평생 지팡이 신세를 지게 됐다. 단지 히어로의 진행방향에 있었다는 이유로 공격당해 다리가 분쇄골절 되고직장까지 잃었다히어로와 마주 하게 된 경위가 떳떳한 것은 아니지만 그 대가치고는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건강과 직업을 잃고이제 시간만 남은 주인공 애나는 히어로가 일으킨 피해에 집중하고수치화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거지같다고 해도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스스로가 정의 심판이며 악의 처단자라고 믿는망토 두른 개자식 한 명 때문에

우리의 시간이 송두리째 빼앗겨서는 안 된다.

 

피해를 수치화해서총 피해를 산출해 내고그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애나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리가 분쇄골절 된 사건 이후에 보여준 히어로 쪽의 행동이 분노를 유발 할 만큼 충격적이고 불쾌했지만그래도 인과응보라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히어로라는 단어는 절대 선이었고애나의 행각은 관심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아집처럼 느껴졌다책 속에서도 애나가 산출하고 평가한 자료인 부상 보고서를 비난 한다그러나 애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자료들이 모여 들며, ‘히어로가 절대 선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 <헨치>에서 히어로는 대체 무엇이고빌런은 무엇인가애나를 응원하는 게 옳은가?를 매 번 생각하며 읽느라 머리가 시끄러웠다. ‘히어로가 절대 선에서 발을 빼는 순간부터 빌런을 응원했는데잘 나가다가도 뒤통수를 쳐서 내가 그린 응원의 경계를 몇 번이고 지우고새로 그려야 했다. 전통적인 히어로와 빌런 역할에 충실했다가탈피했다가충실했다가탈피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려내며작가가 묻는다이래도 응원할거야?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나의 내면과는 반대로소설 분위기는 사무적인 일을 하는 주인공 애나를 따라 잔잔하고 소소하다애나의 심리 또한 커피한잔의 여유를 만끽하는 직장인의 오후 같다이런 인물이 만들어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사건은 또 기상천외해서 눈을 땔 수 없었다잔잔하게 돌은 자 같다겉바속촉의 매력이 톡톡하다기발한 사건 전개에 감탄하면서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옹호해야 할까반발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했다.

 

헨치 일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이 책의 주인공은 히어로도 아니고빌런도 아니다헨치 애나그러나 히어로와 빌런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한 탓에 애나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힘들었다많은 사건을 겪은 후에야 애나가 왜 주인공인가를 알 수 있었고그제야 히어로와 빌런 사이에서 추구하는 애나의 목표를 진정으로 응원할 수 있었다온전히 응원할 마음을 한 가득 안았는데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참으로 얄미운 작가다이제 마음 좀 쏟으려니 더 이상 남은 이야기가 없단다.

 

어쩌다가 검은 망토를 두르게 됐어요?”

 

작가의 의도가 명확한 이야기이다.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글자에 박힌 기존의 사고를 파괴하라는 것이 다분히 느껴진다그게 끝나자마자 이야기를 끝마쳐서 더 노골적으로 느껴졌다그래도 좋았다영화 <슈퍼배드>, <메가마인드>, 도서 디즈니의 악당들 시리즈 같은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간 신선한 작품이다분쇄골절 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애나의 위치는 정해져있었다애나가 선해지거나 악해지지 않는다그녀가 서있는 자리의 바닥 색이 바뀔 뿐이다. 그것으로 애나의 선과 악을 판단해야 했다히어로가 선하지 않은 만큼 애나는 선하게 느껴졌고빌런이 악한 만큼 애나는 악해졌다이런 선악판단은 처음이라 속이 시끄러웠다보다괴랄한 가치판단에 겨우 적응했는데이야기를 끝내 야속하기만 하악당을 무찌르는 전통적인 히어로물도 질리고사연있는 빌런물도 질린 이에게 새로운 장르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예술이 시작되었다
EBS <예술가의 VOICE> 제작팀.고희정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도, 음악도, 무용도, 글도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지만 감상하는 것은 좋아한다. 그림을 관람하고, 음악을 듣고, 무용을 보고, 글을 읽는 것도 마냥 쉬운 것은 아니지만 직접 창작하는 것보다는 쉽고, 내가 못 하는 행위에 대한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품에 빠져 자유롭게 감상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들게 된 것일까? 의도가 궁금하고, 그 의도를 갖게 된 이유와 삶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예술가 8인의 ‘처음’을 묻는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솔직히 시인 나태주, 배우 박상원 두 분 빼고는 처음 본 분들이다. 만화가 이종범 작가님은 이름만 알았고, 피아니스트 김정원, 조각가 최우람, 디자이너 이영연, 건축가 이충기, 안무가 허윤경은 정말 처음 접해본 분들이다. 모르는 분들 절반인 책을 내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펼친 자리에서 다 읽었다.

김정원 피아니스는 7살에 피아노에 매료되었고,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치기를 소망하게 된 유년 시절을 지나 쇼팽 콩쿠르에 출전하게 된다. 그러나 결선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좌절감을 느껴 방황하는데, 결선에도 오르지 못한 그에게 우승자 대신 무대에 서달라는 연락이 온다. 한 평론가가 그의 연주에 공감한 것이다. 그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피아노를 연주를 이어나간다. 나 또한 타인의 공감에 힘입은 기억이 있어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는 결이 다른 유년 시절에 신기했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에 반가움을 느끼며 남은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8인의 예술가 모두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 이충기 건축가의 이야기가 내 관심사와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요즘 건축과 관련해 도시공학, 도시 계획의 시선으로 도시와 농촌을 보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는데, 여기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도시, 건축을 볼 수 있었다. 건축을 통해 도시를 살리는 그의 이야기는 무분별한 재개발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장소의 가치를 지키는 건축을 하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왜 예술가 8인에 이충기라는 이름이 올라가있는지 알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